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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감은사지, 태극·해룡의 만남
작성자
조상순 연구관
게재일
2016-10-13
주관부서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
조회수
1759

 


  우리 전통을 상징하는 문양은 여러 개가 있겠지만,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태극(太極)일 것이다. 태극은 유학(儒學), 특히 (性理學)에서 모든 존재와 가치의 근원을 뜻한다. 태극의 원리가 담긴 주역(周易)이 한반도에 전래된 이후, 이황과 이이를 비롯한 많은 유학자들이 태극과 관련된 연구를 하였다.


  태극은 우리 일상생활의 많은 곳에서 다양한 문양으로 채택되었는데, 태극이 건축물에 구현된 예도 많다. 가장 찾기 쉬운 곳이 바로 전국 곳곳에 위치한 230여개의 향교 입구에 있는 홍살문이다. 이 홍살문 위를 보면 여러 개의 화살 모양 나무가 서 있는데, 그 한 가운데에 태극 문양의 나무판이 있다. 태극은 2태극 또는 3태극으로 되어 있는데, 색채는 일정하지 않다. 수원 화성의 문루나 숭례문, 흥인지문의 문루에도 태극은 그려져 있다.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태극은 2009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복암리 고분에서 발굴한 목간(木簡)에 그려져 있다. 하지만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극은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있는 감은사지에서 볼 수 있다. 감은사지는 신라 제30대 임금인 문무왕이 왜군을 진압하기 위해 짓기 시작한 사찰로, 그의 아들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중앙 건물인 금당(金堂)의 기단 아래에 동해바다를 향한 구멍을 두어, 자신의 사후 해룡(海龍)이 되어 머물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사지 앞 동해바다에는 그의 유해를 모신 대왕암이 있다. 한편 사지에는 우리나라에서 3층 석탑으로는 가장 큰, 높이 13m가 넘는 동서 삼층석탑이 우뚝 서 있고, 두 탑 사이에 놓인 금당 남쪽에 가로로 긴 석재 서너 개가 놓여있다. 금당의 기단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재의 면에는 톱니 같은 이등변삼각형 수십 개와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다. 사찰에 유학의 원리를 뜻하는 태극이 새겨진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고구려에서 불교가 공인된 372년 이전에 유학은 한반도에 전해졌고, 이미 태극은 그 때 부터 많은 곳에 문양처럼 쓰이지 않았을까.



  1,300년 전 신라의 왕이 야심차게 건설했던 감은사는 탑과 터만 남은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남은 유적만으로도 역사적 상상과 감흥에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한여름 풀숲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는 태극 문양과 해룡의 출입구는 지금 같은 가을이 되면 완연한 모습을 드러낸다. 더불어 이른 아침의 찬 바다와 조금은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만나는 시간이 되면, 아주 가끔 해무(海霧)가 대종천을 거슬러 감은사지로 오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해룡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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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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