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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대조전 권역]
등록일
2010-09-06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108







6. 대조전大造殿 권역










6-h-1 대조전大造殿
 
 

위치와 연혁 : 왕비가 거처하는 정당(正堂) 1)이다. 궁궐의 내전에서 가장 중심이되는 곳으로 중궁전(中宮殿)이라고도 불린다. 대조전은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無樑閣) 지붕을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무량각을 구성한 이유는 대조전의 집채가 대지를 상징하는 곤전(坤殿) 2)인 까닭에 하늘 높이 용마루가 솟지 않도록 한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건물에서 성종(1494년), 인조(1649년), 효종(1659년),철종(1863년), 그리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1926년)이 승하하였다.

대조전은 조선 1405(태종 5)년에 처음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를 비롯하여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불이 나서 다시 지어야 했다. 지금의 건물은 1917년에 또 화재를 당하여 불에 탄 것을 1920년에 경복궁에 있던 교태전을 헐어 이 곳에 옮겨지은 것이다. 경복궁에서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을 헐어다 희정당(熙政堂)을 지을 때 왕비의 침전이던 교태전(交泰殿)도 함께 옮겨다 대조전을 지었는데,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창덕궁에 적합하도록 그 구조는 새롭게 하였다.

헌종 연간에 발간된 『궁궐지』에 의하면 당시 대조전 현판 글씨는 순조의 어필이었다고 한다.



 

뜻풀이 : ‘대조(大造)’는 ‘큰 공업(功業)을 이룬다’는 뜻이다. 문헌상에 처음 보이기는 『춘추좌전(春秋左傳)』3)「성공(成公) 13년」 조인데, 여기서 “문공께서 그 사태를 걱정하셔서 제후들을 타이르시자 진나라의 군사들이 돌아가 아무 해가 없었으니, 이는 우리 나라가 서방의 그대 나라에 대해 큰 공이 있는 것[大造]입니다.”<원전 1>라고 하였다. ‘대조’는 흔히 ‘지혜롭고 현명한 왕자의 생산을 의미한다’고 풀이하기도 하는데 이 곳에서 왕비가 거주했기 때문이다.






6-h-2 흥복헌興福軒

 
 

위치와 연혁 : 대조전 동쪽에 붙어 있는 익각(翼閣) 4)이다. 주로 임금이 친왕(親王) 5)과 조정 대신들을 접견하던 장소로 쓰였다. 경술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국치를 가져온 어전회의가 열렸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뜻풀이 : ‘흥복(興福)’은 ‘복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6-h-3 선평문宣平門


 

위치와 연혁 : 대조전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다. 희정당(熙政堂)과 통한다. 높은계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는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을 함부로 볼 수 없게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뜻풀이 : ‘선평(宣平)’은 ‘화평(和平)을 세상에 펼친다’는 뜻이다. 중국 한나라(기원전 202년~기원후 220년) 때 장안성(長安城) 동쪽 문 이름으로 쓰였으며, 청나라 때(1636~1912년)에도 지금의 대만 장화시인 장화성(彰化城)의 남문 이름으로 쓰였다.






6-h-4 요휘문耀暉門

 
 

위치와 연혁 : 대조전 서쪽에 있는 문인데 남쪽을 향하고 있다.

 

뜻풀이 : ‘요휘(耀暉)’는 ‘밝게 빛난다’는 뜻이다.



 

제작 정보 : ‘耀(요)’는 ‘曜(요)’와 통용자이고 ‘暉(휘)’는‘輝(휘)’와 통용자여서 여러 문헌에 서로 뒤섞여 나온다. 『순종실록(純宗實錄)』에서는 ‘曜暉門(요휘문)’이라고 하였다.






6-h-5 경극문慶極門

 

위치와 연혁 : 대조전에서 서쪽으로 오가는 문이다.
 

뜻풀이 : ‘경극(慶極)’은 ‘경사스러움이 지극하다’는 뜻이다.



 

제작 정보 : 현판의 글씨는 예서체(?書體)를 차용한 서체이다.






6-h-6 경훈각景薰閣
 
 
 

위치와 연혁 : 대조전 뒷마당의 서쪽에 있는 건물이다. 동쪽에는 집상전(集祥殿)이 있고 서쪽에는 경훈각이 있었는데 집상전은 화재로 소실된 후 복구되지 않아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경훈각은 원래 2층 건물로, 아래층을 경훈각이라 하고 위층은 징광루(澄光樓)라고 하였다. 1461(세조 7)년에 창덕궁 각 방의 이름을 붙일 때 누상을 징광루, 누하를 광세전(光世殿), 광연전(廣延殿)이라고 했다는 기록<원전 2>이 있는 것으로 보아 경훈각은 광세전과 광연전이 후에 변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경훈각에는 선조(宣祖, 1552~1608년)가 명나라 신종(神宗, 1563~1620년)에게서 받은 망의(?衣) 6)를 보관하였고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1610~1644년)의 어필을 새긴 편액이 걸려 있기도 하였다.<원전 3> 영조 때는 중전이 승하하자 대렴(大殮) 7)을 행한 시신을 이 곳으로 받들어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원전 4>

