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너와 나, 차 한 잔에 우리가 되는 곳
- 작성일
- 2015-05-07
- 작성자
- 문화재청
- 조회수
- 3435
두물머리를 품고 비탈에 선 절경
‘양수리 수종사 / 가을이 오매 경치가 구슬퍼지기 쉬운데 /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하니 물이 언덕을 치네 / 하계에서는 연기와 티끌을 피할 곳이 없건만 / 상방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네 / 흰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이거나 / 누런 잎이 휘날리니 길이 아득하네 / 내 동원에 가서 참선이야기 하려 하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채 울게 하지 말아라’ 조선시대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동방의 절 중 제일가는 전망이라 일컬으며 쓴 시이다.
이외에도 수종사의 절경에 마음을 빼앗긴 인물들은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 등 수없이 많다.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이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중 독백탄獨栢灘에 운길산과 수종사의 경관을 그렸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빼어난 경치를 품은 사찰이지만 오르는 길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가파른 산길을 약 1.8km 정도 올라야 했던 것. 생각지 않고 찾아간 사람에게는 수고스러운 산행이었지만 비탈에 선 나무들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두물머리와 고요한 산사의 모습은 그만한 수고쯤 감수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현판이 보이고 200m쯤 더 가자 수종사 석불상이 보인다.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한층 가팔라진 돌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아름다운 사찰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대 이상의 너른 평지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아름다운 산사, 과연 장관이다.
세조의 설화가 함께하는 문화재
수종사의 이야기는 1458년 세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병치료차 금강산을 유람했던 세조는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때 운길산 어디에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와 숲속을 둘러보니 천년고찰 폐허 바위굴에 18나한羅漢상이 줄지어 앉았는데 그 굴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마치 종소리 같았다. 이것을 기이하게 여긴 세조는 이곳에 축대를 쌓고 절을 중건했다 한다. 그러나 현재의 사찰은 500여 년을 이어온 건물은 아니다. 한국전에서 모두 소실되었던 탓. 이를 안타깝게 여겨 1975년에는 혜광스님이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복원하였고 1999년 주지 동산이 선불장과 삼정헌을 중창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절벽에 기대선 사찰을 둘러보기 전 두물머리를 내려다보기로 한다. 담벼락에 기대서니 두물머리가 한 눈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경치가 좋아 출사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찾는다더니 과연! 굽이치는 북한강류와 남한강류가 정답게 조우하고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솟아올라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구름이 낮게 드리운 날엔 운해 위에 암자, 산봉우리들이 드러나 신이 연출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한다.
곳곳에 깃든 역사의 흔적
잠시 사찰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토록 가파른 산길에 어떻게 사찰을 지었을까? 의아해 했는데 막상 돌아보니 그리 작지 않다. 대웅전에서 응진전, 선불장, 삼정헌, 석탑에 종각, 산신각까지 쓰임에 딱 맞게 설계되어 있다. 대웅전으로 가기 전에 수종사 다보탑으로 불리는 오층석탑, 삼층석탑, 석조부도를 만난다. 그중 오층석탑(보물 제1808호)은 고려시대 팔각다층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조선 전기의 석탑이다. 이 탑 안에서는 1628년 조성기가 새겨진 금동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등 금동불상들이 많이 나왔다. 당시 왕실과 관계가 깊었던 수종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역사의 흔적들이다. 호젓한 사찰 내부를 둘러보다 사찰 뒤에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는 한 그루 은행나무에 눈길이 머문다. 수령 500년, 세조가 직접 심어 더욱 유명하다는 은행나무는 높이 35m, 직경이 2m에 이르는 거목이다. 비탈에 선 채로 500년 세월을 견뎌내다니 저절로 외경심이 든다.
너와 내가 만나 차 한 잔을 마시는…
수종사의 또 하나 명물은 삼정헌이다. 근방에 생가가 있다는 다산 정약용 선생은 생전에 수종사에 들러 차 마시는 것을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이라며 그렇게 즐겼다고 한다. 그는 벼슬을 내려놓은 후로도 수종사에 올라 출신성분과 상관없이 개혁과 변혁사상을 가진 인재들을 만나 담소를 나눴다고 전해지는데 그중 또 하나 큰 족적을 남긴 분은 초의선사이다. 다선茶仙으로 불리는 초의선사는 정약용을 찾아와 수종사에서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차를 마시곤 했다고 한다. 불교 승려로 차를 문화로 승화시켰던 초의선사와 유교, 천주교에 조예가 깊었던 정약용이 20여 년의 나이 차와 사상의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을 나눴던 곳. 지금은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이 있어 그 정신을 계승해가고 있다. 문득 다산과 초의선사의 마음으로 차를 한 잔 마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실에 들자 먼지 한 점 없는 정갈한 다기들이 나를 맞는다. 멀리 두물머리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앉아 직접 녹차를 우려내니 따스한 다기가 지친 마음을 스르르 풀어놓게 한다. 수많은 시인 묵객과 함께 마음을 맑게 하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았다는 수종사, 그 이유를 듣지 않아도 알겠다. 예로부터 유명한 약수와 보성 들녘에서 자란 차로 향을 낸 한 잔의 차. 코끝의 향기를 따라 한 모금 마시니 내가 차를 마시는지 풍경을 마시는지 모르는 경지에 이른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두물머리처럼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순간, 커다란 통창으로 푸르디푸른 봄의 신록이 한가득 들어온다.
글. 신지선 사진. 김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