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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 속에 피어나는 희망
작성일
2015-12-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6170

꽃 속에 피어나는 희망“담 모퉁이 작은 매화 피고 지기 다 끝내자, 봄의 정신은 살구꽃 가지로 옮겨갔구나.” 허균의 스승인 손곡 이달의 시다. 봄꽃이 피어나는 순서를 말하는 것인데, 봄 산천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만물의 자연스런 이치를 알 수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을 알리는 전령의 꽃인 매화꽃이 지나간 자리에 산수유 꽃이 피고, 살구꽃이 피어난다. 곧이어 벚꽃과 목련이 만개할 때 진달래꽃이 피어난다. 그 뒤를 이어 조팝꽃과 찔레꽃이 피어나고 아카시아 향기가 온 천지를 뒤흔들고 지나간 자리에 밤꽃들이 어지러이 피어난다. “꽃은 바로 산중의 달력(花是山中曆), 바람은 고요 속의 손님이라네(風爲靜裏賓).”라는 시 구절과 같이 꽃들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피어난다. 사람 역시 그러하다. 올된 사람도 있지만, 늦된 사람도 있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았던 옛 사람들은 자연에 이치가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기다릴 줄 알았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면서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일찍 만개할 것만을 요구하고 있어서 여러 문제점들이 파생되고 있다.

01. 매화는 옛 사람들로부터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서 정원에 많이 심어졌던 꽃이다. ⓒ이미지투데이 02. 진달래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로, 그냥 따먹을 수도 있고 그 외에도 여러 형태로 이용돼 왔다. ⓒ문화재청

 

희망의 꽃, 매화

춥고 긴 겨울, 깊은 잠에서 벗어나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이 매화꽃이다. 이육사 시인은 조선 유학의 큰 산맥인 퇴계 이황의 14대 후손으로 독립운동가요, 시인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조국 광복의 꿈을 버리지 않고서 「광야」라는 시 속에서 매화꽃을 통해 자신의 염원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매화꽃이 피어나고 그 향기가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조국광복의 기틀을 마련하기를 꿈꾸었던 시인의 마음이 시로 표출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옛 선인들은 매화를 희망의 상징으로 보았다. 모든 만물이 추위에 떨고있는 봄의 초입에 청초한 꽃을 피워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며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매화꽃은 고목이 되어 죽은 듯 늘어진 가지 끝에서 꽃을 피워내기 때문에 회춘回春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거센 북풍이나 쏟아지는 눈보라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서 곱디고운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 매화는 또한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서 정원에 많이 심어졌으며,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우봉 조희룡(趙熙龍, 1789∼1866), 소치 허련(許鍊, 1809∼1892), 혜산유숙(劉淑, 1827∼1873)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화가들의 화폭에 담겼다. 시의 소재로도 널리 쓰였다. “담 모퉁이의 매화 몇 가지(牆角數枝梅) / 추위를 이기고 홀로 피었네(凌寒獨自開). / 멀리서도 눈이 아님을 알겠나니(遙知不是雪) / 은은한 향기가 풍겨오누나(爲有暗香來).”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의 「매화」라는 시 전문이다. 엄동설한 가운데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매화꽃을 예찬한 시로, 불의에 꺾일지언정 굴하지 않으며 희망을 품겠다는 선비의 절개를 노래하고 있다.

03. 유숙필 매화도(보물 제1199호). 희망을 상징하는 매화는 단원 김홍도, 소치 허련, 혜산 유숙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화가들의 화폭에 담겼다. ⓒ문화재청

 

지조의 꽃, 난초

봄의 꽃으로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꽃 중 하나가 난초꽃이다. 나지막한 야산 양지바른 곳에서 수줍은 처녀처럼 숨어서 피어나는 야생난초는 중국과 우리나라 남부지방, 그리고 대만, 일본 등지에 자생하는 춘란과 한란이 그 대표종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난은 서양란에 비해서 색채도 화려하지 않고 크기도 작다. 하지만 청순한 아름다움과 그윽한 향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매력이다. 신화 속에서 난초는 여름의 신 인 화성火星을 상징하며, 번창과 향락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난초를 기르면 집안에 상서롭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준다고 여겼고, 『본초경』에는 “잎을 달여 먹으면 해독이 되고, 오래도록 마시면 몸이 가뿐해지면서 노화현상이 없어진다.”고 실려 있다. 경기지방에서 전해오는 말로 “난초꽃이 번창하면 그 집에 식구가 늘어난다.”고 하였으며, 충북지방에는 “꿈에 난초꽃이 대 위에 나면 자손이 번창하고 난초꽃이 피면 미인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유교의 기본경전인 『역경易經』에도 “마음이 착하여 나와 잘 맞는 사람의 말은 그 냄새(말과 맛)가 난초와 같다.”고 하면서 난초꽃을 예찬하였다. 또한 옛사람들은 “지초芝草와 난초는 숲 속에서 자라나,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고, 군자君子는 덕을 닦고 도를 세우는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없다.”면서 지초와 난초를 지조 높은 군자와 대비시키고 있다.