경훈각은 인조반정 때 소실되어 1647(인조 25)년에 중건하였는데 1833(순종 33)년에 또 큰 불이 나 타버렸기 때문에 다음해에 중건하였다. 1917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20년에 중건하였는데 이 때 경복궁 자경전(慈慶殿) 북쪽에있던 만경전(萬慶殿)을 헐어다가 단층으로 건립했기 때문에 누상에 해당하는 징광루는 지금 남아 있지 않다.

『궁궐지』에는 숙종이 지은 「경훈각시(景薰閣詩)」가 실려 있다.<원전 5>

 

뜻풀이 : ‘경훈(景薰)’은 일반 시문(詩文)에서 ‘춘화경명(春和景明)’처럼 주로‘경광(景光), 즉 경치가 훈훈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위층의 누각 이름이 ‘징광(澄光: 맑은 풍광)’이었음을 상기하면 그런 뜻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그러나 이 건물의 용도를 고려해 본다면 ‘경(景)’은 ‘우러르다(仰也)’, ‘사모하다(慕也)’라는 뜻을 취하고 ‘훈(薰)’은 ‘훈도(薰陶)’8)의 뜻으로 보아 ‘훈도를 우러러 사모하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숙종의 「경훈각시」에는 두 가지 뜻이 다 담겨 있다.

 

제작 정보 : ‘薰(훈)’은 ‘熏(훈)’의 통용자로 쓰인 듯하다. 왕조실록에 ‘景熏閣(경훈각)’이라고 한 용례가 보인다.






6-h-7 청향각淸香閣
 
 

위치와 연혁 : 대조전 동쪽 뒤편에 있는 건물이다. 『동궐도』에도 보이지 않고 남은 기록이 전혀 없다. 1917년 11월 대조전이 화재로 타버리자,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다 복구하였는데, 이때 딸려 온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집상전이 1667(현종 8)년에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1618~1674년)를 위하여 경덕궁(慶德宮)의 집희전(集禧殿)을 헐어다 만든 것이고, 대조전 일대가 모두 왕후나 대비를 모시는 건물임을 고려한다면, 청향각은 집상전 혹은 대조전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보관하던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뜻풀이 : ‘청향(淸香)’은 ‘맑은 향기’또는 ‘맑고 향기롭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인 용어라서 그 유래를 확정하기 어려우나 『오례통고(五禮通考)』9)의 「길례(吉禮)·배위작헌주보령지곡(配位酌獻奏保寧之曲)」조에 “술이 맑고 이에 향기로우며[酒淸斯香], 희생이 깨끗하고 이에 크도다.”<원전 6>라 하여 제수로 쓰이는 술의 맑고 향기로움을 표현하는 데 쓰였다.

또 『오례통고』의 「가례(嘉禮)·향음주례(鄕飮酒禮)」편에 “저 남쪽 언덕을 바라보니 철에 맞는 물건이 아름답도다. 샘물은 맑고 난초는 향기로우니[有泉淸?, 有蘭馨香], 아침에 마시려 길어오고 저녁 반찬에 맛보도다. 어머니의 얼굴이 기뻐하지 않아 내 마음이 허둥대도다.”<원전 7>라는 대목이 나온다. 아름다운 계절에 아침 저녁으로 어머니를 봉양하나 기뻐하지 않으시니, 내 마음이 초조하다는 내용이다. 이를 종합하면 대조전과 집상전 일대가 여성의 공간이므로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 쓰이는 물품을 관리하는 곳이라는 장소의 의미와 통한다.






6-h-8 여춘문麗春門

 

위치와 연혁 : 대조전과 희정당 동쪽 중간쯤에 남향으로 난 문이다. 본래 여춘문은 『동궐도』에 집상전의 동문으로 그려져 있으나,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다 지으며 집상전 자리로 물려 짓는 바람에 현재는 대조전에 속한다.

1772(영조 48)년 1월에 영조가 이 곳에서 승지에게 명하여 토지와 곡식의 신인 사직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제(社稷祭) 제관(祭官)의 거안(擧案) 10)을 읽게 한 일이 있다.

 

뜻풀이 : ‘여춘(麗春)’은 ‘아름다운 봄’이라는 의미이다. 태양을 맞이하는 동쪽의 문[東門]으로서 그 의미가 잘 통한다. 경희궁 숭정전(崇政殿)의 동문 이름도 여춘문이었다. 여춘은 명나라 세종 때의 연호(1522~1566년)로도 쓰이는 등 옛 문헌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수·당(隋唐) 시대에 건물의 명칭으로 사용된 일이 있고, 중국 남부 복건성 장정현(長汀縣)의 고성(古城)에도 여춘문이 있는데 이 또한 동문이다.



