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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울의 궁궐 공간 정비에 대한 생각
작성일
2004-11-15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872

한양이 조선의 수도가 된 지 600여 년이 지난 지금, 경복궁을 비롯한 여러 궁궐의 복원과 외부공간 정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역사도시 서울의 중요한 공간인 궁궐을 정비하는 작업은, 거의 100년 동안 일본의 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에서 훼손되었거나 왜곡된 모습을 바로잡고 민족정신을 고취한다는 점에서 어느 일보다 중요하고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의 궁궐 외부공간은 너무 혼잡스러워 어수선하고 상징적인 의미를 느낄 수 없을 정도다. 경복궁의 경우, 수 년 간 진행되는 복원공사 과정이기도 하지만 옛 도성의 위엄과 고즈넉한 이미지가 살아있지 못하다. 궁궐 공간을 정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단순한 역사공간의 조정이나 보완이 아니라,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따라야 할 일인 까닭이다. 복원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건조물은 단순한 물리적 복원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천적인 활용계획 없이 지나간 왕조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되는 궁궐의 복원은 보존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경복궁 근정문 앞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없애고 그 자리에 전각과 회랑을 새로 지은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옛 건물을 없앤 후의 논의가 충분했어야 했다. 그 결과 지금 흥례문과 광화문 사이의 외부공간은 잠정적이긴 하지만 스케일감이 떨어지는 애매한 공간이 되어 있다. 한때 수많은 전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모형이나 도판 혹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보다는 장소가 갖는 역사와 시간의 의미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궁궐의 내외부 편의시설 디자인에 대한 성격 규정이 필요하다. 각 편의시설은 전체적으로 궁궐 공간의 품위와 정서에 부합하는 시스템으로 고안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재질과 색채등을 면밀하게 조정하여야 하며, 산만하게 분산된 편의시설의 복합화도 고려하여 설치장소 역시 신중하게 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편의시설은 방문하는 관람자 즉, 남녀노소, 외국인들의 감성까지도 고려한 적절한 디자인이어야 하며, 고궁 공간에서 시간과 역사성을 감지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야 하므로 굳이 전통적인 모티브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감성과 기술로 궁궐 공간에 잘 맞는 품위 있는 환경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집합체로서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추구하는 일이다. 궁궐 정비는 궁궐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변도시의 경관까지 조정하는 작업을 포함하여야 마땅하다. 옛 궁궐과 잘 정비된 새로운 시설물들이 이루는 조화로운 풍경은 역사도시 창조의 원천이 될 수 있으며, 도시와 살아숨쉬며 우리와 함께 존재할 궁궐 공간으로서 생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성룡 / 건축가 ubac@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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