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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켜켜이 쌓인 이야기 역사가 되다 산사의 길
작성일
2022-10-2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64

켜켜이 쌓인 이야기 역사가 되다 산사의 길 우리나라의 산지에는 불교적 색채가 깊이 드리워 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의 영향으로 도시 인근의 사찰이 대부분 강제로 폐사된 데 비해 산사는 명맥을 유지한 것이다. 억압을 견디며 살아남은 산사는 승려와 일반인의 신앙, 수행, 생활이 가능한 종합 승원(僧院) 역할을 해 왔다. 00.지장보살을 모신 공주 마곡사 명부전

만추에 그려 보는 봄날의 신록

예부터 선비들은 산천 유람을 즐겼다. 그들은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다녔으며 그 후기를 시와 그림으로 남겼다. 그렇게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곳은 오늘날 ‘핫플’처럼 명성을 얻으며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춘마곡(春麻谷)’ 즉, 마곡사는 봄의 신록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라는 관용어가 나온 배경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태화산이 품은 마곡사는 곡저형, 경사형, 계류형 등 세가지 산사의 입지 조건 중 계류형에 속한다. 마곡사 가는 길에 마곡천이 벗하는 이유이다. 마곡천은 공주시의 유구읍과 사곡면을 적신다. 사곡면은 조선시대 지리서인 『택리지』와 예언서인 『정감록』에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로 꼽히는 풍수 명당이다.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수행을 마치고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창건 이후에는 부침이 심했다. 신라 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됐다가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 지눌이 다시 세워 1,050여 칸에 이르는 대찰로 성장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후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중건했지만 정조 때인 1782년 큰불로 다시 소실, 그리고 재건을 반복했다.


옛날에 마곡사는 쉽게 오갈 수 없는 오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은거하는 사람들이 이 절을 많이 찾았다. 그중에는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신자도 있었고, 명성황후 시해범을 암살하고 인천형무소에서 복역하다 탈옥한 백범 김구 선생도 있었다.


여느 유명 산사처럼 마곡사도 매표소를 지나야 비로소 세속을 벗어난 듯 호젓한 길이 시작된다. 매끈하게 정돈된 아스팔트와 나무데크 길이 이어 달리지만, 길섶은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잇대고 물 흐르는 소리와 산새 소리가 어우러져 산사의 길다운 운치를 자아낸다. 일주문을 지나 마곡천을 따라 10분 정도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기면 마곡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01.보물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밖에서 볼 때는 이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단층이다. 현판은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라 전해진다.

극락으로 가는 길, 공주 마곡사

마곡사는 남원과 북원, 두 구역으로 나뉜다. 남원은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수행공간이고, 북원은 대광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교화공간이다. 남원에 자리한 보물 공주 마곡사 영산전은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임진왜란때 불타 소실된 것을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다시 세웠다. 편액은 세조가 쓴 것이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의 임금이 산사를 찾은 이유는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생육신 중 한 명이다. 그 당시 세조는 김시습의 재능을 높이 산 것은 물론이고 정무적 판단에 따라 그를 회유하려 했다. 하지만 김시습은 세조가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마곡사를 떠났다. 한발 늦게 도착한 세조는 섭섭한 마음에 영산전(靈山殿)이라는 글자를 손수 써서 하사했다. 그리고 타고 온 연(輦:가마)을 두고 소를 타고 떠났다고 한다.


02.보물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의 청기와 03.보물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뒤로는 보물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이 보인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각각 지나면 극락교 앞에 이른다. 극락교 너머 북원에 들어서면 일직선상에 놓인 보물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대광보전·대웅보전이 눈에 띈다. 이렇게 탑과 본전을 일직선에 배치함으로써 위계와 위엄이 느껴진다. 그 중 오층석탑은 발사를 앞둔 로켓처럼 날렵하게 우뚝 서 있다. 높이가 8.67m에 이르는 이 탑은 고려 때 만든 것으로 매우 희귀한 탑으로 알려져 있다. 상륜부에 ‘풍마동(風磨銅)’이라 부르는 라마탑을 올려 장식한 독특한 형식 때문이다.


