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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편견에 맞선 조선의 예인 최북
작성자
황정연 연구사
게재일
2016-04-21
주관부서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조회수
2075

 


  여기 18세기 조선에 태어나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한 화가의 초상이 있다. 머리에 탕건을 쓰고 가슴까지 내려온 덥수룩한 수염에 꼭 다문 입술, 상체를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왼쪽 눈 옆으로 눈꺼풀이 내려앉은 애꾸눈이 보인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최북(崔北, 1712~약1786). 19세기를 대표하는 인물화가인 이한철(李漢喆)이 그렸다고 하기에는 작품수준이 높지 않지만 화면 속 최북의 모습은 그의 삶이 결코 녹녹치 않았음을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그가 한쪽 눈을 잃게 된 사연은 중인출신 화가 조희룡(趙熙龍)의 글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어느 날 지체 높은 사람이 최북에게 그림을 구하였으나 마음처럼 안 되자 협박을 하니, ‘남이 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나를 저버리는 구나!’ 하면서 자신의 한쪽 눈을 찔러 멀게 했다는 것이다. 최북의 친구 신광하(申光河) 역시 그가 외눈이었다고 한 것을 보면 조희룡의 말이 허튼 것은 아니리라.


  보잘것없는 신분에 ‘붓으로 먹고사는 이[毫生館]’, ‘칠칠이[七七]’ 등 스스로를 비웃음 짓는 호(號)를 지은 그였지만 권력 앞에서 굴하지 않고 예인(藝人)으로써  당당하게 자긍심을 내보인 것이 최북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안산선비 이현환(李玄煥)은 자신의 문집에 최북의 유언과도 같은 말을 대신 남겼다. “세상에는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무네. 참으로 그대 말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나를 떠올릴 수 있으리. 뒷날 날 알아줄 사람을 기다리고 싶네.” 아마도 최북이 자신의 눈을 찌르면서까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지키고 싶었던 마지막 자존심, 곧 ‘참된 나’가 아니었을까.


  이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옛 글귀가 있다. 바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우연히 눈을 뜨게 된 어느 장님에 대해 쓴 글이다. 그는 지금 앞을 보게 되었음에도 장님이었을 때 잘만 찾아가던 자신의 집조차 찾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박지원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왜곡된 세상을 향해 스스로 눈을 감아버린 최북. 그의 애꾸눈은 세상에 휩쓸려 내면을 잃어가는 우리들에게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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