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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연을 닮다 자연을 담다
작성일
2014-03-1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9731

자연을 닮다 자연을 담다 - 지구촌의 환경문제가 인간의 신체까지 해(害)를 가하고 있다.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 자연의 순리는 편리함에 밀려 잊혀졌고, 사람들은 인위적인 것에 길들여졌다. 그러자 사람들의 몸에는 점차 인위적인 것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어났고, 이에 따른 부작용들이 사회적 문제로 드러났다. 이로 말미암아 요사이 부쩍 천연(天然), 친환경, 자연 친화, 유기농(Organic) 등을 찾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뒤늦게나마 ‘자연스러운 삶’을 동경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우리 옛 선조들은 이미오래전부터 자연의 순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삶을 의식주 전반에서실천하고 있었다.

 

화장문화에 담긴 자연

필자는 우리나라의 화장문화를 언급할 때마다 자연을 닮았다고 한다. 그러면 이것이 인위적이지 않다는 의미의 자연스러움인지, 아니면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의미인지를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한 번도 명쾌하게 답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 무엇이 되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는 뜻이다. 우리의 화장문화를 설명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통사회에서 화장의 의미는 단순히 얼굴만을 꾸미는 것이 아니었다. 외면은 물론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가꾸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장은 겉모습을 억지로 꾸며 화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가꿔 인품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강조한 것이었다. 또한, 전통 화장의 화장재료와 화장법 등을 살피다 보면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일까? 문헌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자연물에 비유해 예찬하는 수사법이 자주 사용되었다. 전통사회에서 화장에 필요한 모든 재료는 자연에서 얻었다. 여성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천연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화장재료를 사용했다. 수분이 많은 과일과 열매로 피부의 수분을 보충하고, 곡식의 기름으로 피부의 윤기를 더했다. 분을 바르고 꽃의 붉은 색을 볼과 입술, 손톱에 담았다. 그리고 또한 세정력이 우수한 조두(.豆)를 이용해 피부의 때를 벗겨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현대 여성들이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사용하고자 하는 천연화장품을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시대별 화장문화의 변화

화장의 기원은 신체 보호와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화장의 시작은 중국의 기록인 『삼국지』 등의 문헌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북쪽 지방에 있었던 읍루(.婁) 사람들은 겨울철 돼지기름을 피부에 발라 추위와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였고, 마한(馬韓)의 남자들은 몸에 문신했다고 한다.

고대 한국의 화장 역사를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자료는 출토유물과 기록이 전해오는 삼국시대 이후부터다. 삼국시대 유적 발굴지에서는 화장품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병과 합, 그리고 거울과 빗, 장신구 등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해 우리는 생생한 고구려의 화장문화를 볼 수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이마에 연지를 바른 고구려 예인(藝人)들에 관한 기록이 전한다.

백제의 화장법은 고구려의 화장법과 조금 달랐다. 백제는 일본으로 화장문화를 전수할 만큼 발전했었는데, 중국 수나라의 역사서 『수서』에는 백제 여인들이 분은 바르되 연지는 하지 않는[施粉無朱] 화장법을 즐겼다고 나와 있다.

신라는 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는 영육일치사상(靈肉一致思想)으로 외모를 가꾸는 일을 중시했다. 신라의 화랑(花郞)들은 여성 못지않게 화려한 치장을 즐겼다. 특히, 신라는 종교적 의미에서도 청결한 몸과 치장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화장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 이후, 화려했던 통일신라의 화장문화는 문화 번영기였던 고려로 이어졌다.

고려시대에는 일반 여성과 직업 여성의 화장문화에 차이가 있었다. 직업여성들은 진한 분대화장(粉黛化粧)을 하여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반면 여염집 여성들은 옅은 화장인 담장(淡粧)을 선호했다.

‘고려 여인들은 몸치장에 있어 얼굴에 바르는 것을 좋아 하지 않아 
분만 바르고 연지를 쓰지 않으며 버들잎 같은 눈썹을 그렸다.’ 
서긍(徐兢)『 선화봉사고려도경』(1124)

고려를 방문한 북송의 사신 서긍은 고려시대 여러 가지 생활모습을 기록에 남겼다. 그는 부녀자들의 옷차림과 화장문화에 대한 기록도 남겨 고려 여인들의 화장법을 우리에게 전했다.

