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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충시설, 역사 인식과 민족 정체성의 산실
작성일
2020-05-29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833

현충시설, 역사 인식과 민족 정체성의 산실 보훈의 본질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다. 보훈정책은 국가가 존립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과정이 수많은 국가유공자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보답은 국가와 국민의 기본적 책무라는 인식에 기초해 있다. 나아가 나라를 위한 헌신이 명예롭고 존중받는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함으로써 국가공동체의 영속적 발전을 위한 정신적 가치를 확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01.목포시 현충탑.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유공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목포시 옥암동에 건립됐다. ©국가보훈처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으로 점철된 역사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따라서 이런 국가적 기억을 보전하고 후세에 전승함으로써 사회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보훈의 핵심 기능 중 하나로 역사 인식이나 정체성의 근거를 제공하는 선양정책이 있다. 보훈에 내재한 독립, 호국, 민주의 기억을 발굴, 보전, 전승하고, 이를 국가와 사회발전에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밝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양정책은 자기가 속해 있는 국가를 사랑하고 이 사랑을 바탕으로 국가에 충성·헌신하려는 의식이나 신념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선양정책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인적, 물적 또는 무형적, 유형적 형태를 막론하고 한 민족이나 국가가 경험한 사실이나 가치다. 그리고 현충시설은 이런 선양정책의 대표적 수단이라 하겠다.


02. 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적성비. 신라 진흥왕 때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의 적성(赤城)에 세워진 비석이다. ⓒ문화재청 03.사적 제21호 경주 김유신묘.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장군 김유신의 무덤이다. ⓒ문화재청

우리나라 보훈제도의 발전

현충시설의 의미와 사례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나라 보훈제도 발전을 개략적이나마 검토해 본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보훈제도는 국가수호를 위해 공을 세운 유공자에 대한 예우라는 점에서는 현재 보훈제도와 역사적 맥락이 닿지만, 적용 범위나 내용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보훈제도는 고조선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발견된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다음 신하들에게 “공을 세운 자에게 상을 베풀고 전사한 자를 추모하라”라는 군공자(軍功者) 포상과 추모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신라는 대표적 보훈기구로 상사서(賞賜署)를 두고 있었다. 보훈의 내용으로는 관직을 통한 보답이나 식읍, 토지, 물품 등의 경제적 보답 외에 장례, 제사, 추모법회 등의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 창령 등에 세운 진흥왕순수비나 단양적성비 등이 영토 확장을 기념하고 민심을 고무하는 동시에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수들을 표창하고 이름을 남기는 국가적 기념사업이자 현충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의 보훈제도를 보면, 대표적으로 태조 왕건이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지 않으면 장래 사람을 고무할 도리가 없다”라는 포고문을 내리고, 공신당(功臣堂)을 짓고 화상(像)을 만들어 후세에 전하도록 했다. 고려시대 대표적 보훈기구로는 고공사(考功司)를 꼽을 수 있다. 고려시대 보훈제도로는 공신의 책봉, 공음, 추증이 있었으며 급전, 면역 등의 우대제도가 시행됐다. 이와 함께 사성(賜姓)을 하거나 사당을 지어 현창(顯彰)하고 법회를 통해 추념하는 등의 활동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보훈제도는 조선이 정치적 성격인 역성혁명에 따라 개국됨으로써 체제 유지적인 성격이 매우 강했다. 공신과 후손에게 관직과 토지 및 노비 지급 등의 광범위한 우대 또는 특권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보훈기구는 충훈부(忠勳府)였다. 충훈부는 공신들을 위한 관부로서 공신 책봉에서 사후의 예장 및 자손의 처우를 포함해 공신 접대, 제향에 필요한 제수 등을 마련하는 일을 맡았다. 충훈부는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전답, 어장, 염분(鹽盆), 노전(蘆田) 등의 별도 재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의병(義兵)을 포함한 유공자에 대한 보훈도 있었다. 전란 중에 전사자 명부를 만들어 가족에게 면역첩과 쌀, 콩 등을 지급했고, 전사장병 휼전(恤典)을 내려 전쟁에 나간 장병의 부모나 처를 위로했다. 현충시설 측면에서도 유공자의 단(壇), 사우(祠宇), 묘우(廟宇) 등을 세워 그 공을 전승하도록 했다. 이처럼 조선시대는 이전 시대에 비해 사당, 비각의 건립 등 공훈 전승을 위한 노력이 한층 강화된 특징이 있다.