 

제작 정보 : 『동궐도』에는 집상전 동쪽에 동서 방향으로 난 문으로 그려져 있어, 남향으로 난 현재의 문과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






6-h-9 가정당嘉靖堂


 

위치와 연혁 : 대조전 후원 담장 너머 넓은 공터에 있는 정자이다. 대조전 후원 중간쯤의 경사진 계단 끝의 천장문(天章門)을 나서면 북쪽의 넓은 뜰에 외따로 서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뜻풀이 :
‘가정(嘉靖)’이란 ‘아름답고 편안하다’는 뜻이다. 『서경(書經)』의 「무일(無逸)」11)편에 “고종(高宗)이 감히 일을 버려두고 편히 지내지 않아서 은나라를 아름답고 편안하게 만들었도다[嘉靖殷邦].”라는 구절이 있는데, 송대 성리학자 채침(蔡沈, 1167~1230년) 12)이 풀이하기를, “가(嘉)는 아름다운 것이고, 정 (靖)은 편안한 것이다. 가정(嘉靖)이란 예악과 교화가 편안히 거처하며 일을 즐기는 데서 성대하게 나타나는 것이다.”<원전 8>라고 하였다.


 

제작 정보 : 『동궐도』에 보이지 않으므로 19세기 후반, 혹은 일제 시대에 덕수궁의 가정당을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6-h-10 희정당熙政堂

 

위치와 연혁 : 대조전 남쪽에 있는 전각으로 임금이 평상시 거처하면서 사무를 보는 편전이다. 『궁궐지』에 “희정당은 대조전 남쪽에 있는 편전이면서 정무를 보는 곳”<원전 9>이라 하였고, 『동국여지비고』에 “평상시 쉬면서 신하들을 만나는 곳”<원전 10>이라 하였다. 『한경지략』에서는 “희정당은 협양문(協陽門) 안에 있으며 경연, 소대, 인견할 때에는 늘 성정각과 중희당 두 곳에 나아간다.”<원전 11>라고 하였다.

후일 익종(翼宗, 1809~1830년)으로 추존된 효명세자가 대리 섭정하다가 1830(순조 30)년 5월 이 곳에서 승하하였다. 1917년 대조전과 함께 화재로 불타자 경복궁의 강녕전을 뜯어다가 새로 지었는데 이 때 동쪽에 있던 네모난 연못을 없앴다. 전각의 뒤쪽으로 난 선평문으로 대조전과 통한다. 『궁궐지』에는 순조의「어제희정당명(御製熙政堂名)」과 채유후(蔡裕後, 1599~1660년) 13)의 「상량문(上樑文)」, 홍석주(洪奭周, 1774~1842년) 14)의 「중건상량문(重建上樑文)」이 실려 있다.




뜻풀이 :
‘희정(熙政)’이란 ‘화평하고 즐거운 정치’를 의미한다. 정치를 잘하여 모든 일이 잘 되고 모든 백성이 화락하게[萬姓咸熙] 된다는 의미이다.

순조의 「어제희정당명」은 그 이름의 뜻을 풀이하듯, “화락하고 느긋하며, 모든일이 잘 다스려지고, 모든 관리가 잘 단속되며 만백성이 모두 기뻐하도다. 이당에 이름을 지음에 임금의 뜻이 담겨 있으니, 매양 이 편액을 볼 때마다 그 뜻을 어찌 범상하게 여기랴”<원전 12>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석주는 「중건상량문(重建上樑文)」에서, “엎드려 생각건대 별자리가 벌이어 북극성을 우러르니, 상원(上垣)은 명당의 자리를 표시하고, 하관(下管)에선 새 궁전의 송축을 연주하네. 백 개의 건물이 다시 일어나니, 모든 정사가 다 화락 하리로다.”<원전 13>라고 하였다.


 

제작 정보 : 본래 경복궁의 강녕전 건물을 옮겨 지은 것이므로 좌우의 합각벽 15)에 ‘康(강)’, ‘寧(녕)’이란 무늬가 각각 남아 있다. 1920년 완공될 때 건물 안의 양쪽 벽 위에 해강(海崗) 김규진(金圭鎭, 1868~1933년) 16)이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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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당은 한 구획내에 지은 여러채의 집 가운데 가장 주된 건물을 뜻한다. ‘본전(本殿)’과 흡사하게 사용한다.

2) 곤전은 왕비가 거처하던 궁전.

3) 『춘추좌전』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노나라의 역사서인 『춘추(春秋)』를 해설한 책이다.

