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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놀이, 어른과 아이를 하나로 묶는 특별한 공감. 놀이연구가 이상호
작성일
2015-11-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5950

민속놀이를 가르치는 선생님. 그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선생이 놀이를?’이라는 의아함이었다. 어린시절 동네 아이들과 놀이를 통해 그가 깨달은 삶의 지혜를 알고 있었기에 이상호 씨는 사람들의 편견을 개의치 않았다. 그를 긍정적으로 자라게 했던 마음가짐처럼 우리 아이들이 배우길 바라서였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노력한 30여 년의 시간은 아이들의 표정을 밝게 바꿔 놓았고 지금은 여러사람이 참여하는 문화활동으로 주변을 변화시켰다.

 

문헌에서 놀이를 찾다

“가위! 바위! 보!” 놀이가 시작되었다. 씩씩한 함성이 학교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득 채운다. 우렁찬 기운에 학교 하늘을 날아가던 비행기소리는 벌써 묻혀버렸다. 큰 나무 그늘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말타기와 똥싸개 놀이, ㄹ자 놀이(리을자 놀이)를 구경하고 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마음에 드는 놀이를 한다.

“얘들아! 안경놀이 할래?” 놀이하는 내내 아이들과 호응하던 선생님이 막대기로 땅바닥에 안경을 그린다. 커다란 동그라미 두개를 양쪽에 그리고 나니 아이들이 원안으로 들어간다. 동그라미를 연결하는 기다란 네모다리가 완성되자 아이들이 날렵하게 움직인다. 네모다리 한가운데 서 있는 술래를 피해 깽깽이걸음으로 이쪽 원에서 저쪽 원으로 뛰어다닌다. 빠르게 폴짝 뛰는 모습이 마치 작은 새와 닮았다. “안경!” 누군가 외치자, 술래한테 잡혔던 아이들이 모두 풀려나 일제히 한쪽 원으로 몰려든다.

활기차게 노는 아이들 곁에는 항상 이상호 씨가 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하루에 30분씩 의무적으로 놀아야 해요. 중간놀이라고 하는데 이 시간에는 전교생이 모두 운동장에 나옵니다. 1주일에 3시간씩 있는 체육시간에도 놀이를 주로 합니다. 오징어, ㄹ자 놀이, 비석치기, 진놀이 같은 전래놀이를 하죠.”

그가 대미초등학교에서 온지 올해로 3년. 1학년부터 전래놀이를 배운 아이들은 제법 다양한 놀이를 알고 있다. “주목할 일은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한다는 겁니다. 점심시간에도 수업이 끝나도 말이죠. 더욱이 또래 학년끼리만 놀지 않고 형과 동생이 어울려 노는 것을 종종 봅니다.”

전래놀이에 대한 정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찾아냈다. “안경놀이는 한국민속놀이사전에서 알게 됐죠. 고려대학교에서 쓴 책이었는데 ‘안경놀이 하는 아이들’이라고 적힌 사진만 나와 있었습니다. 놀이방법이 매우 궁금해서 탐구에 나섰죠. 그러다 제주도에서 안경놀이를 발견했어요. 어떤 할머니가 사진 속 안경놀이를 알아보시고 방법을 알려주셨죠.” 할머니의 어린시절 추억은 안경놀이를 한눈에 알아봤다.

 

놀이수업이 가져온 효과

놀이수업은 아이들 눈빛을 다르게 만든다. “단순히 놀이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감정을 조절하고 주변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소통능력이 발달하는 거죠. 입을 꼭 다물고 노는 아이들은 없거든요. 상대편을 이기려고 서로 작전을 짜면서 쉴 새 없이 생각을 표현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온전히 알아듣는 능력이 길러져요.” 간혹놀이에 몰입한 아이들이 상대편을 놀리거나 비난하는 일이 있다. 하지만 놀이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관계 맺기를 가르쳐준다. 또래끼리 이야기가 통하니 부드러운 학급분위기는 덤이다. 교실에서는 한 마디도 않던 아이가 놀이에서는 수다쟁이가 된다. 놀다가 몸싸움에 넘어져도 금방 툴툴 털고 일어난다.

