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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_창녕군]
등록일
2011-09-19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712

 

 

 

 

18. 가야, 신라의 역사 문화 도시 - 창녕

 

 

창녕은 제2의 경주라 불릴 만큼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세계 최고(最古)의 배[船]가 출토된 창녕비봉리패총을 시작으로 삼국시대의 대형고분군,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과 불상, 조선시대의 목조문화재와 석빙고, 초가 등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친 우리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습지인 우포늪이 생태체험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창녕 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인골이 최근 과학의 힘으로 1500년 전의 16세 여성으로 복원되어 큰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다양한 시대·다양한 종류의 문화유산들이 경남의 작은 지방, 창녕에서 찬란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18-1 노선 살펴보기

 

 

답사대상 문화유적이 대부분 읍내에 위치하고 있다. 출발지인 창녕시외버스터미널 [오리정사거리]에서 읍내중심을 통과하여 [송현사거리], 고분군으로 이어지는 24호선 국도구간을 제외하고는 편도 1차로의 골목길을 이용하여야 하기 때문에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술정리 하씨초가, 술정리 동층석탑은 창녕중앙시장을 통과하는데 차로구분이 없고 보행자와 차량 등이 통행이 많아 주의하여야 한다. 이 구간은 안전을 위해 자전거를 끌고 여유 있게 이동하면서 재래시장의 분위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창녕석빙고에서 송현동고분군까지만 오르막이고 이외의 구간은 무난한 편이다. 대부분 자전거를 가지고 답사할 수 있어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

 

 

 

18-2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적지

 

 

◎ 술정리 하씨초가

 

현재 소유자 하병수씨의 17대 조상이 터를 잡은 후 영조 36년(1760)에 다시 지었거나 수리한 집이다. 초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채만 중요민속자료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채는 흔히 초가삼간이라고 하는 一자형 홑집 구조이고 지붕은 억새풀을 엮어서 얹어 수명이 길뿐만 아니라 예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처마가 기둥의 높이만큼 깊은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는 일조량과 강우량을 고려한 남부지방 가옥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창녕탑금당치성문기비

 

통일신라시대 불사 건립에 관한 비석이다. 혜공왕 7년(771)부터 헌덕왕 2년(810)까지 인양사를 비롯한 여러 절의 범종·탑·금당 등의 조성 과정과 승려들의 수행에 대한 내용이 3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고 한 면에는 스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보물 제227호

 

 


 

◎ 창녕석빙고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해 두기 위해 돌로 쌓은 창고로, 봉토가 완전히 남아 있어 마치 거대한 고분처럼 보인다. 입구에 세워진 비를 통해 조선 영조 18년(1742)에 창녕 현감 신서(申曙)에 의해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경주나 안동의 석빙고와 구조는 동일하나 규모가 약간 작다. 보물 제310호

 


◎ 창녕교동고분군, 창녕송현동고분군

 

화왕산성과 목마산성의 아래 위치하고 있는 삼국싣 대형고분군으로, 사적 제80호인 창녕교동고분군과 사적 제81호인 창녕송현동고분군이라 불리고 있다.
총 100여기 이상의 무덤이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일제시기 일본인에 의해 도굴되거나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후 1990년대 고분군 정비계획에 따라 정밀조사가 이루어져 40여기 정도가 복원·정비되어 있다.
두 고분군은 대체로 앞트기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축조 시기는 5~6세기를 중심연대로 하고 있다. 무덤에서는 금속장신구, 마구류, 토기류 등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일제시기에 조사된 유물은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현재 그 행방이 묘연한 경우가 많다.

 

 

◎ 술정리 동삼층석탑과 서삼층석탑

 

창녕읍 술정리의 동쪽과 서쪽에 있어 이름 붙여진 두 탑은 이중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이 올려진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다.
저정명칭으로 인해 한 사찰 내에 있었던 탑으로 여겨지나, 조각수법에서 동삼층석탑은 8세기 중엽, 서삼층탑은 그보다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위로 올라가면서 적당한 비율로 줄어드는 안정감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동삼층석탑은 불국사삼층석탑(국보 제21호)과 비견되나, 서삼층석탐은 전체적으로 동삼층석탑보다 다소 뒤쳐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동삼층석탑은 국보 제34호, 서삼층석탑은 보물 제520호로 지정되어 있다.

 

 

 


◎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진흥왕 22년(561)에 세워진 비이다.
561년 진흥왕이 여러 신료들과 함께 창녕에 행차한 후 그것을 기념하여 세운것인데, 다른 3개의 진흥왕 순수비처럼 비문의 앞에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글귀가 없어 비의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제시되어 있다. 비는 1914년 일본인에 의해 처음 알려진 후 1924년 현재의 만옥정공원으로 옮겨졌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글자가 새겨질 앞부분만을 약간 다듬어 약 400여자 정도를 기록하였는데, 오랜 세월에 글부분이 닳아 판독에 어려움이 있는 부분도 있다. 이 비는 진흥왕대의 정치·사회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18-3 지도로 보는 창녕군

 

 

* 이미지 사이즈가 커서 지면에서는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도로 보는 창녕군 이미지 파일은 아래부분에 파일로 첨부합니다 *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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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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