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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열어 줄 천문학을 꿈꾸다
작성일
2014-02-13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7394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열어 줄 천문학을 꿈꾸다 - 천문학은 우주의 기원과 연관된 삶의 가치,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전환을 촉발한다는 점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과학인 동시에 정치, 경제, 종교, 문화, 예술 등에 관계하는 인문과학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조상의 천문유산을 계승하는 방향이 과학적 성취뿐 아니라 인문학적 성취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 속에 널리 활용되는 천문학, 그러나…

천문학은 천체를 비롯한 우주구성물질의 구조와 기원 및 운동원리 등을 연구하는 학문분야다. 인류의 문명과 더불어 시작된 천문학은 1609년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어 지구의 달과 목성의 위성들을 관측하면서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았다. 이후 천문학은 급속히 발전된 물리학 및 첨단 과학이론들과 결합하면서 태양천문학, 행성과학, 항성과학,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 천문학 및 다른 은하를 연구하는 탈(脫)은하천문학은 물론 우주전체의 기원과 구성을 연구하는 우주론의 수준으로까지 탐구의 범위와 주제를 확장해 왔다.

지구 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기에 실제의 삶과 무관한 듯 보이는 천문학은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 다양하게 활용된다는 점에서 어떤 학문보다 실용적이다. 사실, 고대 수렵/농경사회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천문학은 정치, 경제, 종교, 문화, 예술 등 우리 인간의 일상을 결정짓는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예컨대 정치적 이념을 구현하는 척도, 천명(天命)을 헤아리는 예지, 농사나 교역을 위한 때와 절기(기상) 및 방위들을 정확히 취하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우리의 생활에 적용되어 왔다.

특히 오늘날에는 천문학의 탐구가 야기하는 기초과학연구나 고도의 공학기술을 응용해 디지털카메라, 전자레인지,각종 첨단소재들, 내비게이션 등을 제작하는 일, 그리고 천문현상의 역추적을 통해 고문서 등에 기록된 미확인의 역사적 사건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천문학 연구의 성과는 우리 곁에 한층 더 정교히 스며들어 널리 활용되고 있다.

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천문학은 우주의 질서와 연관된 삶의 가치,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전환을 촉발한다는 점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과학인 동시에 정치, 경제, 종교, 문화, 예술 등에 관계하는 인문과학적 성격을 갖고 있다. 천문학의 이러한 양의적인 특성은 우리의 천문 유산에도 선명히 내재해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조상의 천문 유산을 계승하는 방향이 과학적 성취뿐 아니라 인문학적 성취를 함께 고려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01. 장천1호무덤(장천제1호분) 안칸 천정 막음돌의 일월성수.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과 남두육성, 천상과 지상의 매개물 삼족오가 그려진 태양, 풍요와 다산 부귀의 상징물인 두꺼비와 토끼가 그려진 달 등 천문학적 상상력의 인문학적 의의가 표현된 대표적인 천문유산이다. 02. 서울 남산 N서울타워광장에서 열린 별 보기 체험행사를 찾은 아이가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고 있다.

 

천문학적 상상력이 아쉬운 까닭

인문학자 아우게(M, Auge)는 자동차를 몰고 갈 때나 모바일과 인터넷 등을 작동할 때 발생하는 ‘속도제로’의 역설 - 빠르게 이동하지만 운전석, PC방 등 자신이 위치한 자리에서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는 아이러니 - 때문에 사물과 타인에 대한 진정한 접촉이 사라진 현대를 두고 ‘비(非)-장소’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장소가 아닌 장소’ 내지 ‘사이비 장소’ 등으로 다시 쓸 수 있을 이 ‘비-장소’가 위험한 것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과 타인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관계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사물과 인간’ 또는 ‘인간과 인간’의 실제 관계가 단절된, 그래서 인간적인 핏기와 정서가 증발된 삶의 자리인 ‘비-장소’는 극복되어야할 대상이겠지만 문제는 ‘어떻게’다. 우리의 문화 유산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답을 품고 있다. 예컨대 하나의 예술품이 인간적인 핏기와 정서가 회복된 시간과 공간을 열어가는 기재(器材)일 수 있듯이, 분명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전통의 장소가 펼쳐냈던 참다운 삶의 시간과 공간을 열어줄‘지금-여기’의 훌륭한 기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천문 유산은, 물론 우리의 다른 문화유산들이나 다른 국가의 문화유산들 모두가 다 그럴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이 ‘기재성’을 현저히 보여준다.

천문 유산은 그 자체가 흡사 우리의 정신을 흔드는 시와 회화가 그러하듯이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열어 비인간화된 공간을 인간화시키는 기재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 기재가 주위의 것들과 공생하는 선조들의 탈(脫)근대적 생태성이 표현된 것이라는 점에서, ‘비-장소’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인문학적 의의를 갖는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을 끌고 가는 인간의 노동과 휴식, 그리고 감당하기 벅찬 인간의 길흉과 죽음과 탄생이 주는 전율과 희열 등을 겪으며 타인과 더불어 엮어내는 삶의 숱한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희망과 위안으로 작동했던 천문학적 상상력이 들어있기에 그러하다.

우주에 반응했던 선조들의 삶을 보며

천문 유산의 보존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고 과학정신과 함께 전승해야할 것은 우리 선조들이 ‘하늘과 맺어온 인연’이라는 인문학적 의의를 생활 속에서 되살리는 일이다. 현대의 ‘비-장소’가 몰고 온 문제들을 해소하며 더 나은 미래를 기획할 수 있게 해줄 하나의 기재가 될 천문유산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커다란 가능성이기도 하다.