4) 익각은 정당 양쪽에 세운 각을 뜻한다.

5) 친왕은 친왕은황제의 아들 중황태자 이외의 왕족들에게 책봉되는 칭호다.

6) 망의는 중국 명·청 때 황자(皇子)나 친왕(親王) 등의 관원이 입던 옷이다. 남색바탕에 금실로 이무기[?]를 수놓았는데 신분에 따라 그 마릿수가 달랐다.

7) 대렴은 장례의 한 절차이다. 시신에 새로 지은 옷을 입히고 이불로 싸는 것을 소렴(小殮)이라 하고, 소렴을 한 다음날 거듭 옷과 이불로 싸서 베로 묶는 것을 대렴이라한다.

8) 훈도는 덕(德)으로써 사람의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치고 길러 선(善)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9) 『오례통고』는 중국 역대의 예제(禮制)를 연구하고 정리한 저작이다. 청나라 때 진혜전(秦蕙田,1702~1764년)이 집필했다. “배위작헌주보령지곡”은 후직씨의 신위에 술을 올릴 때 <보령지곡>을 연주한다는 뜻이다.

10) 거안은 공적인 모임에 참여하는 벼슬아치가 임금이나 상관에게 자신의 명함을 올리던 일. 또는 그명함을 말한다.

11) 「무일」 편은 주나라 주공이 성왕에게 왕의 자질을 향상시키고자 역대 임금들의 치세를 들어 훈계한 내용을 기록한 부분이다.

12) 채침은 송대 학자로 주희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주희가 완성하지 못한 『서경』의 주석을 수십년 연구하여 『서경집전(書經集傳)』을 완성하였다.

13) 채유후. 자는 백창(伯昌), 호는 호주(湖洲).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병자호란 후 서장관으로 심양에 다녀왔으며, 효종때 『인조실록』,『선조수정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14) 홍석주. 자는 성백(成伯), 호는 연천(淵泉).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성리학에 밝고 문장에 뛰어나 정조의 문체 반정을 충실히 수행했다.

15) 합각벽은 건물 지붕 모서리에 있는 ‘∧’ 자의 널판지 아래에 세모꼴로 된 벽을 말한다.

16) 김규진은 근대기 서화의 대가. 10여 년간 청나라에 유학하고 귀국해 영친왕(英親王)에게 서화를 가르쳤다. 1903년 한국 최초로 사진관을 열었다. 금강산 그림을 여러 점 남겼으며, 보신각, 해인사, 촉석루 등의 현판이 그의 필적이다.

 


<원전 1> 『춘추좌전』 「성공 13년」, “文公恐懼,綏靜諸侯, 秦師克還無害, 則是我有大造于西也.”

<원전 2> 『세조실록』 7년 12월 19일(乙酉). “傳于禮曹曰, 昌德宮朝啓廳稱宣政殿,…(중략)…樓稱澄光樓, 東別室稱凝福亭, 西別室稱玉華堂,樓下稱光世殿\廣延殿, 別室稱求賢殿.”

<원전 3> 『숙종실록』 30년 3월 19일(戊午).

<원전 4> 『영조실록』 33년 2월 19일(辛巳). “行大斂, 奉移靈床于景薰殿, 仍下梓宮.”

<원전 5> 避暑澄光下, 快哉勝九成, 何須搖羽扇,自覺納凉淸, 氣倦名圖玩, 心閑古韻?, 雲章留海外, 瞻望感予情.

<원전 6> 진혜전, 『오례통고』, 「길례·배위작헌주보령지곡」 “酒淸斯香, 牲碩斯大.”

<원전 7> 진혜전, 『오례통고』, 「가례·향음주례」, “贍彼南?, 時物嘉良. 有泉淸?, 有蘭馨香.晨飮是汲, 夕膳是嘗. 慈顔未悅, 我心靡遑.”

<원전 8> 『서경』 「무일」, “不敢荒寧, 嘉靖殷邦.”; 이에 대한 채침의 주, “嘉, 美. 靖, 安也. 嘉靖者, 禮樂敎化, 蔚然於安居樂業之中也.”

<원전 9> 『궁궐지』, “熙政堂在大造殿南, 卽便殿視事之所也.”

<원전 10> 『동국여지비고』, “燕寢接群臣之所.”

<원전 11> 『한경지략』, “熙政堂, 在協陽門內. 凡經筵召對引見時, 恒御誠正重熙兩所.”

<원전 12> 순조, 「어제희정당명」, “熙熙??, 庶績允釐, 百工允釐, 萬姓咸熙. 此堂命名, 聖意攸在, 每瞻璇額, 志豈泛易.”

<원전 13> 홍석주, 「중건상량문」, “伏以星陳極拱, 上垣表明堂之?, 松茂竹苞 下管(莞)?新宮之頌. 百堵復作, 庶政咸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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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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