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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의보감」 의학의 종합과 전범의 확립을 이루다
작성일
2016-06-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336

 「동의보감」 의학의 종합과 전범의 확립을 이루다 한국 과학문명사에서 봤을 때 『동의보감』은 해외 발신이 가장 널리 된 책으로 이에 견줄만한 것이 없다. 1613년 출간된 지 100여년 후에 일본 판본이 나왔고, 또 다시 50여 년 후에 중국 첫 판본이 나온 이후 중국에서만 30여 판이 출현했며으 오늘날에도 거듭되고 있다. 19세기말 베트남 왕실 도서관 목록에도 『동의보감』이 포함되어 있다. 가히 세계적인 책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동아시아 전통 과학 분야 중 천문학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이런 성취는 한국 과학문명의 넓이와 깊이를 아울러 웅변한다. 동의보감

왜, 동의보감은 숭배의 대상이 됐는가

한국 과학문명에 이바지한 것뿐만이 아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소설과 드라마로 한국인, 더 나아가 한류의 일부로서 그것을 즐긴 세계인에게 『동의보감』과 저자 허준은 이미 익숙한 존재가 되었으며, 2009년 유네스코에서는 전 세계 의학서적 중 최초로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인했다.

그럼에도 책 알맹이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최상급 숭배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는지 의심을 품어야 한다. 『동의보감』이 어떤 점 때문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는지, 또 그런 의서를 탄생시킨 조선의 지적·학문적·사회적 역량이 무엇인지 밝힌 본격적인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룩한 학계의 결과로는 한국 사람끼리는 서로 자랑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되지만 민족적인 자긍심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설득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한국인을 넘어 중국인이나 일본인, 더 나아가 모든 세계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동의보감』의 성격과 가치를 밝히려고 한다.

산에 난 모든 생로를 표시하여 산에서 험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한 것이 허준의 작업이었다. 그는 여러 선현이 앞서 그린 내용을 바탕으로 삼고, 게다가 자신이 의학의 길을 밟으면서 얻은 경험과 정보를 종합하여 전인미답의 새 지도를 그렸다. 허준은 의학을 창시했다는 황제 이후 17세기에 이르는 동아시아의학의 역정 전부를 대상으로 삼아 방대하면서도 정밀한 지도를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말해 의학의 표준을 세운 것이다.

기존 의서의 틀을 뛰어넘다!

고대 중국에서 『황제내경』이 양생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신체와 병증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시도하고 침과 뜸을 이용한 치료법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일목요연한 체제를 이뤘던 것은 아니다. 후대의 의학자들은 『황제내경』이 제시한 체제를 밀고 나가는 대신에 병인(病因), 진단법, 병증 파악, 방제학, 본초, 침구, 부인과와 소아과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의학이론을 확충하고 의술 경험을 축적해나갔다. 특히 금·원대 이후 여러 학자들이 병의 원인을 특정 의학이론에 입각하여 병증을 해석하고 치료법을 제시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의학은 풍부해졌으나 오히려 임상 의사에게는 어떤 것이 올바른지 그른 것인지 혼란 요인이 되었다. 허준보다 약간 앞선 시기인 중국 명대의 우단(虞摶, 1438~1517), 이천(李梴, 16세기 인물), 공신(龔信)과 공정현(龔廷賢, 1522~1619) 부자 등의 여러 의학자들도 이런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으며, 나름대로 통일된 의학체계의 마련과 처방의 취사선택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조선의 의학자인 허준은 이런 결과물로 의학의 혼란이 극복되기보다는 혼란이 가중된 것으로 인식하여 ‘제대로 된’ 새 의서 편찬에 뛰어들었다. 그는 양생학과 의학을 결합한, 기존 의서의 틀을 뛰어넘는 통일된 의학체제를 고안해 냈다.

