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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도깨비, 그러나 잘 모르는 도깨비에 대한 이해
작성일
2012-07-1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9256

도깨비는 무엇인가

기존에 알려진 도깨비의 속성에서 두 가지 오류를 들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귀면와를 도깨비기와로 부르는 것,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의 모습이 일본의 오니おに에서 왔다는 것이다. 귀면와를 도깨비기와로 부르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형상 때문인데, 오니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일이다. 실상 귀면와는 사찰이나 건물의 지붕에 올려 멀리서부터 잡귀가 침범하는 것을 막아주는 벽사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깨비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귀면와를 도깨비기와로 부르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것은 도깨비의 모습을 오니에서 차용하면서 만들어진 결과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도깨비는 어떤 모습이며, 그 실상은 어떠한지 도깨비와 관련된 이야기와 신앙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도깨비의 형상화는 적합하게 이루어졌는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도깨비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15년 『조선어독본』에서부터이다. 하지만 이때의 도깨비는 표현되어 있지 않고 혹부리영감만이 삽화로 들어와있을 뿐이다. 혹부리영감이 등장하게 된 것은 일본의 『심상소학독본』을 그대로 차용해서 수록한 결과였다. 도깨비의 모습은 1923년 『조선어독본』권2에 등장젤280101 제주도 영감놀이에 나오는 도깨비.하는데, 그때의 모습은 반바지를 입고 있는 형태로 표현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된 것은 1932년 발간된 『조선어독본』에서부터이다. 이처럼 초기의 <혹부리영감>이야기가 수록되었을 당시 도깨비의 삽화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도깨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본인이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농촌이나 어촌에서 조사할 당시 도깨비의 모습은 대개 막연했다. 대개 학교를 다니지 않은 분들에게 그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개 ‘장승같이 큰 놈’, ‘상머슴 같은 놈’, ‘패랭이 쓴 놈’ 등으로 단순하게 표현된다. 최근 도깨비의 모습이 그려진 자료가 발견되었는데, 소치 허련이 그린 <채씨효행도>에 나타난 도깨비불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 역시도 검은 색으로 칠해진 사람의 형상이다.

우리에게 도깨비는 항상 사람을 찾아오는 존재였다. 사람과 같이 어울리고, 사람들을 도와주고,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표현했다. 우리 조상들은 도깨비와 어울리는 이야기들을 많이 전해왔는데, 그런 내용을 보면 도깨비의 속성이나 형상을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야기와 신앙을 통해서 본 도깨비의 모습

15세기의 문헌인 『석보상절』을 보면 도깨비에게 복과 장수를 기원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당시에 도깨비를 믿었던 이유는 현세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특히 당대 민중은 현실세계에서 너무 궁핍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도깨비를 필요로 했다. 요즘에도 벼락부자가 된 사람에게 ‘도깨비 만났나’라고 말하는 이유도 도깨비가 재물 생산의 탁월한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들의 성격은 한국 남성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도깨비 이용해 부자되기>의 내용을 보면, 도깨비가 밤마다 여자를 찾아가 부부관계를 맺고, 여자에게 돈을 갖다 줘 부자로 만들어준다. 도깨비를 이용해 부자가 된 여자는, 사실 도깨비를 무서워 했기에 도깨비에게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도깨비는 순진하게도 자신이 정말 무서워하는 것을 말해주고, 여자는 돈을 제일 무서워한다고 말해 돈만 챙기고 도깨비를 쫓아버린다.

여기서 도깨비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도깨비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명쾌히 보여준 것이다. 제주도의 경우 성인여자가 병에 걸리면 도깨비가 여자의 몸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믿어왔다. 여자를 좋아하다 보니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몸속에 들어가는데, 이럴 경우 여자는 병에 걸린 상태가 된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제주도에서는 영감놀이라고 하는 굿놀이가 활발하게 전승되어 왔다. 이 영감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영감이라고 부르는 도깨비에게 술과 음식을 제공한다. 영감놀이에서 도깨비는 ‘오소리잡놈’으로 표현되는데, 술을 너무 좋아해서 수전증이 있을 정도이다.

