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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느림과 정치精緻 미학의 정수精髓, 사경寫經
작성일
2013-04-18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6109



우리나라 사경의 시작과 발전

사경은 글자 그대로 불교 경전을 서사敍事하는 일로 불교 전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불교의 공인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처음 이루어진다.『삼국사기三國史記』권제18,「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제6 소수림왕조小獸林王條의 기록을 통해 이때 승려 순도가 전진前秦의 왕 부견의 명을 받아 불상과 불경을 전하였음을 알수 있다. 이어 374년에는 진秦의 승려 아도가 온다. 이에 375년에 초문사를 지어 순도를 머물게 하고 이불란사를 지어 아도를 머물게 했다. 이를 통해 불교 공인에 이어 사찰을 건립하고 불법佛法을 널리 홍포弘布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불법 홍포의 기본 매개물이 바로 사경이므로 불교 공인과 함께 대대적인 사경 사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경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처음에는 묵서로 죽간竹簡이나 목독木牘, 혹은 견백帛등에 행해지다가 제지법의 발달로 백지묵서 사경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목판 인쇄술이 개발되면서 백지묵서 사경이 담당했던 광선유포廣宣流布(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일)의 기능은 인쇄술에 넘겨주고, ‘경전 서사의 공덕’이라는 신앙적인면과 한 점 한 획도 소홀히 하지 않고 집중하는 수행의 측면, 고귀한 재료로 법사리法舍利를 사성한다는 공양의 의미가 강조되면서 사경은 금자경, 은자경과 같은 장엄경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공덕경과 공양경, 수행경의 극치는 한 글자를 서사하고 절을 한 번 하는 일자일배경, 한 글자를 쓰고 세 번 절을 하는 일자삼배경, 손가락을 찔러 피를내어 서사한 자혈경刺血經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판하본과 같은 사경을 바탕으로 보다 효과적인 광선유포를 위해 개발된 목판경, 보다 오래도록 보존하고자 돌에 새긴 석경과 최상의 공양물로 사성된 금판경, 동판경, 옥경玉經등 매우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한국 전통사경의 국가적, 세계사적 의의

한국의 사경은 크게 다음 두 가지 면에서 세계사적인 의의와 가치를 지닌다. 첫째는 세계 인쇄술 개발을 촉진시켰다는 점이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과 금속활자 인쇄물이 한국의 사경유물이다. 748년 이전에 인쇄되어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 봉안된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770년에 인쇄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보다 20여 년, 868년 인쇄된 중국의『금강경』보다는 무려 120년 앞선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이다. 그리고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직지심체요절』(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은 쿠텐베르그 성경보다 70여 년 앞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이다. 이러한 인쇄술이 사경의 광선유포 기능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개발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사경은 세계사적인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

둘째는 불교 전래국 중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문화예술 분야라는 점이다. 특히 고려시대에 찬란히 꽃을 피우게 되는데, 이러한 성취의 바탕에는 국가와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과 백성들의 수희隨喜동참이 있었다. 고려왕조 약 500년 동안 사경전문기관(사경원, 금자원, 은자원)에서 6,0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대장경을 금자金字, 은자銀字, 혹은 목판木板으로 10여 차례 제작하였다. 특히 금자대장경과 은자대장경 제작기술은 중국을 월등히 능가하여 원나라에서는 고려에 사경 전문가 파견을 여러 차례 요청했고, 때로는 중국에서 고려에 관리를 파견하여 금자대장경, 은자대장경을 제작해 갔을 정도로 한국의 사경은 불교 전래국 중 최고의 성취를 이루었던 문화예술이다.

백지묵서 사경이나 감지나 상지에 금니, 또는 은니로 서사한 1차사경으로약50점의 유물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금판경, 석경목판경 등과 같이 사경이 재료에 의해 변형된 2차사경까지 포함하면 200점이 넘는 사경유물이 현재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전체 지정문화재의 1/10에 해당하고, 단일 종목으로는 가장 많은 수량이다. 이들 사경유물 중에서도 특히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이라는 점에서, 국보 제196호 신라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은 우리나라 고대 서예사·회화사·불교사·사회사·국어사·건축사·염색사 등 다방면에 걸쳐 효시가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국보 제123호 금판『금강경』은 한문으로 새겨진 현존하는 세계 유일무이의 금판사경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국보 제32호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역시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완본 목판대장경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인 가치를지닌다.



한국 전통사경의 정신성과 미학

사경은 성인이 설하신 진리의 말씀을 정성스레 서사하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수행의한방편이기도 하다. 진리는 청정, 그 자체이기 때문에 사경에 있어서도 세 가지의 청정이 기본이 된다. 첫째는 마음의 청정이요, 둘째는 몸의 청정이며 셋째는 도구와 재료의 청정이다. 이 세가지 요소가 청정한 가운데 조화를 이룰때사경은 수행이 된다. 여기에 또 다시 세 가지 장애가 없어야 하는데 욕심, 성냄, 어리석음이 바로 그것이다.
사경작품은 이렇게 삼청三淸과 삼무三無수행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고귀한 법사리法舍利임과 동시에 가장 승화된 정신세계의 산물, 즉 예술의 정화精華이다.
사경은 짐승의 털로 만든 지구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붓을 사용하여 머리로는 하늘의 정기를 내려 받고, 다리로는 땅의 정기를 끌어올려 몸과 조화를 이룬후, 삼매三昧속에서 그 기운을 곧게 세워진 원추형의 붓끝 0.1mm를 통해 종이에 순일하게 담는다. 뿐만 아니라 전통사경의 표지와변상도는 그야말로 정치하기 이를데없다. 이러한 정치함은 앞서가는 마음을 제어하여 현재심現在心에 머물게 하는 느림의 미학을 통해서만 구현된다. 사경이 추구하는0.1mm의 극미極微의 세계는 고도의 정신집중, 즉 삼매를 통해서만 진입이 가능하고, 그 때 비로소 극미의 세계에 우주가 담기게된다.이러한 정신세계는 무한한 수련의 바탕 위에 아주 작은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하지않고자하는 지극정성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극정성은 경전의 내용을 일상생활 속에서 구현하는것으로 환치된다.즉 사경은 고요히 자신을 돌아보게하고 매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태도로 삶을 전환시켜주는 것이다. 바쁜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사경의 ‘느림과 정치의 미학’을 통해 부족한 자양분을 보충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글, 사진. 김경호(전통사경기능전승자,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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