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방관자들 속 영웅을 찾는 시대
작성일
2015-06-0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940

방관자들 속 영웅을 찾는 시대. 지난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경. 일본 동경의 국철(JR) 지하철 야마노테(山手)선 신오오쿠보(新大久保)역. 유명한 신주쿠(信宿)역 가까운 이곳에서 술에 취해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자신은 희생한 26세의 한국 청년이 있었다. 이수현. 고려대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해 이날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지하철로 귀가 중이던 그는 지하철 선로에 막 떨어지는 취객을 본 순간 선로로 뛰어들었지만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일본인을 울린 의인義人 이수현

신오오쿠보역의 사고현장에는 한일 2개 국어로 쓰인 추모비가 설치되어 있다. 그는 일본에서 국경을 넘은 의인義人, 의사義士로 기려지고있다. 14년 전의 일인데도 신오오쿠보역의 이씨 추모비를 찾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바꾼 일본인들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도 있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당시 이씨의 행동을 ‘우리 시대의 키티 제노비스’라고 기사화했다. 키티 제노비스는 1964년 뉴욕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살해되었는데, 당시 현장을 본 사람이 38명이나 되었지만 아무도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아 미국사회에 충격과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은 2012년 연말에도 벌어졌다. 미국 뉴욕의 한 지하철에서 한 한국인 교포가 누군가에 의해 떠밀려 선로에 떨어졌다. 열차가 들어와 이 사람을 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22초라는 비교적 긴 시간이 있었다. 문제는 선로에 떨어진 사람의 가까이에 수십 명이 있었으나 아무도 도와주려 나서지 않았으며, 심지어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 역시 미국사회에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미국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비겁해졌는가? 일 찍이 리프만이 말한 대로 모든 현대인은‘군중 속의 고독’인가?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외면하고 돌아서버리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정글이 되어버린 것인가? 사진기자는 과연 그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직업적 사명감에 맞는 행동인가, 아니면 선로에 뛰어내려 구조노력을 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인가? 미국사회는 소방관을 필두로 항공기 조종사와 경찰관등 유난히 영웅들이 많고 그들이 존경받으며 청소년들의 롤 모델이 되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인지 이 사건 당시 많은 미국 언론들이 “왜 그 자리엔 영웅이 없었을까?”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01. 2001년 1월 26일 일본 전철역 선로에서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다 숨진 故이수현 의인 의 13주기 추모식. ⓒ연합콘텐츠 02. 올해 1월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건 당시 간판 시공업자 이승선 씨가 대피하지 못하고 있 던 주민을 밧줄로 묶어 내 려 보내고 있다. ⓒ의정부소방서03. 전북학생해양수련원에 세워져 있는 전주고교 학생 세 명의 추모비. 1997년 당시 전주고교 1학년이던 세 명의 학생들은 급물살에 떠밀려가던 어린이들을 구해낸 뒤 익사해 숨지고 말았다. ⓒ김기만

 

변산해수욕장의 15세 영웅英雄들

필자에게도 매우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 있다. 18년전 인 1997년 7월 21일, 전북 부안의 변산해수욕장에서 전주고교 1학년 학생 세 명이 의인義人이 되어 숨진 사건이다. 필자가 다닌 전주고교에는 여러 개의 서클(동아리)이 있었고 필자도 그 가운데‘라매불裸魅佛’이라는 좀 독특한 이름의 동아리에 속해 있었다. 이 동아리는 신입생 중 매년 10명 안팎의 회원을 뽑아 사회에 관한 공부(일종의 의식화 교육)와 봉사활동등을 하고 선후배간의 유대를 꾀하는데, 1958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동아리다. 해마다 여름에 2박3일 정도의 수련대회를 가졌는데 1997년 그 해 수련대회 장소가 바로 변산해수욕장. 모임을 거의 끝내고 귀가준비를 하던 오후 늦은 시간, 바닷가에서 종알거리며 놀던 유치원생 수십 명이 갑자기 급류에 휩쓸리며 바다로 떠내려갔다.

때마침 가까이에 있던 이 동아리 1학년생 세 명이 바다에 뛰어들어 급물살에 떠밀려가던 어린이들을 구해냈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너무 지쳐버려 급류를 이겨내지 못하고 모두 익사해 숨지고 말았다. 세 명 모두 전주고교에서도 1,2등을 다투는 수재들이었다. 부안의 전북학생해양수련원에는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고, ‘푸른 넋 영원히. 신준섭, 장만기, 정인선. 여기 자신들의 올곧은 삶을 드넓은 황해에 깊이 묻고 홀연히 의로운 새가 되어 영원을 나는 푸른 넋을 기리기 위해 돌을 세우다’라는 추모사가 새겨져 있다. 사건 당시 만 15세의 고교 1년생들, 그대로 성장했다면 지금 만34세의 우수한 인재들이었을 그들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수련대회 기간 동안 선배들로부터 ‘의롭게 살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공부하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렀던 이들은 급류에 휩쓸린 병아리 같은 어린이들을 보자마자 자동반응처럼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이 동아리는 해마다 7월이면 부안에 있는 학생해양수련원이나 모교에 따로 세워진 추모비를 찾아 이들을 기린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필자는 칠흑 같은 어둠, 희박한공기, 밀려오는 공포 속에서 숨져갔을 이들 후배들의 모습이 떠올라 한동안 거의 ‘멘붕’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04. 고려대 강수돌 교수가 경쟁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를 조명한 책 『팔꿈치 사회』. 강 교수는 틈만 나 면 옆 친구를 팔꿈치로 보이지 않게 가격해 탈락시켜 버리는 현 시대를‘팔꿈치 사회’ 라고 표현했다. ⓒ갈라파고스 05. 남해해양경찰청 신승용, 이순형 경사가 부산 남외항에서 충돌사고로 기름이 유출된 화물선 캡 틴 방글리스호에 투입돼 기름유출 부위를 틀어막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콘텐츠