도깨비가 좋아하는 두 번째는 씨름하기이다. 장에 나갔다가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오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 씨름을 했다는 이야기는 전국에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씨름이 민중에게 가장 사랑받던 민속놀이였으며, 씨름을 통해서 남성의 힘과 능력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도깨비도 남자라는 점에서 씨름으로 그 지역에서 가장 힘센 존재임을 알리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30도깨비는 항상 힘센 사람만을 골라서 씨름을 하는 탓에 매번 지게 된다. 대개는 밤새 씨름을 하다가 새벽이 되어서 도깨비를 쓰러뜨려서 나무에 묶어 놓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아침에 그곳에 가면 도깨비가 빗자루몽당이나 도리깨 장치 등으로 변해 있다고 한다. 도깨비가 씨름을 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자신의 힘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물론 밤에 사람이 그곳을 지나기 때문에 도깨비가 도전한다는 해석도 있는데, 이럴 경우 고개로 표현되는 그곳은 도깨비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도깨비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 씨름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와 신앙적 속성으로 볼 때 도깨비는 술과 여자, 씨름을 좋아하며, 도깨비가 밤일과 낮일을 잘 할 수 있는 남성이라는 점을 통해서 당대의 남성들이 원하는 남성상을 도깨비에게 투사시켰음을 알 수 있다.

도깨비를 신으로 모시는 신앙들

우리나라에서는 도깨비를 모셔서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올리는 민간신앙이 전해 내려왔다. 그러나 그런 신앙이 전국적으로 골고루 전승된 것은 아니며, 주로 호남지방에서 집중적으로 전승되고 있어 흥미롭다. 먼저 서해안과 남해안을 중심으로 어촌에서는 개인신앙으로 도깨비고사를 올려서 풍어를 기원하였다. 현재는 그 전승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서해안의 갯벌이 발달한 곳에는 대개 고정망인 덤장이나 방렴을 많이 설치하였다. 이런 그물은 고정된 것이라 밀물과 썰물을 이용한 어로방식인데, 도깨비에게 고사를 지내면 고기를 많이 몰아준다고 믿었다. 흑산도나 신안지방에는 도깨비에게 고사를 지내게 된 유래담이 전승되고 있어 도깨비가 신의 위치에까지 올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도깨비고사는 전승이 거의 단절된 상태이다. 뱃고사를 지낼 때 산물을 하면서 “물 위에 참봉, 물 아래 참봉, 고기 많이 잡게 해주옵소서.” 하면서 기원하는데, 이때의 참봉이 바로 도깨비를 말한다.

전라북도 산간지방에서는 도깨비불 때문에 마을에 화재가 많이 났다고 해서 도깨비제를 지내는 마을이 있었다. 이 역시 거의 전승이 단절된 상태로 이때 제의를 주관했던 사람은 여성이다. 남성은 도깨비제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인데, 임실군 관촌면 구암리의 경우만 예외적으로 남성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일제침략기에는 충북의 산간 마을에서 전승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북 순창 탑리와 전남 진도에서는 그 해의 역질(전염병)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여성이 주도하는 도깨비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진도의 경우는 월경피가 묻은 여성의 속옷을 매단 대나무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도깨비를 쫓았다. 특히 얼굴에 검정칠을 하거나, 가면을 써서 알아볼 수 없도록 하였는데, 얼굴을 보이면 제사가 끝나고 나중에 찾아와 앙갚음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순창 탑리는 마을의 사방에 제물을 차려놓고 간략한 축원만을 하는 방식으로 제를 지냈다.



도깨비는 무엇인가

도깨비는 원래 복을 기원하는 대상신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시대가 흐르면서 귀鬼의 존재라 할 수 있는 역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귀신문화가 일본이나 중국만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신에게 기를 빼앗기면 홀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도깨비에게도 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귀와 도깨비의 존재를 혼동해서 사용했던 결과이다. 하지만 도깨비는 도깨비일 뿐이다. 도깨비는 말 그대로 부를 가져다주는 남성적 존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깨비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은 현대에 와서 많이 훼손되었다. 그것은 일제침략기의 교과서에 <혹부리영감>이 수록되면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특히 도깨비의 속성이 변화되면서 도깨비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대개 동화책의 주인공 정도로 알게 되었다. 이제 도깨비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이 필요하다. 도깨비가 가진 상징성을 왜곡하지도, 훼손하지도 말고 도깨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글·사진·김종대 중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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