04. 사적 제56호 고양 행주산성 대첩비각. 1593년(선조 26)에 왜병과의 전투에서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다. ⓒ문화재청 05.척경입비도. 여진을 정벌하고 영토를 넓히는 고려의 상황을 담은 그림으로 북관유적 도첩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대학교박물관

구국영웅들의 공헌과 희생을 기리는 현충시설

현충시설은 국가유공자 또는 이들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건축물·조형물·사적지 또는 국가유공자의 공헌이나 희생이 있었던 일정한 구역 등으로서 국민의 애국심을 기르는 데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현대 이전의 대표적인 주요 현충시설을 들어보면, 먼저 사적 제21호 경주 김유신묘(慶州 金庾信墓)를 들 수 있다. 김유신(595~673)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삼국통일의 중심 역할을 한 사람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유신이 죽자 흥덕왕(興德王)은 그를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받들고, 왕릉의 예를 갖춰 무덤을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이 죽자 문무왕이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그의 공덕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 그 비는 전하지 않고 조선시대에 경주부윤이 세운 ‘신라태대 각간 김유신묘’의 비만 남아 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현충시설 예로는 사적 제323호 파주 윤관장군묘(坡州 尹瓘將軍墓)를 들 수 있다. 고려 중기의 문신인 윤관의 무덤이다. 윤관은 별무반을 편성해 1107년(예종 2)에 여진을 정벌한 후 9성을 쌓았다. 윤관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었으나, 1747년(영조 23) 후손들이 지금의 자리임을 주장해 1764년(영조 40)에 공인됐다. 윤관장군묘 주변에는 후대에 세워진 비석과 석등이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현충시설로는 사적 제56호 고양 행주산성(高陽 幸州山城)을 들 수 있다. 임진왜란(1592) 때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흙을 이용하여 쌓은 토축산성이다.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1593년(선조 26)에 왜병과의 전투에서 성 안의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부녀자들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했다고도 한다. 행주산성 안에는 1603년에 세운 ‘행주대첩비’가 있으며, 권율 장군을 모신 충장사가 있다.


06. 사적 제155호 아산 이충무공 유허. 충무공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지금의 이충무공 유허이다. 1706년(숙종 32))에 사당을 세우고, 1707년 숙종이 직접 ‘현충사’라 이름 지었다. ⓒ문화재청  07. 사적 제105호 금산 칠백의총. 임진왜란(1592) 때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700명의 의병들을 위한 무덤과 사당이다. ⓒ문화재청

희생과 헌신이 존경받는 보훈문화를 위한 현충시설

현재의 현충시설을 살펴보면 법령에서는 현충시설을 독립운동 관련 시설과 국가수호 관련 시설로 구분하고 있다. 이런 현충시설로는 독립운동이나 국가수호와 관련된 각종 기념비, 기념탑, 기념관, 전시관, 사당, 생가 등이 있다.


2020년 5월 현재 기준으로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서비스에 등록된 국내 현충시설은 2,172개소로 그중독립운동과 관련해서는 938개소, 국가수호와 관련해서는 1,234개소가 있다. 전체 현충시설의 시설별 현황을 보면, 비석이 1,088개소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탑 527개소, 동상 160개소, 장소 97개소, 기념관 84개소, 사당 54개소, 조형물 50개소, 생가 46개소, 기타 66개소 등이다.


궁극적으로 현충시설의 의미는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국가공동체를 위한 공헌과 희생정신이 국민의 나라사랑정신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희생과 헌신이 존경받고 예우받는 보훈문화가 우리 사회의 자연스러운 상식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역할이 있다고 하겠다. 이런 취지에서 문화재청에서도 현충시설에 대한 특별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문화재청에서는 소속기관으로 현충사관리소, 칠백의총관리소 및 만인의 총관리소 등을 두어 절박한 국난의 시기에 조국과 민족을 구하고자 순절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의병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선양하고 있다. 이런 문화시설을 통해 문화유산 정보와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동시에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어 우리 사회 보훈문화 진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글. 서운석(보훈교육연구원 연구원,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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