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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문화유산 여행길_천재화가 신인선 VS 천재문인 허초희_2]
등록일
2011-11-28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937

 

 

 

 

: 초당마을 :

 

 

강릉 초당 두부가 허난설헌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일대의 지명이기도한 초당(草堂)은 허난설헌과 허균의 부친인 허엽의 호(號)이다. 허엽은 삼척부사로 있으면서 이곳에 집을 지어 정착했고 그 집 샘물의 물이 좋아 이 물로 콩을 가공하고 인근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좋은 물과 영양가 높은 두부도 한몫 했던 것일까? 허엽과 함께 네 자녀는 모두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허씨 5문장가'로 알려진 그들의 저작은 아버지 허엽의『초당집(草堂集)』, 장남 허성의『악록집(岳麓集)』, 차남 허봉의『하곡집(荷谷集)』, 셋째딸 허초희의『난설헌집(蘭雪軒集)』, 막내 허균의『성소부부고(惺所覆부藁)』등이 있다.
허균은 초당마을에서 북쪽으로 20리 정도 떨어진 외가(애일당)에서 태어났다. 허균의 호인 교산은 애일당 뒷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난설헌이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자주 들리던 곳으로 동해가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지금은 교산시비(蛟山詩碑)만이 이 터를 지키고 있다. 시비에는 허균이 임진왜란 때 피난길에서 돌아와 퇴락한 애일당을 고쳐 짖고 살면서 지은 시(詩) '누실명(陋室銘)'이 새겨져 있다.

 

허난설헌의 문학적인 성취 뒤편에는 불행했던 한 여인의 삶이 자리하고 있다. 15세에 안동 김씨 문중으로 시집가 여성이라는 사회적 제약 때문에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친정과는 사뭇 다른 시집의 분위기와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던 남편, 돌림병으로 두 남매를 모두 잃고 뱃속의 아이는 유산되는 등 삶의 질고는 그녀를 벼랑끝으로 몰아갔다.

 

 

 

 

 

 

: 판관대와 봉산서재 :

 

 

지금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세계가 주목하는 곳이 된 평창에는 '십만양병설'의 주인공인 율곡 이이의 잉태설화가 숨겨져 있다.

 

조선 중종 때 인천에서 수운판관을 지낸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는 여가를 틈타 아내가 있는 봉평(평창)으로 오던 중 어느 주막에서 주모가 이원수의 얼굴에 상서로운 기운이 있는 것을 보고 유혹해 자식을 잉태하려 했지만 그는 뿌리치고 집으로 향했다. 강릉 친정집에 머물던 신사임당도 찬란히 빛나는 검은 용이 동해바다로부터 날아오는 꿈을 꾸고는 봉평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율곡 이이를 잉태했다고 전해진다.

 

평창에 있는 판관대는 이원수의 직함을 따서 '이 판관의 집터'라는 뜻을 담고 있는 곳이며, 봉산서재는 이원수와 신사임당이 봉평에서 4년간 거주할 때 율곡을 잉태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사당이다.

 

 

 

: 경기도에 잠들다 :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두 여인은 각각 경기도 파주와 광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신사임당은 38세 되던 해 시어머니의 병이 깊다며 간청하는 남편의 뜻을 따라 서울로 가야했다. 친정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대관령 중턱에서 친정 동네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가마를 멈추고 눈물을 흘리며 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이 시가 바로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이란 칠언절구로 백발의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절절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48세에 숨을 거두며 남편에게 재혼하지 말라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친정의 몰락과 서러운 시집살이, 어린 자녀들의 죽음을 겪으며 허난설헌의 몸은 한없이 쇠약해져갔다. 시대적 한계와 신분적 한계, 여성이라는 성적 한계를 절감하며 머나먼 신선의 세계를 동경했다. 그녀가 23세에 쓴 '몽유광산산(夢遊廣桑山)'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라는 시구(詩句)는 마치 예언처럼 들어맞았고 27세의 천재여류시인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 Infomation :

 

 

 

: Interview :

 

글쓴이 : 이정향 ('Herstory'여성문화유산해설사, 여성문화유산연구회 회장 역임)

 

Q 신사임당 vs 허난설헌

 

A 16세기 조선이라는 동시대를 살았던 두 여성의 삶은 너무나 대조적으로 평가되어 왔다. 신사임당은 이름난 화가와 현모양처로 칭송받고 있는 반면 허난설헌에 관한 조명은 빈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정치적인 영향이 있다고 보는데 위대한 성리학자였던 율곡의 후예들이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도 함께 추앙하려 했을 것이고, 당시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며 역모 혐의를 쓰고 능지처참을 당한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려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Q 신사임당은 정말 현모양처였는가?

 

A 신사임당이 율곡이라는 인물을 길러낸 현모(賢母)인 것은 분명하지만 남편에 대해서 그 시대의 기준에 부합하는 양처(良妻) 아니었다고 본다. 하지만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남편에게 아낌없이 조언하고 친정 부모에게도 최선을 다한 좋은 아내이자 효녀였음에는 틀림없다.

 

Q 여성으로서 허난설헌의 삶을 어떻게 보는가?

 

A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나서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할 만큼 한스러운 삶을 살았다. 죽어서도 남편과 함께 묻히지 못한 쓸쓸한 인생이었다. 중국과 일본 등 외국에서 그녀의 천재성을 더 많이 파악한 것 같다.

 

Q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만나는 여행의 핵심은 무엇인가?

 

A 많은 분들이 이 여행을 통해 페미니스트(?)로 거듭나는 것을 보았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은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본다. 그녀들의 이야기 속에 푹 빠져서 함께 웃고 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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