예컨대, 제주무당굿의 ‘천지왕본풀이’는 우리 한국인의 우주관과 생명관을 보여주는 일종의 창세신화적인 천문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혼돈의 시간에서 하늘과 땅이 열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해와 달과 별을 비롯한 자연의 뭇 것들과 인간이 어디로부터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노래하는 이 서사무가(敍事巫歌) 유산은 현대의 우리가 처한 ‘사이비 장소’에서 우주의 원리와 소통하는 시간과 공간을 환기하며 ‘진정한 장소’의 유래와 의미를 환기해준다.

다른 유산에서도 반복되는 이러한 우주 발생론적 상상력은 비단 천지왕본풀이가 제작된 시기만 아니라 그 전의 혹은 그 이후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의식을 관통하며 일련의 숱한 천문 유산들을 생산해 낸다. 물론 이러한 유산들 중 상당수는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수준을 넘어 과학적인 수준까지 이른다. 덮개돌에 크고 작은 구멍을 뚫어 별의 위치를 표시한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들, 그리고 다양한 별자리의 형태가 그려진 고구려와 고려의 고분들, 1,467개의 별과 300개가 넘는 별자리를 새겨 넣은 조선의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혼천의 등 무수히 많은 천문유산은 그러한 표현물들의 예다.

천지의 운행원리에 따른 통치원리와 제도는 물론 개개인의 대소사에 우주의 리듬을 부여하며 일상의 질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우리 선조들의 천문학적 상상력. 그 상상력이 깃든 과학적 표현물들은 일차적으로 첨성대와 서운관, 관상감 등을 설치해 운영할 정도로 뛰어났던 우리 선조들의 과학 기술력에서 나온 것들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문유산의 계승이 과학기술 분야에만 해당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과학기술정신의 계승도 중요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신화/주술’적인 태도에서든, 과학적인 태도에서든 우주의 움직임에 늘 긴장하며 순응하려 애썼던 선조들의 삶의 자세일 것이다.

03.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1)’가 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돼 힘차게 우주로 향하고 있다. 천문유산의 진정한 계층은 근대 이후 점차 살과 분리된 천문학적 상상력을 일상으로 끌어내 우리의 세계와 삶을 진실하게 운영하는 태도를 회복한 자리에서 천문학의 발전을 기하는 것이어야 한다.

 

천문학의 오래된 미래를 꿈꾸다

오늘날 우리는 첨단과학기술과 결합한 천문학의 힘으로 더 멀리 더 많은 별들을 관찰할 수 있으며, 그것들에 인간의 흔적을 부여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상상력이 시작하는 곳도 훨씬멀리까지 확장되었다. 하지만 천문학적 상상력은 과학의 분과를 뛰어넘는 것으로써 천문학의 성립과 성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토대이자 우리 생활의 원력이다. 따라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상에서의 천문학적 상상력의 인문학적 가치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천문유산의 진정한 계승은 근대 이후 점차 삶과 분리된 천문학적 상상력을 일상으로 끌어내 우리의 세계와 삶을 진실하게 운영하는 태도를 회복한 자리에서 천문학의 발전을 기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늘과 맺어온 인연’의 증표가 되었던 천문유산을 그와 같은 견지에서 오늘에 다시 되살리려는 시도가 물론 없지 않다. 최근 전국의 천문대나 천문연구기관에서 천문학의 의의를 다방면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강연과 전시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학적 지식의 수준에 치우치거나 박물지식에 그치지 않으려면, ‘비-장소’화 된 우리의 ‘삶의 장소’를 진정한 것으로 복구하려는 기획,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천문유산의 인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요컨대, 천문유산을 계승하는 길은 두 갈래라야 맞다. 별과 천체에 주의하며 자신이 거주하는 장소에서 타인과 함께 공존하는 삶의 방식과 질서를 추구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는 것, 그리고 선조들의 천문학적 상상력을 이어받아 더 맑은 눈과 치열한 정신으로 천체를 응시하며 우주의 원리를 더 깊게 이해하는 수고가 그것이다. 그럴 때 나로호(KSLV-1)와 같은 시도들이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우리 삶의 영역의 한 부분으로 자리할 것이다.

근대 이후 천문학이 점점 과학의 영역에 갇히게 되면서 우리의 일상에서 작동하던 천문학적 상상력 또한 일상을 사는 우리의 의식에서 잦아들었다. 별과 천체가 천문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 축소되고 인간의 삶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여전히 문학과 예술에서 그 의미가 형상화되어 온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천문학적 상상력은 마치 소설을 읽고 그림을 접하는 일이 그렇게 되었듯이, 특별히 시간을 내야만 접할 수 있는 낯선 정서가 되었다. 문명의 불빛에 점거된 도시를 떠나기가 도무지 어려운, 그리고 밤하늘을 쳐다볼 생각마저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별들을 관측하는 일이 일회적인 이벤트로 전락한지도 오래다. 바로 우리의 머리 위 창공에서 늘 빛나고 있는 별들이지만, 그것들에 눈을 돌리려면 많은 시간과 태도수정이 필요할 정도로 인간 본연의 거주 장소의 의미는 퇴색하였다.

천문유산이라는 문학적 기재를 통해 별들의 인문학적 의미를 고려하는 시간과 공간을 되찾아 빛바랜 ‘삶의 장소’를 돌파하는 것, 이 일은 어쩌면 우리의 천문유산이 말없이 가리키는 천문학의 오래된 미래이자 우리 삶의 오래된 희망일 것이다.

글 송석랑(목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사진 문화재청, 연합콘텐츠,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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