고려시대는 화장문화가 매우 발달했던 시기였다. 여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화려함을 추구했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청자와 거울[銅鏡] 제작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청자 제작기술의 발달로 청자 화장용기가 보급되었으며, 거울 제작기술의 발달은 거울이 화장도구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고려의 화장문화와 달리 조선의 화장문화는 사회이념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화장문화는 이전 시기보다 소박해졌고 단아했다. 이 시기에는 유교 윤리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에서 배어나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더욱 중요시했다. 조선 역시 진한 화장을 했던 직업 여성과 수수한 화장을 했던 일반 여성의 화장법이 달랐다. 여성들은 의례나 나들이, 손님을 맞을 때만 화장을 했으며, 평소에는 옅은 분과 눈썹만 그렸다. 여성들은 외모에 관심을 두는 것을 항상 경계로 삼았다.

화장하고 음탕한 일 경계하시니 治容誨淫有戒辭
아녀자 심성은 착해야 하네. 兒女心性盖善推
이른 새벽 세수하고 빗질만 하지 淸晨早起.梳足
거울 앞에 앉아서 눈썹은 왜 그리나. 肯把銅鏡.蛾眉
김삼의당(金三宜堂) 글을 읽고 나서[讀書有感] 『삼의당유고』 中

반면, 조선시대 남성은 신라의 화랑처럼 외모를 가꾸는데 공을 들였다. 그러나 조선 남성의 단장(丹粧)은 수신(修身)을 위한 것으로, 멋이 아닌 흐트러지지 않은 선비의 자세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지켜야 할 복식예절과 더불어 거울을 봐야 함을 언급했다. 거울을 보는 이유는 옷과 관모를 바르게 하기 위함[整衣冠]과 타인이 보게 될 자신의 태도를 존엄하게 하기 위함[尊瞻視]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조선의 선비들은 휴대용 손거울인 면경(面鏡)을 갖고 다니면서 의관(衣冠)이 바르게 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조선 선비의 아름다운 기품은 이렇게 자신을 수양(修養)하는 모습에서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다.

01. 전통 화장재료들. 쌀가루에 황토, 갈근 및 기장가루 등을 섞어 다양한 색분을 사용하였다.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02. 조선 선비들의 휴대용 손거울인 면경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03. 고려시대 부인들의 화장품을 담는 용기인 청자상감모자합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04. 신윤복의 <미인도>. 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거의 민낯에 가까운 여인의 얼굴이다. 눈썹은 실눈썹으로 가늘게 하고 입술은 붉은 연지를 발라 자연스러운 화장을 보여주고 있다. ⓒ간송미술관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불변의 기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미(美)를 판단하는 보편적 기준은 다르다. 사회적 환경과 조건에 따라 시대별 사상이 달라지듯 아름답다고 여기는 감정과 생각의 기준도 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화장문화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이것은 한국 화장문화의 주된 화두이다. 심지어 요즘에는 의술의 힘을 빌려 자신의 얼굴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성형수술을 한 뒤에도 그 결과의 자연스러움을 되묻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전통사회의 화장법은 분은 바르되 너무 두껍지 않고, 연지는 홍조가 띨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화장법은 흰 피부를 강조하는 일본 여성이나 색조화장에 신경을 썼던 중국 여성의 화장법과는 달랐다. 과장되고 인위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피부색을 살리고 생기가 도는 듯한 자연스러운 화장을 더욱 선호했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것을 경계하는 것은 비단 여성의 일만은 아니었다. 항상 단정한 옷차림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조선 남성들도 인위적인 꾸밈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이덕무는 인위적으로 가꾸는 것을 경계해야 할 행동으로 보았는데, 『사소절』에 따르면 구레나룻을 깎고[刷.], 눈썹을 족집게로 다듬을 때[.眉]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하지 않고 모양을 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깎고 다듬는 것을 경계해야 할 요망한 용모이자 보기에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했다.

자연스러운 미의 추구는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여성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화장법이 대세다. 화장했으나 안한 듯한 자연스러운 ‘생얼 피부’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는데, 이를 반영하듯 뷰티 관련 방송과 광고에서는 연일 생얼 화장을 위한 화장품과 화장법들을 앞다퉈 소개하고 있다. 이 열풍은 멀리 타국 여인들의 마음마저 움직여 한국의 화장법에 매료된 각국의 여인들이 한국식 화장법을 따라 하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한국 화장품을 찾는 수요도 늘어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자연을 닮은 아름다움이 만개하듯 한국 화장문화의 전성기가 활짝 열리고 있다.

글 이지선(코리아나 화장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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