라마탑은 티베트와 네팔 일대에서 발전한 라마교의 불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 탑이 유일하며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고 한다. 몸체가 가늘고 길어 얼핏 불안정하게 보이지만, 정면에서 보면 대광보전이 품어 주는 듯해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대광보전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고 그 주변에 화려한 불화가 가득하다. 대광보전 뒤에 자리한 대웅보전은 밖에서 볼 때에는 이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단층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이 있으며 그 앞에 전각을 떠받치고 있는 굵은 싸리나무 기둥 네 개가 서 있다. 옛말에 이 기둥을 많이 돌수록 극락길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그 덕에 기둥 표면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반질반질하다. 대웅보전에서 대광보전 용마루 한가운데를 자세히 보면 청기와 한 장이 보인다. 일명 ‘극락행 티켓’으로 알려진 기와이다.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면 “마곡사에서 청기와를 봤느냐?”라고 묻는단다. 봤다면 극락이고 못 봤다면 지옥행이다. 마곡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선생이 머물렀던 전각인 ‘백범당’과 ‘백범 명상길(3km)’이 그것이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숱한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마곡사는 오래 묵혀둔 장처럼 곰삭은 맛이 난다.


조붓한 길 따라 든 해남 대흥사

두륜산은 해남의 진산으로 사시사철 풍광이 빼어난 데다 정상에 오르면 제주도 한라산이 아득하다. 실로 한반도 남단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지이다. 이 수려한 산기슭에 계류형 산사인 사적 해남 대흥사가 있다.


대흥사는 매표소 주차장부터 걸어가는 게 좋다. 계곡을 따라 산책로가 놓여 있는 그 길이 꽤 운치 있다. 진입로에는 측백과 편백이 울창하고 가장자리에는 금당천이 흐른다. 천천히 호흡하며 조붓한 오솔길을 걷다 보면 세상 시름이 모두 달아날 것 같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맑은 공기가 가득 채워지고 늦가을의 햇살이 눅눅했던 기분마저 보송보송하게 한다. 흙길과 나무데크 길을 번갈아 가며 30분가량 걸으면 빽빽하던 숲이 성글어진다. ‘두륜산대흥사’라 적힌 일주문을 지나면 부도전이다. 나지막한 꽃담에 둘러싸인 부도전에는 보물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탑을 비롯해 80여 개에 이르는 부도와 사적비 등이 봉안되어 있다. 대흥사는 원래 대둔사로 불리다가 절이 크게 흥했다고 해 대흥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흥했다라는 그 이름처럼 부도전의 규모에서 대흥사의 위상이 전해진다.


대흥사에는 사천왕상과 천왕문이 없다. 북으로는 월출산, 남으로는 달마산, 동으로는 천관산, 서로는 선은산이 감싸고 있어 풍수상으로 완벽하기에 사천왕상이 필요 없다고 한다. 사명대사는 해남을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이니, 만년 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이라 해 사후에 의발(衣鉢: 불교 수행자의 의복과 식기)을 대흥사에 보관하도록 제자들에게 유언했다. 불가에서 의발을 전하는 것은 자신의 법맥을 전하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대흥사에는 조선 왕실로부터 사액을 받은 표충사가 건립되었다.


04.80여 개의 부도와 사적비가 있는 해남 대흥사 부도전 05.팔작지붕이 멋스러운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원교 이광사가 쓴 편액이 걸려 있다.

편액에 얽힌 이야기와 절에 있는 유교 사원

해탈문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있고 그 뒤로 비로자나 부처가 누워 있는 듯한 두륜산 정상이 한눈에 담긴다. 대흥사는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기준으로 아래쪽의 남원, 위쪽의 북원 그리고 별원으로 나뉜다. 전형적인 가람배치 양식을 따르지 않았지만 지형에 따라 독립된 영역으로 배치함으로써 두륜산의 지형과 매우 자유롭게 어우러진다. 그래서 절이라기보다 한옥마을 같은 느낌이다. 넓은 마당 안쪽에는 초의선사가 조성한 무염지(無染池)가 있는데, 향로봉의 화기를 막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무염지 뒤에는 두 나무의 뿌리가 만나 함께 자란 거대한 연리근이 서 있다. ‘사랑나무’로 불리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500년 이상이다. 예부터 우리 선조는 연리근을 비롯해 연리목, 연리지 등을 매우 상서로운 길조로 여겼다고 한다.


