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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과 긍정의 뿌리
작성일
2015-12-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740

희망과 긍정의 뿌리 반드시 스스로 성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한 터럭만큼이라도 자신의 능력을 낮게 보고 그 목표로부터 물러서거나 다른 일로 미루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보통 사람들도 타고난 본성은 성인과 똑같은 것이다. - 『격몽요결擊蒙要訣』입 지立志 전통 사회가 지향했던 가장 이상적이고 인간적인 목표는 훌륭한 성인 혹은 도인이 되거나 자기 안의 참된 본성을 깨닫고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공부하는 자라면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있다

특히 유교에서는 성인의 말씀을 기록한 여러 경전들을 읽고 그 내용을 실천하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앞서 말한 『격몽요결』은 율곡 이이(李珥, 1536~1584)가 어린 학동들을 위해서 이러한 공부의 지침을 일러준 책이다. “반드시 목표를 세우고 한 터럭만큼이라도 자신을 낮게 보고 물러서거나 다른 일로 미루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인간이 타고난 바탕은 어리석은 자이건 성인이건 누구나 다 똑같이 선하기 때문에 자신의 본바탕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며 열심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인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유교 사회에서 성인으로 추앙된 공자의 생각을 계승한 것이다. 한 번은 제자 염구가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합니다.” 라는 제자 염구의 말에, 공자는 “지금 너는 미리 한계선을 그어놓고 스스로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논어』옹야). 유교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자포자기하는 사람이다. 불교나 도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경지, 궁극적인 목표의 추구는 그 가능성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이런 믿음 위에서 남이 한 번 해서 되면 나는 열 번하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노력하는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워도 종말은 없다

전통 사상에서 긍정과 희망은 개인의 성찰뿐만 아니라 사회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녹아있다. 한 시대의 흐름에는 번성기와 쇠퇴기가 있기 마련이다. 혼란기에 접어들면 불안한 심리가 괴담이나 종말론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 종말론이 종교적인 논리로 성립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 사회의 특징은 혼란기가 곧 세상의 종말로 이어진다는 논리가 존재하지 않고 개벽으로 더 좋은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논리가 유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마다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제하는 인물과 이를 예언하는 책이 등장한다. 『도선비기』, 『남사고비결』, 『토정비결』, 『정감록』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 책들은 도참서에 해당하고 이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된 폐단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형성된 배경이나 이를 믿는 민중의 마음속에는 혼란기를 거치더라도 새로운 세상을 맞아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과 바람이 담겨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이를 구제해 줄 구도자가 나오고 세상의 끝은 멸망이 아니라는 사고는 미륵불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이후 56억 7천만년 뒤에 나타나 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미래불이다. 미륵불이 출현하는 세상은 이상세계로 유리같은 깨끗한 땅에 꽃과 향이 덮여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의 사람들은 수명도 길며 금은보화를 보고도 사사로운 욕심을 내지 않아서 대부분 깨달음의 경지인 아라한과를 얻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륵불을 믿는 사람들은 현생에 수많은 선행과 수행으로 미륵불이 출현하는 미래에 태어나 자신도 깨달은 부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미륵불사상은 선악이 공존하는 고통의 바다인 현 세계가 멸망하거나 고통의 악순환으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모두 구원받는 이상 세계가올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도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도교에서는 신통한 도인이 나타나 세상을 구한다. 도교의 도인들은 매우 많지만 대표적인 도인으로는 태상노군을 들 수 있다. 태상노군은 도가사상의 원류인 노자를 말하는데 그가 세상이 혼란할 때마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다고 한다.

01.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이 지은 『홍길동전』의 주인공이 1500년(연산군 6)을 전후하여 한양 근교에서 농민무장대의 지도자로 활약했던 실존인물이었음이 밝혀지면서 홍길동 출생지를 복원한 생가터이다. 『홍길동전』은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난 자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두피디아 02.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 단군신화의 바탕에는 우리민족의 시조가 곧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의식이 깔려있다. ⓒ연합콘텐츠

 

