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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푸르다 못해 검도록 짙은 섬 위의 녹음, 강진 까막섬상록수림
작성일
2015-08-04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640

푸르다 못해 검도록 짙은 섬 위의 녹음, 강진 까막섬상록수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저자 유흥준) 제 1장을 장식한 남도 답사의 1번지는 강진. 강진은 다채로운 문화의 보고이며 다양한 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폴리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미항, 마량항이 있고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시인, 김영랑(金永, 1903∼1950) 생가도 있고,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유배지가 있고 조개가 지천으로 널 린 갯벌과 또 하나, 120여 종이 넘는 상록수림과 물고기가 서식하는 생태학의 보고, 까막섬 상록수림도 있으니 말이다. ‘모란이 피기까지’ 김영랑의 시비가 서 있는 강진 마량항에서 바다와 어우러진 까막섬 상록수림을 보러 남으로 남으로 차를 몰았다.

 

남도의 미항, 마량항

한참을 달려와 만난 마량항은 어촌 특유의 북적북적 생기가 가득하다. 조선 태종 때 마두진이 이곳에 설치되어 만호절제도위가 관장하였고, 다산의 유배지였고 거북선이 정박해 있 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김영랑 시인과 이청준 소설가(서편제, 이어도 등을 발표) 등 걸출한 문화 인사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그 옛날부터 어민들이 바다를 품고 살며 생계를 이어온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정박해 있는 갖가지 배와 오밀조밀 붙어 있는 횟집들, 수산시장은 삶의 치열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비릿한 바다 내음과 함께 만난 마량항은 그래서 더 정겹고 활기 있는 느낌이었다.

 

생태의 보고, 까막섬

비릿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바라보자니 신기한 모습으로 떠있는 두 개의 섬이 보인다. 저 멀리 뒤에 연육교로 이어진 고금도古今島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앞에 사이좋게 서있는 큰 까막섬, 작은 까막섬. 이곳은 상록수림이 빼곡한 생태의 보고로 1966년 천연기념물 제 172호로 지정되었다. 이 섬은 고맙게도 물고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주어 물고기를 해안으로 유인하는 역할도 한단다. 마량항이 더 풍요롭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주로 후박나무와 돈나무 등 120여 종의 난대림이 분포되어 있다는 까막섬은 생태계의 보호를 위해 신고를 해야 들어갈수 있게 되어 있단다. 아쉽지만 무인도에 대한 호기심, 푸르다 못해 까맣게 보이는 숲에 대한 환상 등을 접고 다시 발길을 돌린다.

갑자기 작은 안내문이 눈길을 끈다. 움직이는 섬, 까막섬에 얽힌 옛 이야기다. 원래 남태평양에 떠 있던 까막섬은 육지가 되고 싶어 강진 앞바다까지 찾아 왔다. 그런데 바닷가에서 어떤 여인이 “발 없는 섬도 걸어 다니는데 내 아들은 두 발이 있어도 걷지를 못하는구나!” 탄식하였다. 그 여인에게는 걷지 못하는 아들이 있었던 것. 이 말을 듣고 섬은 그 자리에서 멈췄고 신기하게도 여인의 아들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육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던 섬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사람의 꿈을 대신 이루게 해주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작은 일화인데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01. 강진 마량항의 일몰. 02. 함께海길로 명명된 가우도 바닷길을 걸으면 바 다 파도소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따라온다.

 

길은 바다로, 또다시 육지로 이어지고

훅, 하고 바닷바람이 불어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서로 경주하듯 바다를 향해 선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는 이곳이 바다와 육지의 길을 연결해주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곳 마량항은 신라시대 때부터 포구의 역할을 다해왔다. 마량馬良이라 함은 ‘말을 건네주는 다리’라는 뜻. 역사를 따라 올라가자면 옛 탐라국이 신라에 조공을 목적으로 실어온 말들을 관리하던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마량항에서는 돌하르방들이 곳곳에 서있다. 그뿐아니다. 고려시대 때는 강진만에서 만들어진 고려청자를 이곳에서 개성까지 실어 날랐고 조선시대 때도 탐라에서 온 말들이 처음 육지에서 먹이를 먹는 곳이기도 했다.

김영랑 시인 벤츠

바다와 육지를 이어 길을 내던 곳. 그 길을 따라 이번에는 가우도駕牛島출렁다리(1154m)를 건너기로 한다. 향기 나는 섬 가우도, ‘함께海길’로 명명된 둘레길을 걸으면 바다 파도소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따라올 터이다. 바다를 끼고 걸으니 이보다 운치 있는 길은 없을 것 같다. 가다보니 영랑 시인의 벤치가 있다. 시를 읽으며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모란이 피기 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니고 잇슬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교과서에 있던 그 시인데도 바다를 마주하며 다시 읽어보니 느낌이 새롭다. 데크와 흙길, 숲길을 두루 걸으면 좋겠지만 한나절은 족히 걸릴 것 같아 다시 출렁다리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 좀 있으면 그토록 아름답다는 마량항의 일몰과 마주할 것. 그 전에 횟집에 들러 허기를 채울 욕심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03. 섬을 가운데 두고 대구면 청자촌과 도암면 다산초당, 백련사 등의 명소를 잇는 가우도 출렁다리.

 

넉넉한 바다의 맛, 그리고 멋

횟집에 들어서니 시장기가 더한다. 동시에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돔, 농어, 광어에 우럭, 장어, 산낙지에 간재미, 이보다 풍요로울 수 없는 수산물들이 상에 오른다. 예로부터 바다에 사는 사람들은 부지런했다고 한다. 부지런만 떨면 바다는 그 품을 내주어 사람 배 하나 채우는게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몰에 붉게 흔들리는 칠면초, 푸르다 못해 까맣게 흔들리는 상록수림 섬, 철새, 갈대, 조개가 지천인 갯벌, 거친 바다 속에서 싱싱하게 들어 올린 수산물, 그리고 거기 엎드려 거칠지만 따듯한 삶을 나누는 경건한 사람들. 강진의 마량항은 모든 것이 그야말로 풍요롭다.

맛있게 비벼진 간재미 회무침을 입 안 가득 느끼며 가까운 토요일 다시 마량항을 찾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때는 가우도 둘레길을 끝까지 걸어봐야지, 토요일만 열린다는 수산시장에도 가야지, 토요 음악회도 구경해야지, 다산 초당에도 가고 영랑 생가도 방문해 봐야지, 까막섬도 가볼 수 있으면 좋겠지? 생각은 길을 따라 똬리를 틀며 커져간다.

갈매기

 

글. 신지선 사진. 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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