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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종묘_정전 권역]
등록일
2011-04-04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230

 

 

 

 

 

8. 정전正殿 권역

 

 

 

 

 

7-h-1 정전正殿


위치와 연혁: 국보 제227호인 종묘의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이다. 조선 초에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 익조, 도조, 환조) 신위를 모신 건물이었다. 그 후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와 조선 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 되었다. 정전은 영녕전과 구분하여 태묘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전은 처음에 태실(太室) 7칸, 좌우에 딸린 방이 2칸이었으나 1592(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1608(광해군 즉위)년에 고쳐 지었다. 그 후 영조와 헌종 때 증축하여 현재 태실 19칸으로 되어 있다. 현재 정전에는 서쪽 제 1실에서부터 19명의 왕과 왕비의 신주를 각 칸을 1실로 하여 모두 19개의 방에 모시고 있다. 이 건물은 맞배지붕 형식이며 칸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조이다. 19칸이 옆으로 길게 이어져 우리 나라 전통 건축물 가운데 단일 건물로서는 가장 긴 건물이다.

 

 

뜻풀이: '정전(正殿)'은 '여러 채로 구성된 건물 군(群) 가운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건물'을 뜻한다. 각 궁궐의 정전에는 '근정전(勤政殿)','인정전(仁政殿)','명정전(明政殿)'등 고유한 이름이 있으나 종묘의 정전에는 특정한 이름이 없다.

 

 

 

7-h-2 공신당功臣堂

 

위치와 연혁: 정전의 남쪽 신문으로 들어가 동쪽에 있다. 국가와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임금의 생존 시에 공로가 큰 신희들의 신위를 해당 임금의 묘정(廟庭)에 함께 모셨다. 고려 때는 이러한 목적의 건물을 대부분 사찰에 건립하였으나, 조선 시대에는 종묘에 세웠다. 태조의 공신 조준(趙浚, 1346~1405년)을 비롯하여, 27대 임금인 순종의 공신 서정순(徐正淳, 1835~1908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19분의 임금 신위에 배향된 83위의 공신이 모셔져 있다. 창건 당시에는 5칸짜리였으나 공신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 규모가 계속 커져 지금은 모두 16칸의 긴 건물이 되었다. 이 곳에 모신 공신은 이른바 배향 공신으로, 국가의 위난과는 상관없이 생전에 공적이 많은 사람을 해당 임금의 사후에 선정한 것이다. 개국공신·정사공신·좌명공신 등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공을 세운 28종류의 공신과는 성격이 다르다.

 

 

뜻풀이: '공신당(功臣堂)'은 '공신(功臣)'을 모신 사당'이라는 뜻이다.

 

 

 

 

 

7-h-3 칠사당七祀堂


위치와 연혁: 정전의 남쪽 신문으로 들어가 서쪽에 있다. 각종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사명(司命)·호(戶)·조·문(門)·여·행(行)·중류(中류)라는 신들이 있고, 이 모두를 합쳐 칠사(七祀)라 부른다. 계절에 따라 각각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봄에는 사명과 호, 여름에는 조, 가을에는 문과 여, 겨울에는 행과 중류를 모셨다. 이 가운데 사명과 여를 제외한 다섯 신은 따로 오사(五祀)라고 한다.

 

 

뜻풀이: '칠사당(七祀堂)'은 '일곱 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이라는 뜻이다. 사명(司命)은 삼명(三命)의 감찰을 주관하고, 호(戶)는 출입을 주관하고, 조는 음식을, 문(門)은 출입을 주관하고, 여는 살상과 형벌을 주관하고, 행(行)은 도로의 행작(行作)을 주관하고, 중류는 거처를 주관한다.

 

 

 

 

 

7-h-4 수복방守僕房

 

위치와 연혁: 정전 동문의 담에 잇대어 북쪽 방향으로 자리한 4칸짜리 맞배지붕 건물이다. 제사를 준비하는 관원들과 종묘를 지키고 청소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거처하는 집이다.

 


뜻풀이: '수복(守僕)'은 조선시대 종묘서나 향실을 관장하던 교서관을 비롯해 각 단(壇)·능(陵)·궁(宮) 등에 소속되어 청소하는 일을 담당하던 잡직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 건국 이후 고려 시대의 제도를 계승하여 '상소(上所)'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1438(세종 20)년에 의정부의 건의에 따라 수복으로 개칭하여 「경국대전」에서 제도화되었다. '수복방'은 이들이 거처하는 방이라는 뜻이다.

 

 

 

7-h-5 전사청典祀廳

 

 
위치와 연혁: 정전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종묘의 제사에 사용하는 제사 음식을 장만하던 곳이다. 부엌의 기능을 하였으므로 신주(神廚)라고도 한다. 마당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였다. 마당에는 제수를 준비하던 돌절구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주실은 정면 7칸, 측면 2칸이고 옆에 온돌과 마루방을 들여 행각으로 꾸몄다.


뜻풀이: '전사청(典祀廳)'은 '제사를 맡은 집'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제사에 쓰이는 여러가지 용품을 관장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전(典)'은 '맡는다','관장한다'는 뜻이고 '사(祀)'는 제사를 뜻한다. '전사(典祀)'는 원래 주나라 때 춘관에 속하여 제사를 맡아 보던 관직 이름으로도 쓰이던 말이다.

 

 

 

7-h-6 악공청樂工廳

 

 

 
위치와 연혁: 종묘 제례 때 음악을 담당한 악공들이 준비하며 연습도 하고 대기하던 곳이다. 악공청은 두 군데로 정전과 영녕전 밖 서남쪽에 각각 있다.
정전에 부속된 악공청의 경우 지금은 개수하여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으며 문짝 없이 기둥만 남아 있다. 영녕전에 부속된 악공청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정전의 악공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작다. 이들의 원래의 모습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뜻풀이: '악공청(樂工廳)'은 '악공(樂工)들이 대기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제례에는 으레 음악이 연주되었으므로 악공들이 대기하는 장소가 필요하였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3]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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