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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_전주시]
등록일
2011-08-01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511

 

 

 

 

12. 조선 왕실이 발원한 곳 - 전주

 

 

전주는 900년에 견훤이 후백제를 세운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이 있던 매우 큰 도시였다. 이 때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전주객사와 전주성의 남쪽 문인 풍납문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풍남문을 중심으로 전주한옥마을과 남부시장이 연결된다. 또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조선 건국 후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신 경기전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를 총괄하는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이며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된 전주사고가 남아있는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12-1 노선 살펴보기

 

 

전주역을 출발해 전주를 한바퀴 순환하는 코스로 대부분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있어 초보자에게도 무난하다. 하천변 도로가 끝나고 전주객사 부근은 주변에 재래시장이 있어 차량에 주의해야 한다. 전주객사를 나와 구 전북도청, 풍남문까지는 이면도로를 이용하므로 보행자와 통행차량을 조심하고, 풍남문부터 관광객이 많이짐과 동시에 전통기와집 등 진귀한 옛 소품, 주위 풍광이 아름다워 자전거로 스쳐가기 아까우니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둘러보며 지나가도 좋을 듯 하다. 한욕마을을 지나면 전주역까지 잘 만들어진 자전거도로를 이용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다.

 

 

 

12-2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적지

 

 

경기전

 

조선 태종때 전주, 경주, 평양에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어용전을 지었다.
태조 진전이라고 부르다가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이 재건하였다.
경기전 정문앞 하마비가 남아 있는데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적 제339호.

 

관람료는 무료이고, 관람시간은 하절기(3월~10월) 9시~18시, 동절기(11월~2월) 9시~17시 입장은 관람종료시간 한 시간 전까지 가능



덕진연못

 

덕진연못은 덕진지라 불리었고, 전주부성의 북방만이 공허하여 땅의 기운이 얕다는 이유로 가련산과 건지산 사이를 제방으로 막아 지맥이 흐르지 않도록 만들어진 연못이다. 연꽃이 유명하여 여름에 활짝 핀 연꽃이 호수의 절반을 덮는 장관을 만들어낸다. 이 연못을 중심으로 전주의 대표적인 덕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 전주객사

 

고려, 조선시대 각 고을에 설치된 객사는 위패를 모시고 궁궐에 예를 올리고,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하던 건물이다. 국가에 일이 있을 때는 백성과 함께 의식을 행하였다. 보물 제583호인 전주객사 현판에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 풍남문

 

고려시대에 처음 세웠지만. 이후 정유재란과 화재로 불타버렸다.
그 후 영조 44년(1768)에 전라감사 홍락인(洪樂仁)이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이라 이름했다.
성문 위에 세운 누각의 기둥이 아래층에서부터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도심에 자리한 단아한 성문에서 옛 전주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관향(貫鄕 :시조(始祖)가 난 곳)으로 중국 한고조 유방의 고향 풍패(豊沛)에 빗대어 '풍패향' '풍패지향' 이라 불렸다. 풍남문이란 이름에는 풍패향 전주의 남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영조 10년(1734) 전주성의 동서남북 네 곳에 문루가 세워졌는데, 남문은 안팎으로 홍예를 틀어올리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올린 모습으로 명칭은 명견루, 풍남문의 전신이다. 영조43년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이듬해 복구되었고 관찰사 홍낙인에 의해 '왕실이 발원한 곳이자 예부터 풍패라고 일컬어 온 연고로' 명견루를 풍남문이라 고쳐 부르기 시작하였다.


                                                                                             자료출처:답사여행의 길잡이13 [돌베개]

 

 

전주전동성당

 

전주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호남지역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건물이다. 19세기 말 천주교가 허용되면서 현재 위치에 임시 본당을 만들었다. 이 후 동학농민운동 등으로 신자의 수가 증가하자 1908년, 명동성당 내부를 건축한 프랑스 신부의 설계로 착공되었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아름다운 건물로 영화 '약속''태극이 휘날리며' 촬영지로 유명하다. 사적 제288호

 

 

 

 

 

전주한옥마을

 

전군가도(전주~군산간 도로) 개설 이전의 전주는 성 안과 성 밖의 계급 차이가 뚜렷해 을사조약 이후 들어온 일본인들은 주로 서문밖에 거주하였다. 그러나 양곡수송을 위한 전군가도가 개설되면서 성곽의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었고 일본인들은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였다. 이런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한옥촌은 일본식 건물과 대조되면서 독특한 도시색을 만들어냈다.
현재 이 지역은 경기전, 향교 등 조선시대의 건축양식과 일제에 의한 가옥구조의 변질, 근대 한옥의 변천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구 전북도청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로 갑오농민전쟁 때 집강소를 설치하기 위한 전주화약을 맺었으며, 전봉준은 집강소를 총괄하기 위해 부속건물인 선화당에 대도소를 설치하였다. 1951년 무기고 폭발로 선화당과 서류가 유실되었고 여러 차례의 증축에도 전체적인 모습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전라감영 복원이 준비 중이다.

 

 

 

12-3 지도로 보는 전주시

 

 

* 이미지 사이즈가 커서 지면에서는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도로 보는 전주시 이미지 파일은 아래부분에 파일로 첨부합니다 *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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