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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재 발굴과 조사를 위해 현장을 지키다
작성일
2017-10-3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718

문화재 발굴과 조사를 위해 현장을 지키다 -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경주의 천마총이나 안압지와 같은 발굴은 물론 익산 입점리의 백제고분,파주 민통선의 고려시대 벽화고분 등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을 함께한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그는 평생을 문화재 발굴과 조사를 위해 발로 뛰었다. 현장을 지킨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생생한 발굴 이야기를 윤 전 소장을 통해 듣고자 한다.  (좌)1973년 천마총 발굴단. 오른쪽 첫번째가 윤근일 전 소장 (우)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윤근일 전 소장

우연한 기회로 문화재와 연을 맺다

1947년 3월 3일 경북 영주시 안정면에서 태어난 윤근일 전 소장은 조부모와 함께 고향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군장교로 복무 중인 아버지를 찾아 중앙선 야간열차를 타고 홀로 상경했다.

“장교였던 아버지는 5·16이 일어나자 군을 떠나셨어. 상경하고 처음에는 신도림에서 살다가 중동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문래동으로 이사를 갔지. 거기에 똑같이 생긴 일제시대 적산가옥 500채가 있거든. 그래서 갑·을·병·정 이런 식으로 구분했어. 가장 나은 갑은 수도가 집안에 있었고, 그 다음 을과 정은 공동 수도를 썼어. 우리집은 을이었지.”

그가 문화재 분야와 인연이 닿기 시작한 것은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해 故 정영호 교수를 만나면서였다.

“재수 2년 하다 대학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친구 녀석이 원서를 대신 써줘서 단국대에 갔단 말이야. 중간에 군대 갔다 오고, 1973년 졸업하자마자 정영호 선생님 추천으로 천마총 발굴조사에 불려갔어. 그게 지금까지 나를 먹여 살렸네. 그러고 보니 고생도 좀 많이 한 거 같긴 해.”

그가 조사에 관여한 천마총이라든가 황남대총, 안압지 같은 굵직한 경주 발굴 사건은 이제는 워낙 많이 알려졌으므로, 다른 일화들을 듣고 싶다 했다. 그랬더니 쌍봉사 얘기로 시작해 익산 입점리 백제고분이며, 파주 민통선 지역 고려시대 벽화고분, 나주 복암리 고분, 풍납토성 발굴로 쉼 없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발굴 현장 마다 담겨 있는 생생한 이야기

1984년 4월 3일, 전남 화순군 이양면에 위치한 쌍봉사 대웅전이 전소됐다.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삼층목탑 형식인 조선후기 목조문화재가 영영 사라졌다. 귀중한 유산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현재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웅전은 1986년에 복원된 것이다. 화재 한 달 전인 3월, 천마총 발굴을 시작으로 장장 11년간 이어온 경주 생활을 마치고 서울에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실로 자리를 옮긴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쌍봉사 화재 현장 조사를 위해 화순행을 재촉해야 했다.

“그해 여름에 조사를 갔어. 이화여대 진홍섭 선생님을 지도위원으로 모시고, 문영빈 씨랑 지금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있는 조희경 씨랑 같이 두 달가량 기단부 조사를 했지. 특별한 유물이 나오지는 않았어. 그때 일화도 많아. 쌍봉사에 국보로 지정된 철감선사 부도가 있잖아. 하루는 부도를 보니 옥개석이랑 탑신석 틈으로 토종벌이 드나드는 거야. 벌집이 있더라고. 보리순을 구해서 그걸 잠망경처럼 넣어 꿀을 먹기도 했어.”

1980년대, 서해안 도서 조사 때는 간첩으로 몰려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충남 대천항 다방에서 최맹식 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데리고 조사에 나간 길이었는데, 오만분의 일 지도를 펼쳐놓고 조사대상지를 의논하는 모습을 보고는 다방 종업원이 간첩이 나타났다며 신고를 한 것이다. 경찰이 소총까지 들고 나타났다며 호탕하게 웃어 보이는 윤근일 전 소장. 발굴과 조사에 대한 얘기 는 입점리 고분으로 다시금 이어졌다.

“입점리 고분은 고등학교 학생이 칡뿌리 캐다가 발견했어. 거기서 꺼낸 토기를 이리시(지금의 익산시) 공보실장이 몰래 팔려다가 걸렸어. 돌아가신 김기웅 선생하고 내가 밤중에 내려갔지. 그게 구정 전날이야. 처음으로 금동 관장식 투조가 나오고, 화살통 일부도 나왔어. 특이하게도 전복 껍데기를 깔아 배수시설을 했더라고. 아마 백제고분 7기였지.”

민통선 파주 서곡리 고려 벽화고분 조사 때는 지뢰밭을 헤집고 다녀야 했다. “이때도 김기웅 선생이랑 했어. 청주한씨 종친회에서 자기 조상 무덤이라 해서 조사해 달라 한 거야. 한데 안동권씨 묘지석이 나온 거야. 하지만 완전 남은 아니고 청주한씨 외척이었을 거야. 한데 나중에 조사해보니 청주한씨 문중에서 이 묘지석을 먼저 발견하고는 다른 데 갖다놨다가 봉분 옆 잔디밭에 묻어놨던 거더라고. 이 사건으로 두 문중이 재판이 붙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어. 안동권씨 문중에선 고맙다고 박카스 사오고 그랬어.”

수십 년 전 발굴 현장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일처럼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윤근일 전 소장의 숨은 뒷얘기 덕분에 이 글에 언급된 문화유산을 마주할 때면 발굴 당시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글+사진‧김태식(연합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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