02. 놀이를 배우는 아이들의 표정은 더없이 해맑고 활기차다. 03. 아이들에게 놀이 규칙을 설명해주는 이상호씨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놀이를 가르치는 과정에도 ‘관계 맺기’가 스며있다. “놀이에는 지능이 있어요. 한 가지 놀이를 익힌 아이는 다른 놀이를 대충 설명해도 빨리 알아들어요. 유사한 놀이가 이미 몸에 익어서 아이가 자기방식대로 빨리 이해하는 거죠” 핸드폰과 컴퓨터게임의 놀이방법과는 확실히 다르다. 살갑게 눈높이를 맞춘 놀이지능.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금방 알아듣는다. 글자로 이해하는 놀이방법은 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바른놀이의 대중화를 위해

28년 간 놀이교육을 해왔지만 이런 깨달음은 한 번에 보이지 않았다. “인류는 몸과 마음, 머리가 조화를 이뤄야 생존해 나갑니다. 그런데 지금 사회구조는 머리를 너무 강요해서 마음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요. 놀이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신체, 정서, 사회, 언어. 지적 능력이 모인 문화예요.” 그는 아이들이 놀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1987년 교사를 중심으로 놀이연구회를 만들었다. 이름처럼 놀이를 연구하고 널리 퍼뜨리는 모임이었다. 머릿속은 ‘놀이교육으로 10년을 아이들과 만난다면 전달효과는 클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풀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교사들은 학교수업과 업무에 먼저 집중해야했다. 자연스레 놀이교육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어떤 교사는 마치 책 한권을 익히듯 놀이교육을 배웠다. 그런 교사일수록 모임에서 점점 멀어졌다. 딱 10년 후, 모임은 교사 중심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는 뜻을 같이 한 10여 명과 놀이교육범위를 넓혔다. 문을 활짝 여니 교사를 비롯해 숲 해설가, 동화 읽는 어른모임, 다양한 문화활동가들이 여기저기서 찾아왔다. 제주도에서도 달려왔다. 방학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4. 아이들 속에 섞여 함께 뛰어노는 이상호씨.

모임 이름은 ‘한국전래놀이협회’가 되었고 그는 사회공헌 가치를 나누며 계속 놀이교육을 공유했다. 5년 정도 지났을까, 몇몇 사람들이 교육자격증 과정을 더욱 확산시키고 싶어 했다. 방향은 전래놀이 대중화로 같았지만 가고 싶은 길이 달랐다. 그는 의견이 같은 사람들과 ‘(사)놀이하는 사람들’을 꾸렸다. 그동안 공부했던 사람들은각 지역에서 지부를 만들었고 서울, 제주, 충북, 대전 지역 등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소문은 많은 참여로 이어졌고, 무엇보다 학부모들이 관심을 가졌다. 커진 관심은 놀이전문가를 필요로 했다. 단, (사)놀이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전래놀이지도사과정은 까다로웠다. 48시간 수업과 12시간 현장실습일지를 꼼꼼하게 써야했다. 제출한 실습일지는 이상호 씨가 일일이 답글을 적었다.

“이 사람들이 기둥이라는 마음으로 봤습니다. 실습일지를 읽으면서 임원들은 공부가 됐어요. 생생한 교육현장이 담겨있었죠.” 그런 노력에도 자격증 취득이 목적인 사람이 늘어났다. 그는 처음 목적이 훼손될까 염려됐다. 결단을 내려야했다. 반발도 있었지만 자격증 과정을 닫았다.

“놀이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한테 놀이 혜택을 줘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여건이 안돼요” 머리를 맞대고 많은 사람들이 전래놀이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소풍전날 설레는 마음을 떠올렸다. 손꼽아 기다리도록 ‘전래놀이날’을 따로 만들었다. 이날은 각 지부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다 같이 전래놀이를 즐기는 날이 되었다. 올해로 2회를 맞는 전래놀이축제도 여기서 출발했다.

요즘 그는 대중강좌와 놀잇감 제작으로 놀이전문가를 키운다. “놀다에서 '놀'은 노릇의 어간과 의미가 같습니다. 잘 놀면 사람 노릇을 한다는 의미예요. 전래놀이 가치도 다르지 않아요. 목수가 문을 만들 때 대패, 톱, 망치가 필요하듯 옛 놀이에는 사람 노릇을 가르치는 기초가 모여 있어요.” 그는 이벤트로 접근하는 놀이는 사양한다. (사)놀이하는 사람들이 걸어온 흔적처럼 생활에서 되살아나는 우리놀이로 차별 없이 행복하게 놀 권리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싶다.

나무가지

05. 안경놀이가 시작되자, 바닥에 커다란 동그라미 두개를 그리고 그 안에 아이들이 들어갔다.

 

글.김태숙 사진.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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