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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건청궁 권역 1]
등록일
2010-06-07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500



 




13. 건청궁乾淸宮 권역









13-h-1 건청궁乾淸宮



위치와 연혁 : 향원정 뒤쪽에 있다. 장안당(長安堂), 곤녕합(坤寧閤), 복수당(福綏堂) 등의 여러 건물을 관명문(觀明門), 필성문(弼成門), 청휘문(淸輝門) 등으로 둘러 독자적인 권역을 만든 것이다. 궁궐 안에 새롭게 궁이라고 이름한 공간을 만든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건물 배치에서도 국왕이 거처하는 건물과 왕비가 사용하는 건물로 나뉘어 있지만 결국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건청궁이란 현판은 이 권역의 제일 남쪽 행각에 낸 내문(內門) 위에 걸려 있다. <원전 1>

이 궁은 1873(고종 10)년에 고종이 친정(親政)을 시작하며 새로 만든 공간이다. 이 해 5월에 건청궁 공사가 지나치게 화려하게 이루어진다는 비판이 있었고, <원전 2> 또 이 해 12월 10일에 이 곳에서 고종이 정무를 살피는 것으로 보아 <원전 3> 이 해에 완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건청궁은 일제에 의해 1909년경 완전히 헐려서 없어져 버렸다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중건하여, 2007년 10월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뜻풀이 : ‘건청(乾淸)’이란 ‘하늘은 맑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乾)’은 ‘하늘’,‘청(淸)’은 ‘맑다’는 뜻이다. 청나라의 자금성 안에도 이 이름의 궁이 있었다.






13-h-2 장안당長安堂

 

위치와 연혁 : 건청궁에 있다. 임금이 소대(召對) 1)를 행하거나 외직으로 나가는 신하 등을 만나는 일이 이 곳에서 있었던 것으로 보아 한때 임금의 편전으로 쓰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원전 4> 편전은 국왕이 일상 정무를 보는 곳이다.

1873(고종 10)년 건청궁을 지을 당시에 처음 만든 것으로 보이며, 지금의 건물은 2006년 복원할 때 새로 만든 것이다.
 

뜻풀이 : ‘장안(長安)’이란 ‘오랜 동안 평안하게 지내다’는 뜻이다. ‘장(長)’은‘오랜 시간’, ‘안(安)’은 ‘평안함’을 의미한다.



 

제작 정보 : 규장각이 소장한 『어필현판첩(御筆懸板帖)』(奎10293)에 고종 친필의 장안당 탁본이 수록되어 있어, 장안당 현판 글씨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어필현판첩』은 1885년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현판은 이 현판첩에서 모사하여 새긴 것으로 보인다. 현판 오른쪽 상단에 임금의 글씨를 뜻하는‘御筆(어필)’이 전서로 새겨져 있고 좌측 하단에는 ‘주연지보(珠淵之寶)’, ‘만기지가(萬機之暇)’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주연지보’는 고종의 낙관이다.





13-h-3 정화당正化堂

 

위치와 연혁 : 장안당의 서북쪽에 붙어 있는 침방(寢房)이다. 곤녕합의 침방인 정시합(正始閤)과 짝을 이룬다.


 

뜻풀이 : ‘정화(正化)’란 ‘올바른 교화’ ‘계통이 바른 교화’를 뜻한다. 한나라 종리의(鍾離意) 2)의 『답부기(答府記)』에 나오는, “올바른 교화의 근본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며 먼 곳으로 미치는 것임을 밝혔다.”<원전 5>라고 한 데서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다.






13-h-4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



위치와 연혁 : 장안당에 부속되어 있다. 곤녕합에 사시향루(四時香樓)가 있는것과 비교된다.


뜻풀이 : ‘추수부용(秋水芙蓉)’이란 ‘가을 물 속의 연꽃’을 뜻한다. “왕우승(王右丞)
3)의 시는 가을 물 속의 연꽃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미소 짓는 것과 같다.”<원전 6>라고 한 것처럼 시를 평할 때 흔히 이 표현을 활용했다. ‘가을 물 속의 연꽃’은 또한 그 자태가 수려하여 예부터 화가들이 즐겨 그리기도 하였다.






13-h-5 초양문初陽門

 

위치와 연혁 : 장안당의 동쪽에 난 문이다. 장안당과 곤녕합 사이 담장에 있다.

 

뜻풀이 : ‘초양(初陽)’이란 ‘처음 나타나는 양의 기운’을 의미한다. 아침 해 혹은 아침 햇살을 초양이라 하기도 하고, 또 동지에서 입춘 이전까지의 시간을 초양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초양은 이른 봄을 뜻하기도 하고 비유적으로 성세(盛世)를 가리키기도 한다.
 

 
 

제작 정보 : 청나라 옹방강 4)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오른쪽 위에 ‘復初齋(복초재)’, 왼쪽 아래에 ‘覃溪(담계)’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둘 다 옹방강의 호이다.






13-h-6 필성문弼成門


 

위치와 연혁 : 장안당의 앞편 담에 있다. 뒤쪽으로 관문각(觀門閣)과 통하던 관명문(觀明門)과 취규문(聚奎門)이 있다.
 

