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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부여 왕흥사지(사적 제427호)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개최
등록일
2004-06-14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7620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백제문화권 주요유적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부여 왕흥사지(史蹟 제427호)에 대한 제5차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를 6월 15일(화) 11시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 왕흥사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실시한다. 부여 왕흥사지는 백제 법왕(法王)2년(AD. 600년)에 창건하여 무왕(武王) 35년(AD. 634년)에 낙성된 사찰로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사찰의 유래와 관련된 자세한 기록이 전해오고 있는 백제의 대표적인 가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유적이다. 2000년부터 실시된 왕흥사지 발굴조사는 이번이 5차조사로서 지난 4월 16일부터 60여일간 실시되었는데, 이번조사에서는 4차조사에서 확인된 서회랑지(西回廊址)와 사역 남쪽에 위치한 동서석축(東西石築)에 대한 정밀조사를 진행하여 왕흥사지 사역의 범위와 가람구조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까지의 조사로 추정되는 왕흥사지 가람구조는 탑지(塔址)와 금당지(金堂址)가 남북일직선상에 배치된 전형적인 일탑일금당식(一塔一金堂式)의 백제시대 가람구조이며 사찰의 동서회랑의 폭이 58.7m로서 부여 능산리사지(陵山里寺址)와 유사한 규모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회랑지는 백제시대 와적기단(瓦積基壇) 기법으로 축조되어 있는 건물지로서 회랑의 북편에 별도의 건물지가 이어져 축조된 평면구조를 보이고 있어 백제금동대향로(國寶 제287호)가 출토된 부여 능산리 사지(사적 제434호)의 가람형태와 동일한 구조로 파악되고 있어 향후 진행될 발굴조사가 더욱 주목되고 있다. 또한, 사역의 남쪽에서 동서방향으로 길게 연결되고 있는 석축은 사역의 경계를 벗어나 서편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양상이므로 당시 백마강을 건너 왕흥사지로 진입하는 배를 댈 수 있도록 설치한 접안시설이나 사찰 내 대형연못의 호안석축(護岸石築)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양각연화문양전(陽刻蓮花紋樣塼), 소형 연목와(小型 椽木瓦)를 비롯하여 7세기 전반으로 파악되는 토기와 기와 등 100여점의 중요한 유물을 수습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앞으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왕흥사지의 전체적인 가람배치와 사역범위에 대하여 관계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그동안 부분적인 범위에 대한 발굴조사방식에서 벗어나 추정 사역지 전면에 대한 발굴조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갈 계획이며, 사역 중심부 발굴조사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 사역 중심의 농업용 배수로의 조기이전과 주변지역에 대한 추가적인 토지매입을 관계기관에 적극 건의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오후 3시부터 왕흥사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각종유물과 자료를 현장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현장설명회도 함께 개최하여 백제시대 유적에 대한 지역주민과 관련학자들의 이해를 높일 예정이다.
문의, 문화재청 부여문화재연구소, 전화 041-833-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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