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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종실록에 이름남긴 노비출신 형조판서 반석평
작성일
2015-02-1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551

중종실록에 이름남긴 노비출실 형조판서 반석평
1533년 조선에서 중종의 신임을 한 몸에 받던 대신이 있었으니, 바로 형조판서 반석평이었다. 
어느 날, 반석평은 아주 기쁜 소식을 듣는다.
드디어 찾았단 말이더냐. 당장 찾아봬야겠으니 채비를 하거라.
예, 마님.
오랫동안 백방으로 찾아왔던‘은인’, 이참판 어른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참판 어르신~
? 아니, 이게 누군가?
저를 용서치 마시옵소서 어르신 덕분에 출세하여 잘 살게 됐는데 이제야 찾아뵙다니... 이제부터라도 제가 편히모시겠습니다.
사연인즉, 누더기를 걸친 노인은 옛날 참판을 지낸 양반으로 가문이 몰락해 어렵게 살고 있었던 것. 한편 반석평은 어린 시절 그 집안의 노비였다.
반석평은 이참판댁의 노비로 일하면서 도련님 방을 기웃거리며 몰래 공부를 했고, 영민했던 반석평의 학식은 나날이 일취월장했다.
......
어느 날 반석평은 이참판의 다리를 주무르다가 다른 곳에 한눈을 팔아 꾸짖음을 듣는다.
지금 어디에 한눈을 팔고 있는 게냐!
아니, 책을 읽고있었던 것이냐?
......
그동안 반석평이 몰래 공부를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이참판은 이를 기특하게 여겨 반석평에게 학문의 길을 열어주기로 마음먹는다.
이제 너는 노비가 아니다. 내 너를 양반집 양자로 보낼 것이니 가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라.
아니, 어찌 저를... 진정이시옵니까?
이참판은 반석평의 노비문서를 불태워 없애고 아들이 없는 반서린이라는 양반집에 양자로 보내주었다.
반석평은 열심히 학문을 갈고닦은 끝에, 1507년 병과에 급제했다.
해낼 줄 알았다. 기특하구나.
모두 다 참판어른 덕분입니다.
그 후 반석평은 예문관검열, 경흥부사, 만포진첨절제사, 함경남도 병마절도사,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형조참판에까지 올랐고, 그러는 사이 이참판과 연락이 끊어진 것.
옛 주인을 어렵게 찾은 반석평은 다시 그의 종이 되겠다고 했다. 그리고 중종을 찾아가 자신의 본래 신분을 밝히고 자신의 벼슬을 깎아 이참판의 아들인 이오성에게 주기를 청했다.
전하, 간청하옵기는 제 벼슬을 깎아 이오성에게 내려주시옵소서.
옛 주인의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이 가상하구나.
사연을 들은 중종은 반석평을 기특하게 여겨 그의 관직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이오성에게도 사옹원 별제 자리를 내려 주었다.
성호 이익은『성호사설』에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와 같이 한다면 세상 풍속이 어찌 분발하지 않겠으며 재주있고 덕 있는 자가 어찌 감동되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중종실록에는반석평에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특히 그를 문벌에 구애받지않고 능력으로 등용된 바람직한 사례로 전하고 있다.

 

글 ·그림 유환석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중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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