허준은 “옛것을 기술하기는 하되 새로이 짓지는 않는다”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서술 방침에 따라, 기존 중국과 조선의 다섯의학 전통을 용광로에 녹여 종합했다. 첫째, 양생과 의학 내용을 종합했다. 『황제내경』 이후 양생학과 의학은 별개의 전통으로 나뉘어 진전되었는데, 양생학의 일부 내용을 취한 다른 기존의 의서와 달리 신체와 질병, 약물학과 침구학 등의 전면적인 차원에서 양자를 종합했다. 둘째, 고금의 의학 내용을 종합했다. 고대로0부터 중국 송대 사이의 고방과 금·원 시대 이후 신방의 종합이 그것이다. 셋째, 기존 의학의 혼란 극복과 통일을 주장하고 나선, 위에 언급된 여러 명대 종합 의서의 내용을 다시 일통하여 거대 종합을 이끌어냈다. 넷째, 의학의 영역을 이루는 내과, 외과, 부인과, 소아과, 본초학, 침구학 등 전문 영역의 내용을 종합했다. 다섯째, 조선의학 전통의 종합이다. 여기에는 고려 중엽부터 성장해온 국산약재를 위주로 병을 치료하는 향약의학의 전통을 수렴한 것 이외에도 15~16세기 민간에 널리 보급한 대민 의학, 즉 아이를 낳고 신생아를 돌보는 태산학(胎産學), 구급의학, 두창의 예방과 치료에 관한 의학, 역병에 대응하는 의학, 기근을 이겨내기 위한 구황(救荒) 의학을 종합했다. 동아시아의학사를 아우르는 이런 제반 종합은 ‘종합의 종합’이라 이름 부를만하다.

고금의 의학 전통을 종합, 체계를 제시하다

『동의보감』의 동아시아적 현상은 궁극적으로 의학 분야에서 이른바 동아시아적 전통이 무엇인지에 대해 통찰할 계기를 제공한다. 중국의학사와 한국의학사 학계를 지배한 설명은, 중국의학의 전파와 확산(중국) 또는 자기화(한국)였다. 『동의보감』의 출현과 역류 현상은 이런 해석에 균열 지점을 제공한다. 『동의보감』의 경우, 중심인 중국에 대한 지역적 후진성 또는 지역적 특이성이 주변성을 규정하지 않는다. 『동의보감』을 비롯한 후대 조선 의학 전통은 『소문』과 『영추』에 근본하고 주자학적 신체관을 내세워 당대 중국의학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고금의 의학 전통을 재구성한 것을 조선적 지역성의 특징으로 삼았다. 이것은 대단한 역설이다. 그렇기에 의학 분야에서 중국과 조선의 중심/주변의 관계는 바로 현실적 중국과의 세력 관계에 따른 중심/주변이 아니라, 옛 중화 정신의 혼란과 극복을 기준으로 하여 주변/중심의 역전 현상이 벌어진 특징을 보인다.

『동의보감』 이후 조선의 의가들은 이 책이 의학의 핵심을 다 잡아낸 것처럼 받아들여 추종했다. 중국의 의가들은 『동의보감』의 모든 출처가 중국의서이며, 그 내용을 훌륭하게 정리한 것을 칭송하면서 이 책을 널리 읽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도쿠가와 막부가 직접 나서 어지러운 의학을 바로잡을 전범으로 『동의보감』을 찍어 보급했다. 이렇듯 조선·중국·일본에서 맥락은 약간씩 다르지만, 『동의보감』이 이전 의서들이 성취하지 못한 의학의 종합과 전범의 확립이라는 측면을 높이 평가한 공통점을 지닌다. 세계의학사에서 이 비슷한 사례를 찾는다면, 이슬람의 아비첸나(Avicenna, 980~1037)가 지은 『의학정전』을 들 수 있다. 아비첸나가 다른 지역에서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와 로마의 갈렌의 의학을 종합한 체계를 세웠듯, 허준의 『동의보감』도 다른 지역에서 『황제내경』, 『상한론』 등의 전통으로부터 비롯한 고금의 의학 전통을 종합적 체계로 제시한 성격을 지닌다.

글‧신동원(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장)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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