다시 일어난 사람이 세상을 구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세상을 구하는 도인이 될까? 물론 대부분의 경우, 세상을 구하는 자는 하늘이 낸 자라는 의식이 내재되어있다. 앞서 말한 미륵불은 도솔천에 있다가 때가 되면 이 세계로 내려오는 자이다. 단군신화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여러 건국신화에도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는 우리들의 시조는 곧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의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가령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천제인 해모수의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모습을 갖춘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주몽의 태생은 특별하지만 형제들에게 모함을 당하고 쫓기는 등 어린시절부터 고난을 겪는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이런 어려운 처지를 극복해낸다는 점이다. 우리의 신화나 설화 속 영웅들의 신이한 능력은 태생을 불문하고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그 능력은 고통에 좌절하지 않고 수행을 통해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이것은 헐리우드 영화의 영웅 주인공들이 단지 태생이나 우연적 사건으로 신이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것과 매우 다른 점이다. 가령 헐크의 능력은 화학 실험 사고로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고 슈퍼맨은 외계에서 온 능력자다. 그 밖에 <어벤져스>의 주인공들이 다 그렇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유행했고 현재까지도 잘 알려진 이야기인『홍길동전』의 주인공인 홍길동은 어떤가? 홍길동은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홍길동은 이에 좌절하거나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수련을통해 도술을 익히고 사람들을 돕는다. 물론 시대적인 한계는 있지만 『홍길동전』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비결은 바로 이런데서 비롯된다. 최근 『홍길동전』이 미국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난 자만이 민중의 고통을 이해하고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것이다.

03. 작자 및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장화홍련전』에는 어둠을 헤매는 존재일지라도 원래 악한 이는 없고 그들의 희망을 들어주면 다시 긍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유가 담겨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4. 『정감록』은 조선시대 이 래 민간에 널 리 유포되어온 예언서로, 혼란기를 거치더라도 새로운 세상을 맞아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과 바람이 내재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5.『격몽요결』은 율곡 이이가 어린 학동들을 위해서 공부의 지침을 일러준 책으로, 자신의 본바탕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며 열심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두피디아

 

원한을 풀고 다 함께 살아가자

사람들을 구원하기보다는 기괴한 모습으로 불쑥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는 우리의 귀신이야기에서도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서양 공포영화의 바이블인 <엑소시스트>를 보면 아이의 혼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악령이 나온다. 이 악령의 출몰은 영화 런닝타임 전반에 걸쳐 보는 이를 두려움에 떨게 하지만, 그 악령이 도대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악령은 절대악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귀신이야기에서 절대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각 지방의 귀신이야기를 모아 방송했던 『전설의 고향』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설화에서 사연없는 귀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장화홍련전』을 예로 들어보자. 장화와 홍련은 귀신이 되어 고을에 부임한 사또 여럿을 비명횡사하게 했지만 그들은 단지 너무나 억울한 자신들의 사연과 죽음을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결국 이들은 대범한 사또를 만나 원한을 풀고 떠도는 귀신 신세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나게 된다. 특별한 사연을 지닌 귀신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다시 가야할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 구조는 우리 설화의 전형적인 한 형태이다. 어둠을 헤매는 존재라고 할지라도 원래 악한 이는 없고 그들을 감싸고 희망을 들어주면 다시 밝고 긍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유가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또 19세기 말엽 동학에 이어 새로 대두한 민중 종교였던 증산교에서는 혼란하고 비참했던 당시 민중들의 삶을 반영하듯 억울함을 품고 죽어 귀신이 된 자들이 온 세상에 꽉 차 있다고 보았다.그래서 증산교의 종교활동 가운데 하나는 살아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죽을 때 품은 한을 풀어주는 것이다. 증산교에서는 이것을 해원공사라고 불렀다. 이것이 잘 되어야만 어떤 재난도 없는 새 세상과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다른 사람의 억울함과 희망을 보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전통 사회 안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06. 증산교 천제의식은 죽은 사람의 한을 풀어주는 제사로, 타인의 희망을 보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전통 사회 안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7. 율곡 이이 동상. 율곡 이이는 자기 자신을 절 대 낮게 보지 말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도 말라고 주문한다. ⓒ두피디아

 

희망의 뿌리, 올바른 뜻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격몽요결』을 보자. 율곡 이이는 자기자신을 절대 낮게 보지 말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도 말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이 문구의 바로 앞 구절이자 이 책의 처음 대목은 “처음으로 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어떻게 공부를 할 것인지 뜻을 먼저 세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이는 공부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 책을 썼기 때문에 공부 이야기만 하고 있지만,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나 다 통한다. 나는 어떻게 살겠다는 뜻과 의지도 없이 그럭저럭 잘되기만을 바라는 수동적인 태도로는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일에 앞서 그 일을 행하는 사람이 뜻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은 유교뿐만 아니라 도교나 불교, 심지어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동일하다. 더 좋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바람만 갖는다고 되는것이 아니고 언제나 자기 의지로 노력해야 할 자기만의 몫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뜻이야 말로 희망과 긍정의 뿌리라는 것이다.

 

글. 김윤경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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