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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려운 계산도 척척 동양의 지혜‘주산’
작성일
2014-12-05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5932

어려운 계산도 척척, 동양의 지혜 ‘주산’
2013년 12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김장문화’와 

함께 중국의 ‘주산·주판셈 지식 및 활용’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최종 선정됐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무형

유산이 된 주산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수학 교과서에 등장했던 중요한 계산법이었고, 주산왕으로 뽑힌 인

물이 TV에 출연해 암산하는 모습이 종종 방영되기도 했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가정집이나 골목의 구멍가게 

아저씨가 즐겨 사용하던 주산이 어느 날 계산기로 바뀌더니 이제는 무형유산으로 남은 것이다.

01. 17세기 유럽에서 쓰인 주판 ⓒCarlos Dorce 02. 1990년대에도 주산은 필수기능으로 

인기가 높았다. 1993년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전국주산경기대회가 열린 시험장의 모습이다. ⓒ동아일보 03. 옛날 주

판의 모습. 윗 칸이 하나인 것과 두 개인 것이 큰 차이다. ⓒ한국사진사연구소

 

대제국의 통치에 필요한 주판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Herodotos)에 의하면 문명의 발생지인 이집트에서 일찍 이 주판 같은 계산도구의 사용이 있었다고 한다. 주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사용됐는데, 메소포타미아는 은화 를 사용할 정도로 이집트보다 상업이 발달했었고, 제곱과 세제곱, 제곱근까지 점토판으로 표를 만들어 휴대할 정도 였으니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는 주판이 필요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용되던 주판 ‘애버커스(abacus)’는 대리석 판에 홈을 내서 작은 구슬을 늘어놓은 형 태였다. 그 후 서양문물을 싣고 실크로드를 통과하던 상인들에 의해 애버커스가 중국에 전해진다. 중국인들은 대나 무를 가늘게 쪼개어 만든 ‘죽산’이란 것을 계산도구로 사용했는데, 죽산의 대나무 살에 구슬을 꿰어 ‘주판(珠板) 또는 산반(算板)’이라 불리는 중국식 주판을 만들어냈다. 애버커스와 달리 계산을 하다가 떨어뜨려도 구슬이 쏟아 질 염려가 없었다. 중국인들의 지혜였다.

현재 우리가 덧셈과 뺄셈뿐만 아니라 곱셈, 나눗셈까지 편리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10진기수법으로, 0부터 9 까지 인도인이 발명한 10개의 숫자 덕분이다. 그런데 중국의 주판은 5진법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위 칸에는 구슬 2 개를 놓고, 아래 칸에는 5개를 놓았는데 위 칸의 구슬 하나는 아래 칸의 구슬 5개에 해당한다. 실제로 사용할 때 위 칸의 구슬 2개를 내리면 10이 되어서 왼쪽에 있는 아래 칸의 구슬 1개를 올려야 한다. 위 칸 구슬을 2개씩 내리다 보니 번거롭게 느껴져 나중에는 위 칸 구슬 1개를 생략해버렸다. 한 줄에 7개가 나란히 줄을 섰던 주판 구슬이 6개 로 변한 것이다. 그 다음엔 아래 칸의 5개 구슬도 다 올리면 위 칸의 1개를 내렸는데 그럴 필요 없이 4개로 줄이는 게 더 편리함을 깨달았다. 이건 상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던 일본인의 지혜였다.

 

주산과 암산 실력이 수학 실력으로 평가되던 시절

조선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해결해야 했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농지의 면적을 계산해야 했고, 병사들을 징집하 고, 말과 소의 사료 계산, 곡물의 수확과 저장할 창고의 계산 등 수학문제가 매우 많았다. ‘산가지(또는 산목)’를 사용하여 수학문제를 풀었는데 조선 선조 때에 이르러 중국의 주판이 보급되었지만 크게 활용되지는 못했다. 임진왜 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주판은 아래 칸 구슬이 4개로 생략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5개 구슬이 나란히 줄을 선 일본식 주판이 우리나라로 역수입된다. 그리고 1920년 즈음에 조선주산보급회가 결성됐고, 1936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학교)에서 처음으로 주산경기대회가 열리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광복 후 1950년대에는 상업학교 교육과정으로 주산과목이 채택됐고, 1960년대에는 초등학교 산수교과서에 수록되 면서 주산실력은 특기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필자 역시 초등학교 때 쓰던 일본식 주판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주산능력은 곧 암산으로 연결되었고, 암산의 계산능력은 곧바로 수학실력으로 평가됐던 당시였다. 바둑과 태권도처 럼 승급과 승단의 시험을 치르면서 실력을 쌓던 시절이기도 했다.

한편 계산기에 밀려 찾아보기 힘들어진 주판은, 최근에 서울 등 대도시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교육용으 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뉴스가 뜨고 있다. 컴퓨터게임과 스마트폰에 중독된 어린이들을 치료하고 또 예방하기 위 한 차원에서 집중력, 수에 대한 직관력과 연산을 촉진하기에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산교육이 수학교육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수학에서는 문장제 문제를 읽은 후 식을 세우는 문제해결력과 도형에 대한 감각, 논리성, 추리력 등의 훈련이 요구된다.

현행 7차 교육과정에서는 계산기 사용과 컴퓨터의 활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 것도 그 맥락이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우리 아이들이 당차게 헤쳐 나가도록 학부모의 지혜가 필요한 시대라 하겠다.

 

글 계영희(한국수학사학회 부회장, 고신대학교 인문사회복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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