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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문화재의 뒤안길⑨-관음보살상(서울경제, '19.9.6)
작성자
손영문
게재일
2019-09-06
주관부서
대변인실
조회수
761


문화재의 뒤안길⑨ (서울경제, '19.9.6)


고려 의종의 기원 품은 관음보살상


글 /손영문 문화재청 전문위원



10편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전경).JPG


2007년 초여름, 문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안동 호숫가의 작은 사찰인 보광사(普光寺)를 조사하던 학예사가 관음전에 봉안된 관음보살상이 예사롭지 않다며 사진 한 장을 다급히 문화재청으로 보내왔다.

2G폰의 낮은 해상도 사진이었지만, 고려 시대에 제작된 수준 높은 보살상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발견 당시 보살상은 현대 도료로 투박하게 칠해져 있었지만, 고려 사람들이 추구했던 기품 있는 아름다움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직접적 단서는 아니어도, 의미 있는 복장유물들이 발견됐다.

1007년에 간행돼 우리나라 두 번째 목판인쇄물에 해당하는 ‘일체여래심비밀전신사리보협인다라니경’이 꾸며지지 않은 목판 형태 그대로 인출됐다. 고려 의종(毅宗) 때 간행된 다라니(범서총지집)류도 주목받았다.


정황자료들은 이 보살상과 고려 왕실의 밀접한 관련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광사와 가까운 곳에 용수사(龍壽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은 고려 의종 때 다시 지어져 의종이 섬기는 부처인 목조관음보살상이 봉안된 곳이었다.

의종은 고려 어느 왕보다도 관음 신앙이 깊었다. 침향목으로 관음보살상을 제작하게 했고 관음탱화도 많이 조성했다. 용수사에 봉안된 이 불상은 을미의병(1895년) 때 용수사가 폐사되자 인근 보광사로 옮겨 모셨다고 전한다.


향나무로 제작된 관음보살이라는 점, 의종대 국왕의 축수(祝壽)를 기원하며 찍은 다라니가 복장 속에 다량 들어있는 점, 그리고 두터운 도료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기품 넘치는 자태 등에서 의종이 장인에게 명하여 만들었다는 고려 최고의 관음보살상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의종의 기원이 담겼을 것으로 보이는 목조관음보살상은 1년 뒤인 2008년 8월 보물 제1571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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