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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문화유산 여행길_지리산 산림처사를 만나다 1]
등록일
2012-04-16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773

 

 

 

 

- 지리산 산림처사를 만나다

 

 

 

 

 

: 남명 조식 :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선생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같은 해에 태어나 비슷한 시기에 별세했다. 영남을 대표하는 조선성리학의 두 거물은 학문과 윤리로 무장한 당대 최고의 선비로 이름을 떨쳤다. 이 두 사람의 학맥을 따르는 이들은 정치적으로 동인(東人)이라는 한 정파였으나 후에 이황의 문인들인 남인(南人)과 조식의 문인들인 북인(北人)으로 나뉘어졌다. 하지만 정작 퇴계와 남명은 직접 만난 적도 없었다고 전한다.

 

퇴계가 정계의 중심에서 그의 사상을 펼쳤다면 남명은 마치 신선처럼 살아간 인물이었다. 그는 벼슬을 거절하고 오로지 지리산 자락에 머무르며 학문정진과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명종 시기에 현감직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하고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꾸짖는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라는 칼날 같은 상소문을 올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후 선조가 다시 한 번 그를 불렀으나 왕도정치의 이론을 서술한 상소문으로 신하의 도리를 대신하였다.

 

그는 손수 세 칸짜리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검소함을 온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또한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가지고 다니며 방울이 울릴 때 마다 자신을 다스렸고, 작은 칼을 몸에 품고 있어 목에 칼을 겨누는 심정으로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이러한 실천적 삶은 제자들에게로 이어져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야에 은거하며 살아가던 곽재우, 정인홍, 김효원 등 남명의 제자들은 빠짐없이 의병활동의 중심인물이 되어 나라를 위해 몸을 던졌다.

 

덕천서원(德川書院)은 남명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576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서원이다. 광해군 원년(1608)에 사액서원이 되어 국가의 공인과 지원을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30년대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천서원의 첫 이름은 덕산서원(德山書院)으로 도산서원(陶山書院), 옥산서원(玉山書院)과 함께 삼산서원(三山書院)으로 불린다.

 

 

 

 

: 일두 정여창 :

 

 

산청에 조식이 있다면 함양에는 정여창이라는 뛰어난 인물이 있었다.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은 조선 성리학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되었고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과 함께 '동방오현(東方五賢)'으로 불리며 문묘 18현에 배향되었다. 문집에『일두유집』이 있으며, 『용학주소(庸學註疏)』『주객문답설(主客問答說)』『진수잡저(進修雜著)』등의 저서가 있었으나 무오사화(1498년) 때 부인이 태워버려 유집(遺集) 일부가 전할뿐이다. 정여창은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제자로 무오사화 당시 스승과 함께 함경도로 귀양을 떠나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남계서원은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조선 명종 7년(1552)에 지어졌고 명종 21년(1566)에 '남계'라는 사액이 내려졌다. 소수서원과 문헌서원에 이어 조선시대 세번째로 건립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6년(1603)에 나촌(羅村)으로 옮겨지었다가, 광해군 4년(1612)에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건축하였다. 남계천을 앞으로 두르고 경사지형을 따라 세워진 이 곳은 정문 역할을 하는 풍영루의 위풍당당한 모습만으로도 예사 건축물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서원 경내 오른편으로 네모난 작은 연못이 있어 여름철이면 연꽃으로 가득 찬다. 일두는 탁한 물속에서 밝고 곧은 모습으로 세상에 향기를 전하는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 칭하며 사랑하고 가꾸었다고 전한다.

 

한편 남계서원에서 약3km 떨어진 개평리 한옥마을에 가면 정여창이 살았던 고택을 만날 수 있다.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후손들에 의해 19세기 다시 지어진 것이다. 안채와 사랑채를 시작으로 다양한 전통가옥이 어우러지는 고택여행은 시간을 거슬러 조상들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정여창 고택은 박경리 선생의 원작을 각색한 TV 드라마 '토지'에서 '최참판댁'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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