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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문화재의 뒤안길(116)- 청자 기와 (서울경제, '21.12.6)
작성자
이명옥
게재일
2021-12-06
주관부서
대변인실
조회수
19679

문화재의 뒤안길(116) (서울경제, '21.12.6)



바다 속에서 발견된 청자기와

청자 빛 세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고려


글/ 이명옥(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유물과학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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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 명량 해역 출수 청자 수키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장(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사진 제공)


  

전남 진도의 명량(鳴梁) 해역에서는 수중발굴조사 과정에서 다량의 청자, 기와 파편들과 함께 청자 수키와도 발견되었다. 이곳은 물살이 강해 항해에 있어 늘 위험이 있는 험조처(險阻處)로 알려져 있다. 진도의 북동쪽으로 해남, 강진의 청자 가마터가 있는데, 발견된 청자기와는 강진에서 제작된 청자들과 함께 배에 싣고 가던 중 침몰하면서 바다 속에 묻혔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는 당시 수준 높은 자기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붕을 장식하는 건축부재인 기와까지 청자로 제작하였다. 청자기와의 제작이 쉬워 보이지만,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가마에서 구울 때 일반 토제기와보다 크기가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형태를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크기와 무게 등을 철저히 계산해야 한다. 따라서 고도로 숙련된 기술이 없으면 완성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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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수키와 내면의 명문>,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장(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사진 제공)


명량 해역에서 발견된 청자기와의 외면에는 모란과 넝쿨무늬를 새겼는데, 문양이 뚜렷하지 않다.

제작과정에서 유약이 제대로 녹지 않아 제 색깔을 갖추지 못해 푸른색이 아닌 밝은 회색에 가깝다.또한 안쪽에는 ‘南面西東元二’ 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뜻이 궁금해진다(그림 2). 이러한 명문이 새겨진 청자기와는 강진 사당리 청자 가마터에서도 발견되었는데 ‘西樓’, ‘樓西面南’, ‘南北東一’ 등이 있다. 이것은 건물의 위치를 표시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 명량 해역의 청자기와도 비슷한 의미로 생각된다.

이러한 명문은 굽기 전에 새겼던 것인데, 사용처와 위치를 미리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자기와는 강진 월남사지, 고창 선운사 동불암 등의 절터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주로 고려 왕실 건물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사』에는 의종이 궁궐 동쪽에 지은 수덕궁 안에 있는 ‘양이정(養怡亭)’의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내용이 있다.실제로 강진 사당리에서는 많은 청자기와가 출토되었는데, 특히 수덕궁 내의 ‘태평정(太平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명문의 청자기와도 있다.

고려청자는 고려를 대표하는 공예품으로 실생활에서 음식기 뿐 아니라, 실내의 장식, 각종 왕실 의례와 종교 행사에까지 널리 사용될 정도로 고려인의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특히 고려 왕실에서는 지붕에까지 청자를 사용하였으니, 고려를 온통 청자 빛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열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준다. 바다 속 깊이 잠들어 있던 청자기와는 이렇듯 청자의 나라 고려의 모습을 생생히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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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모란무늬 곡와(曲瓦)>, 강진 사당리 청자요지 출토, 국립광주박물관 소장(국립광주박물관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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