연리근 뒤 높은 단에 오르면 북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원에는 침계루를 시작으로 대웅보전,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백설당, 청운당 등이 자리한다. 침계루의 편액은 조선 후기 명필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글씨이다. 대웅보전은 두륜산을 배경으로 팔작지붕을 펼치며 당당히 서 있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약사여래, 아미타불등 삼세불이 있다. 대웅보전에서 주목할 것은 화려한 용두 장식 가운데 걸린 편액이다. 힘찬 기상이 느껴지는 이 글씨 또한 이광사의 것이다. 이 편액에 얽힌 일화가 있다. 1840년 제주도로 귀양을 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 대흥사를 찾았다. 그때 대웅보전에 걸린 이광사가 쓴 편액을 보고 당장 떼어내라고 호통치고는 자신의 글씨를 걸게 했다.


이후 귀양살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른 김정희는 떼어냈던 이광사의 글씨를 다시 걸어 달라며 부탁했다고 한다. 귀양살이에서 김정희는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던 걸까? 거만했던 자신을 돌이켜보며 성찰하지 않았을까. 더불어 예술적 안목 또한 더 넓고 깊어졌을 것이다. 대웅보전 오른편 응진전 앞에 보물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이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 여래의 진신사리를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남원에는 보물 해남 대흥사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화각 등이 있다. 천불전은 대웅보전보다 규모는 작지만 날아갈 듯한 겹처마 지붕이 한껏 멋스럽다. 편액 양옆에는 두 눈을 부릅뜬 청룡과 황룡이 내려다보고 있다. 중앙의 편액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가허루의 편액은 창암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이 썼는데 그 또한 추사 김정희와 악연이었다. 김정희는 제주도로 가는 귀양길에 이삼만을 만나서 “시골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다”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김정희는 앞서 세상을 떠난 이삼만의 묘를 찾아 자신의 무례한 언행을 후회하며 사죄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법이 아닌가.


남원 오른편에 있는 표충사와 보물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을 소장한 성보박물관 등은 별원 구역이다. 그중 표충사는 매우 특별하다. 서산대사를 추모하는 유교 사당이기 때문이다. 서산대사가 73세가 되던 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는 고령임에도 왕의 특명을 받아 팔도도총섭에 올랐고 1,500여 명의 승군을 지휘했다. 평양성 탈환 등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제자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에서 입적했다. 그의 나이 85세, 1604년이었다. 풍전등화 같은 나라를 구한 서산대사의 충절이 있었기에 대흥사는 오늘날 호국불교의 산실이 됐다.


흔히 해남을 ‘땅끝’이라 부른다. 해남이 한반도 지도상 최남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돋움할 땅이 있어야 새가 비상하듯 끝은 언제나 시작과 맞닿아 있다. 두륜산 기슭에서 산사의 길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Info 함께 즐기면 좋은 문화재와 축제 # 달마고도·남파랑길 가을여행 추억 쌓기: 해남 달마고도와 남해안 남파랑길 코스 일원에서 펼쳐진다. 천 년의 역사가 깃든 달마고도는 달마산의 주 능선을 아우르는 17.74km의 둘레길이다. 300년 고찰 미황사의 옛 12개 암자를 잇는 순례 코스로 중국 선종(禪宗)을 창시한 달마대사의 법신(法身)이 상주한다는 믿음과 더불어 과거 선인들이 걷던 옛길을 복원했다. 나무데크 길, 계단이 없는 흙길과 돌길로 조성되어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달마고도는 한국의 산티아고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9월 24일에 시작되었으며 12월 10일까지 매달 둘째, 넷째 토요일에 진행된다. 트레킹 가이드와 함께 달마고도와 남파랑길을 걸을 수 있으며 새벽걷기, 마냥걷기 등으로 진행된다. 쓰레기를 주으며 걷는 ‘줍킹’도 체험할 수 있다. 여행 문의 해남군청 관광실 축제팀 061-530-5159~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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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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