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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화로 삼년상 치른 순종의 효심
작성일
2015-10-0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013

전화로 삼년상 치른 순종의 효심. 1919년 1월 21일 새 벽, 창덕궁에 있는 순종에게 급한 전갈이 왔다. 고종황제가 뇌일혈을 일으켜 매우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전하~ 아니, 아바마마께서? ? ?순종은 서둘러 덕수궁을 찾아 함녕전에 들었고, 잠시 후 함녕전에서는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아바마마! 폐하!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순종은 삼년상을 치르고자했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할 수가 없었다. 천벌을 받을 놈들. 일본식으로 제사를 치르라니. 일본은 순종의 삼년상을 막을 뿐만 아니라 홍릉에 자유롭게 오가지도 못하게 했다. 이 에 순종은 삼년상을 치르기 위한 방책을 강구한다. 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은밀히 진행해야 하느니라. 예, 전하. 그것은 일본의 눈을 피해 삼년상을 치를 비밀의 방을 만드는 것이었다. 오직 순종만이 출입하던 방 안에 있 던 것은 바로 전화기. ! 그리고 고종황제의 신위(神位)를 모신 홍릉 산릉과 혼전(魂殿)에도 전화기를 설치했다. 준비가 되었으니 전화를 걸도록 하여라. 매 일 두 번씩 거르지 않았던 전화문상의 절차는 이러했다. 내시가 산릉을 지키는 참봉에게 전화를 걸어 수화기를 혼백이 깃든 신주(神主)에 대도록 하명하고, 송화기를 순종의 입 가까이에 갖다 대면, 순종은 엎드려 절을 하면서 통곡을 했다. 한편, 이 문상전화의 송, 수화기는 삼베로 싸여 있었다. 순종은 3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문상을 했으며, 병환이 위중할 때도 이를 쉬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 쉬시지요. 아니오. 내 몸 편하자고 어찌 자식 된 도리를 소홀히 할 수 있겠소. 능에 직 접 행차하여 배례할 때는 고종이 즐겨 먹던 밤, 사과, 증편 등이 잘 차려져 있는지 일일이 살폈다. 아니, 밤이 보이질 않는데 어찌된 것이냐! 그것이… 어느 벼락이 몹시 치던 날, 시종이 향을 피우려 순종의 침소에 들었다. 궁중에서는 벼락이 치면 악귀를 쫓는다는 뜻에서 축사향의식이있었다. 부왕의 혼전에 먼저 향을 피우도록 하여라. 황공하오나, 예전에는 혼전에 축사향을 피우란 대목이 없사옵나이다. 그럼, 내 방에도 축사향을 피우지 말라! 이처럼 부왕에게 극진히 효를 다했던 순종 또한, 1926년 망국의 한을 품은 채 승하하고 만다. 순종의 승하가 공식 발표되자, 고종황제 때와 마찬가지로 수 많은 백성들이 창덕궁 돈화문 앞에 몰려들어 망곡을 했다. 불운한 역사 속에서 전화 삼년상은 나라잃은 슬픔 속에서도 아버지의 삼년상만은 지키고 싶었던 순종의 애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글·그림. 유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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