 

파편화된 ‘팔꿈치사회’의 극단이기주의

아침에 집을 나설때 마다 아내는 한마디 한다. “여보, 지하철에서는 절대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하지 말고요, 운전할 때 불량한 사람 만나도 시비하지 말고요… 아시죠?” 남의 일에 끼어들어 곤욕을 치르거나 피해를 본 경험이 여러 차례 있는 걸 잘 아는 아내로서는 당연한 말이다. “그래, 참을 수 없는 부당, 불의, 불량한 ‘공공의적’같은 꼴을 봐도 그냥 못본척 하고 지나가란 말이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가정평화를 위해 이 말은 삼키고 “그럼, 그럼, 잘 알아요.”라고 답하고 나선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극단적 이기주의의 메마른 사막으로,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하기 시작했을까? 개인, 가족을 우선시 하고 용기와 소신의 행동이 필요한 일에는 나서지 않으려는 극도로 파편화된 사회의 원인은 무엇일까? 경쟁만을 강조하는 교육과 사회환경, 핵가족으로의 가정구조 변화, 정치와 철학의 빈곤, 가정교육의 붕괴, 범죄가 증가하는‘위험사회’의 영향 등 여러 원인을 생각해볼 수 있다. 고려대 강수돌 교수는 이러한 우리 사회를 ‘팔꿈치 사회’라고 정의했다. 동료인 것처럼 비슷하게 서서 달리지만 틈만 나면 슬쩍 옆 친구를 팔꿈치로 보이지 않게 가격해 탈락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대학에서도 놀랄 때가 많다. 학점관리, 스펙 쌓기, 취직준비에 정신이팔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지나치다 할 만큼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활개친다.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공개하면 항의와 정정 요청이 빗발친다. 평소 강의실에서 자유, 정의, 평화, 형평, 균형, 언론, 정치개혁, 교육개선, 남북문제, 국제관계 등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토론에서는 침묵을 지키는 학생들일수록 성적에는 더 민감하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 승리, 1등만을 강조해 가르쳐 온 잘못된 교육의 필연적 결과이다.요즘은 기업에서도 열 심熱心, 성심誠心과 함께 협심協心의‘3심’을 강조한다. 남을 배려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협력정신과‘적과의 동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영학에서는‘협력하며 경쟁한다’는 뜻의‘쿠오페티션coopetition’이라는 단어가 이미 자리를 잡았지만 정작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그러니 일반사회에서야 어떠하랴. 희생, 봉사, 이타利他의 용기 있고 정의로운 영웅이 탄생하기엔 너무 먼 환경이다.

06. 영화 <38인의 목격자> 포스터. 이 영화는 사건의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 되는 현상인 ‘제노비스 신드롬’의 모태가 된 1964년 의 실제 사건을 그렸다. ⓒ전주국제영화제 07.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여름방학 학습법과 수시 합격전략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안내책자를 보고 있다. 경쟁만을 강조하는 교육과 사회 환경은 용기가 필요한 일에는 나서지 않으려는 파편화된 사회의 원인이다. ⓒ연합콘텐츠

 

물론 그런 가운데에서도 의인, 영웅은 나타난다. 지난 2010년 4m 높이의 창에 매달려 떨어지기 직전인 아이를 발견한 한 여고생은 담벼락을 타고 집으로 넘어 들어가 막 창문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살려냈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세월호 참사 때 20여 명을 구조한 제주의화물차 기사, 깨진 얼음물 속에서 허우적대던 아이를 구한 임산부,부산 유조선 기름유출사고 현장에서 파공破空부위를 온몸으로 틀어막아 유출피해를 최소화한 해경,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여러 명을 구조하고 화재를 진압한 세 고교생 등이 떠오른다. 올해의 경우 1월 초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건 때 30m 동아줄을 가지고 올라가 주민 10여명을 구해내고도 이에 감동한 복지가가 전한 3천만 원을 끝내 사양하고 더 어려운 분들에게 써달라고 해 잔잔한 감동을 준 ‘의정부 의인’이 먼저 생각난다. 릴케의 시 중에 ‘지금 세계의 어느 곳에서는 누군가가 울고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철학자 러셀은‘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내 삶을 뜨겁게 만들었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다. 울고 있는 자, 약하고 위험한 처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세대. 이웃과 인류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해 행동하지 않는 세대라고 걱정한다면 그 책임은 바로 어른들, 기성세대이다. 이제부터라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성격순’이라고 가르치자. ‘세상은 함께사는 공동체’임을 더 가르치자. 진정한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마침내는 손과 발로 가는 긴 여행’임을 더더욱 강조해 가르치자. 아무리 ‘3포’를 넘어 ‘7포(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세대’라고 하지만 우리 어른들이 하기에 따라서는 좀 달라지지 않겠는가?

 

글. 김기만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