 

정겨운 꽃, 진달래

봄이 오면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김동환의 시에 김동진이 곡을 붙인 <봄이 오면>이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가난했던 어린 시절, 마을 뒷산 어디고 만개한 이 꽃의 가지를 한 아름 꺾어다가 한참을 따먹다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했던 꽃이 진달래꽃이다. 한자어로는 두견화杜鵑花라고 불렀던 이 꽃은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진달래가 우리나라 전 지역에 자생하는 것은 토질이 진달래가 살기에 좋은 환경인 까닭이다. 진달래는 꽃이 아름다워서 관상가치가 있으며 참꽃으로서 그냥 따먹을 수도 있고 그 외에도 여러 형태로 이용돼 왔다. 삼월삼짇날에는 진달래꽃으로 만든 화전花煎을 만들어 먹으며 봄맞이를 하였고, 진달래꽃으로 빚은 진달래술은 두견주라는 이름으로 사랑받았다.

04. 제주의 한란(천연기념물 제191호).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난초를 기르면 집안에 상서롭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준다고 여겼다. ⓒ연합콘텐츠

 

나라꽃, 무궁화

봄이 지나고 여름이 성큼 온 뒤 이 마을 저 마을 나라 곳곳에 피어나는 꽃이 무궁화이다. 우리나라의 국화인 이 꽃이 중국의 가장 오래 된 지리서인『산해경山海經』에 실려 있다.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君子之國),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有薰花草朝生暮死).” 훈화초는 무궁화의 옛 이름이고 군자의 나라는 우리나라인 조선을 일컫는다. 또한 『구당서舊唐書』「신라전新羅傳」199권 737년(성덕왕36) 기사에 “신라가 보낸 국서에 그 나라를 일컬어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하였다.”고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서 신라시대에 우리나라를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로 불렀다는 사실을 알 수있다. 무궁화는 한여름인 7월에서 10월 사이, 약 100일 동안 화려한 꽃을 피우는데, 홑꽃은 반드시 이른 새벽에 피고 저녁에는 시들어서 날마다 신선한 새 꽃을 보여준다. “나는 매일 죽노라”라고 사람들의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을 표현했던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매일 피어나고 시드는 무궁화는 역경을 딛고 살아낸 우리민족의 강인한 정신을 나타낸다. 한민족을 상징하는 나라꽃인 무궁화에는 우리의 민족정신이 깃들어 있고 우리 민족의 얼이 스며있기 때문에 한말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언론인이었던 남궁억(南宮憶,1863~1939) 선생은 그의 고향 홍천에서 무궁화 묘목을 길러 전국에 보급하여 심게 했다. 남궁억 선생은 민족의 얼인 무궁화를 심어 사라져 가는 애국심이 되살아나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것이다.

05. 우리 조상은 삼월삼짇날이면 진달래꽃으로 만든 화전花煎을 만들어 먹으며 봄맞이를 했다. ⓒ아이클릭아트 06. 강릉 방동리 무궁화(천연기념물 제520호). 매일 피어나고 시드는 무궁화는 역경을 딛고 살아낸 우리민족의 강인한 정신을 나타낸다. ⓒ문화재청

 

꽃 피는 봄을 기다리며

온 나라 산천에 봄꽃들이 피어나는 그 시절을 가장 의미심장하게 표현한 사람이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崔濟愚, 1824~1864)선생이었다. “이제 절기가 다다르니 기다리지 않아도 스스로 오는구나. 간밤에 봄바람이 불어 온갖 나무가 일시에 깨쳐 하루에 한 송이가 피고 이틀에 두 송이가 피어 삼백 예순 날에 삼백 예순송이가 피니 온몸이 온통 꽃이요. 온 집안이 온통 봄이다.” 최제우가 살았던 그 시대는 암흑의 시대였고, 그가 펴고자 했던 사상은 국가적으로 보면 이단이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한울님이 있다’고 설파하며 희망을 노래한 그의 사상은 그 당시 불온한 것이었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사회가치와 맞닿아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이름 지은 이 나라 산천에 희망을 안고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면 옛 사람들은 그리운 사람들을 초대하여 꽃 잔치를 열었다. “그대 집에 술 있거든 부디 나를 부르소서. 내 집에 꽃피면 나 또한 청하오리. 그래서 우리의 백년 세월 술과 꽃 사이에서.” 고려시대의 천재 시인 정지상(鄭知常, ?~1135)의 시 한편이다. 아름다운 이 나라 산천을 마음 내려놓고 천천히 거닐면서 ‘하 참, 햇살이 좋다. 하 참 바람이 좋다.’라고 찬탄하며 걸어갈, 봄이 오는 소리 들린다.

 

글. 신정일 (문화사학자,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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