뜻풀이 : ‘필성(弼成)’은 ‘도와서 이룬다’는 뜻이다. ‘필(弼)’은 ‘도우다’, ‘성’은‘이루다’는 뜻이다. 『서경』의 「익직(益稷)」 편 5)에서 출처를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 “계(啓)가 앙앙하고 울어대도 저는 그를 자식으로서 사랑해 주지 못하고 토공(土功)을 크게 헤아려 오복(五服)의 제도를 도와 이루되[弼成] 5천 리에 이르게 하고 각 주(州)마다 열두 명의 제후를 두었으며 밖으로 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섯 수령을 세우니, 각각 나아가 공(功)이 있게 되었습니다.”<원전 7>라고 하였다. 여기서 필성은 신하가 임금을 보필하여 공업을 이룬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제작 정보 : 벽돌로 만든 월문(月門)이며, 글씨는 돌에 새겼다.






13-h-7 관명문觀明門

 

위치와 연혁 : 장안당의 뒤편 서쪽 담에 난 문이다. 필성문과 취규문의 중간에 위치했다. 관문각과 통하던 문이다. 2006년 복원 당시 서양식의 건물인 관문각은 복원하지 않았다.
 

뜻풀이 : ‘관명(觀明)’은 ‘밝은 빛을 살핀다’는 뜻이다. 『주역』의 명이(明夷)괘를 풀이한 「상전」 구절에 대한 북송의 성리학자 정이의 해석에서 출처를 찾을 수 있다. 「상전」에서는 “밝음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명이(明夷)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여러 사람들을 대할 때에 어둠을 써서 밝게 한다.”<원전 8>라고 풀이하였다. 정이는 이에 “그러므로 군자가 밝음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상(象)을 보아 여러 사람을 대할 적에 극도로 밝게 살피지 않고 어둠을 쓰는 것이니, 그런 다음에야 남을 용납하고 여러 사람을 화합하여 여러 사람이 친애(親愛)하고 편안하니, 이는 어둠을 쓰는 것이 바로 밝음이 되는 것이다.”<원전 9>라고 풀이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관명’은 ‘밝은 빛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는 뜻이다. 서쪽 문이므로 땅 속으로 해가 지는 모습에서 명이 괘의 교훈을 살린 것으로 보인다.


 

제작 정보 : 현판은 건청궁 복원과 함께 집자하여 만들었다.






13-h-8 취규문聚奎門


 

위치와 연혁 : 장안당의 뒤편 서쪽 담에 난 문이다. 필성문과 관명문의 뒤쪽에 위치했다.
 

뜻풀이 : ‘취규(聚奎)’는 ‘별들이 규성(奎星)으로 모여든다’는 의미이다. 규성은 이십팔수(二十八宿)의 하나로 문운(文運)을 주관한다는 별이다. 따라서 규성 주위로 다른 별들이 모여든다는 것은 인재가 모여듦을 의미한다.

창덕궁의 후원에는 취규정(聚奎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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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대는 임금이 신하를 불러 만나는 것, 특히 낮시간에 경연관을 불러 정례의 경연 외에 따로 강론을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2) 종리의는 후한 현종 때 관직에 있었던 이로, 청렴함과 충언으로 이름을 남겼다.

3) 왕우승은 당나라 문인 왕유를 일컫는다. 그가 벼슬이 상서우승(尙書右丞)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왕우승이라고도 부른다.

4) 옹방강은 청나라 대흥(大興: 북경)출신으로 호는 담계이다. 시문(詩文)에 능하였고, 고증·금석·서법(書法)에 정통하였다.

5) 『익직』 편은 순임금을 모신 현인 익(益)과 직(稷)에 대한 이야기다. 순 임금과 우(禹)의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인용된 부분은 우가 대답하는 부분으로, 계는 우의 아들이다. 자식도 제쳐놓고 나라를 돌보았음을 말하는 대목이다.

 

 

<원전 1> 『궁궐지』, “南行閣九間, 內門, 則乾淸宮.”

<원전 2> 『일성록』 고종 10년 5월 10일(丁亥),“副護軍 姜晉奎上疏, 請宮後勿事侈大. 賜批. 疏略曰…(중략)…伏聞, 又有乾淸宮經始之役, 頗尙宏麗云. 此不過時備臨幸之所, 而將焉用彼壯麗而過爲靡費也.…(중략)…伏乞務從省約, 勿事侈大, 加意於緝熙懋敏之學焉.”

<원전 3> 『일성록』 고종 10년 12월 10일(甲申),“召見領議政李裕元于乾淸宮.”

<원전 4> 『일성록』 고종 28년 1월 29일(甲午),“召見慶尙監司 李永于長安堂.”; 『일성록』 고종 28년 10월 17일(戊申), “行召對于長安堂, 承旨鄭恒朝, 閣臣金晩秀, 玉堂閔泳錫, 假注書崔泳龍, 史官尹斗炳\金德洙.”

<원전 5> 종리의, 『답부기』, “明正化之本, 由近及遠.”

<원전 6> 『은거통의(隱居通議)』 권6, 敖器之詩評, “評曰, 魏武帝如幽燕老將, 氣槪?雄. 曹子建如三河少年, 風流自賞. 鮑明遠如饑鷹獨出, 奇矯無前…(중략)…彭澤如絳雲在?, 舒卷自如. 王右丞如秋水芙蓉, 倚風自笑.”

<원전 7> 『서경』 「익직」, “啓呱呱而泣, 予弗子. 惟荒度土功, 弼成五服, 至于五千, 州十有二師. 外薄四海, 咸建五長, 各迪有功.”

<원전 8> 『주역』 「명이」, “象曰, 明入地中, 明夷.君子以, 衆, 用晦而明.”

<원전 9> 위에 대한 『정전』의 주, “故君子觀明入地中之象, 於衆也, 不極其明察而用晦, 然後能容物和衆, 衆親而安, 是用晦乃所以爲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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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1]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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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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