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페이지 경로
기능버튼모음
본문

문화재 기고

제목
신라 천년왕국의 중심 월성
작성자
박윤정 연구관
게재일
2017-03-16
주관부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조회수
1720

 


  경주 월성은 1961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명실공히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월성의 총 면적은 207,528㎡(약 63,000평) 정도이며, 길이는 동서 890m, 남북 260m, 바깥둘레 2,340m이다.


  신라 천년 왕국의 중심에 월성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는 파사이사금 22년(101)에 월성을 새로 쌓고, 그 내부에 궁궐을 새롭게 만든다. 신라 궁성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게 된 월성은 이후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왕궁으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제 기능을 수행했다. 월성은 전체적인 평면 형태가 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반월성’, ‘신월성’이라고도 한다. 또한 임금이 계신 성이라고 해서 ‘재성’이라고도 불렀다.


  신라 당시에는 왕궁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신라 궁성과 관련된 그 어떠한 건물도 남아 있지 않고, 월성 내부에는 조선시대 건립된 석빙고만 있다. 또한 월성 남쪽에 흐르는 남천은 자연 방어시설로 이용되었고, 동쪽과 북쪽에는 동궁으로 통하는 문과 함께 외부인이 성 안으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인공 연못인 해자가 설치되었다.


  한편 월성 주변으로 동궁과 월지(안압지), 첨성대, 계림, 황룡사지, 천주사지, 월정교지와 같은 신라시대 중요 유적지들이 밀집 분포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당시 월성을 중심으로 주요 시설들이 조영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왕경이 발전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979~1980년에 문화재관리국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은 월성 내부 동문터에 대한 부분 발굴조사를 하였다. 그 이후에는 월성 내부보다는 성 외부 방어시설인 해자 유적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전개되었다. 해자란, 성으로 침투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성벽 앞에 설치한 인공 연못을 말한다. 1984년부터 시작된 해자 발굴조사는 2014년 완료되었다. 조사 결과 총 6개의 해자가 확인되었는데, 돌로 쌓은 방식의 해자와 구덩이식 해자로 나눌 수 있었다. 이러한 해자시설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외부 침입의 우려가 사라지자, 점차적으로 동궁과 월지[안압지]와 같은 조경시설로 대체되었거나, 혹은 매몰되어 대형 건물들이 들어섰던 것으로 보인다.


  월성 해자 발굴조사에서는 신라시대 건축물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기와들이 출토되었고, 또한 당시 사람들이 직접 사용했던 흙 그릇과 금속공예품들도 함께 수습되었다. 뿐만 아니라, 목간[木簡 : 오늘날 종이에 해당]이나 칠기, 조개껍질, 그리고 동물 뼈 등 당시 생활상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함께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출토 유물들은 천 삼백년 전 신라인들의 일상을 복원하고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 12월 12일 고유제를 시작으로 월성 발굴조사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이제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신라 왕궁을 찾는 큰 서막이 열렸다. 앞으로 어떠한 유적과 유물이 월성 내부에서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천 삼백년 전 실크로드 상에 위치한 황금의 나라로 알려진 신라의 왕궁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과연 그들이 사용하고 이용한 물건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신라의 왕족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이모든 것들이 의문스럽고 궁금할 따름이다. 이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는 이 모든 것들을 상상(Guess)에서 사실(Fact)로 확인시켜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설명사진


<월성 발굴조사 광경>

첨부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한승훈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