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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연에서 찾는 위로, 조선왕릉 숲길
작성일
2021-06-29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822

자연에서 찾는 위로, 조선왕릉 숲길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봄은 기다림을 몰라서 눈치 없이 와버렸어.” - 방탄소년단 ‘Life goes on’ 01.화성 융건릉 융릉-건릉 숲길

거리가 필요하지만, 마음이 힘들 때 가기 좋은 곳

사람을 가까이할 수 없는 팬데믹 시대, 많은 사람이 마음의 위안을 자연에서 찾는다. 코로나19 이후 반려식물과 가드닝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을 정도로 사람의 마음에 초록 식물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효과가 크다. 집안에 작은 정원을 만들 수 없다면 우리 주변의 다른 정원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 정원을 잘 가꾼 카페나 수목원도 좋지만 조선왕릉에 가 보기를 추천한다.


그곳엔 수백 년간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온 아름다운 숲이 피톤치드뿐 아니라 역사의 향기까지 담뿍 머금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도성 외곽 풍수 좋은 곳을 골라 조성한 조선왕릉은 주변을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 보호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의 가치 중 하나는 왕릉이 위치한 장소의 자연 지형을 변형하지 않고 최대한 살리면서 그 조건에 맞추어 인공적 시설을 설치한 자연친화적 조성 방식이다.


조선왕릉은 웅장한 규모나 인공적인 화려함으로 주변 환경을 짓누르지 않는다. 마치 본래부터 산의 일부인 듯, 또 산 전체가 잠든 왕과 왕비의 안식처인 듯 조선왕릉은 절제된 꾸밈새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국왕이 영면한 곳으로서 품위와 신성함을 지키고 있다. 조선의 역대 왕들은 왕릉 주변에 적극적으로 숲을 가꾸고 산불과 벌레, 벌채 등으로부터 숲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관리하였다. 그 덕에 수백 년간 가꾸어져 온 넓고 울창한 숲이 서울 등 수도권에 녹색 휴식처로 남게 되었다.


02.남양주 사릉 홍살문 능침뒤 숲길 03.고양 서오릉의 소나무 길 04.조선왕릉 분포

수백 년 역사와 휴식이 함께 가는 길

조선시대였다면 일반 백성은 감히 출입할 수 없었던 금기의 장소였겠으나 지금의 우리에게 조선왕릉은 걸으며 휴식 할 수 있는 숲길이기도, 수백 년 역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적이기도 하다. 굳이 무거운 왕들의 역사를 되새기지 않더라도 가볍게 숲길을 걸으며 힐링하기 위해 왕릉을 방문해 보면 어떨까. 왕릉 입구와 능 주변, 능과 능 사이, 장소마다 조금씩 다른 숲을 만날 수 있다.


무덤가에 죽 둘러 심은 소나무를 도래솔이라고 하는데, 왕릉의 능침을 둘러싼 키 큰 소나무 숲은 마치 살아생전 왕좌의 배경이 되었던 일월오봉도 병풍 속의 소나무처럼 잠든 국왕의 뒤를 위엄 있게 지키고 있다. 아침나절 능역을 덮은 매끈한 잔디밭 위로 길게 드리워지는 키 큰 소나무 그림자는 볼 만한 장관이다. 소나무는 십장생 중 하나이며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세한삼우 중 하나이기도 하여 왕조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나무로 왕릉 전역에 가장 많이 심었다. 남양주 사릉 홍살문에서 관리사무실까지 이어지는 약 600m 구간은 아름다운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이다. 가을에 가면 사릉 입구의 빨간 단풍까지 즐길 수 있다. 고양 서오릉에도 소나무길이 있다. 이 길은 꽤 가파르기 때문에 편한 신발을 신고 가길 당부한다. 도심의 회색 빌딩 숲 사이에 뜬 녹색 섬 같은 서울 선릉과 정릉에서도 운치 있는 소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참나무는 잎이 크고 두꺼워 화재에 강한 편이라 왕릉 주변에 많이 심었다. 화성 융릉과 건릉에 특히 참나무의 한 종류 상수리나무가 많다. 정조 때 사도세자의 현륭원(지금의 융릉)을 조성하면서 참나무 도토리 알을 수십만 개나 심었다고 한다. 이들 도토리가 자라서 만들어졌을 정조 건릉 가는 길의 상수리나무 숲길은 나무가 위로 곧게 뻗어 소나무 숲과는 다른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조선왕릉 능역 입구 습지대에는 오리나무가 많다. 대표적인 오리나무 숲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헌릉과 인릉 초입의 군락지이다. 이곳 숲길에서는 곳곳에 물웅덩이와 작은 수로가 있어 다양한 습지성 식물이 함께 자라고 있다.


조선왕릉에는 회색 줄기가 울룩불룩하고 짙게 우거져 녹음을 드리우는 서어나무 숲도 몇 군데 있다. 고양 서오릉에는 서어나무길이 있고, 구리 동구릉에는 선조가 잠든 목릉 진입로에 서어나무 군락이 있다. 휘릉에서 경릉을 연결하는 숲길에도 서어나무와 때죽나무가 자란다. 때죽나무는 왕릉에 많이 심었던 꽃나무로 5~6월에 종 모양의 작은 흰꽃이 수백 송이씩 흐드러지게 핀다. 백신 접종이 빠르게 이루어지며 이제 조금은 상황이 좋아질 것 같은 희망이 보이는 요즘, 그동안 지친 마음을 가까운 조선왕릉을 찾아 숲길을 걸으며 쉬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인적이 많지 않은 숲길에서 스마트폰은 잠시 놓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숲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기운을 받아보자.



글. 이홍주(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학예연구사) 사진. 서헌강(서헌강사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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