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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義를 깨닫고 구현하고자 했던 정치가, 정도전
작성일
2015-01-09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6492

의義를 깨닫고 구현하고자 했던 정치가, 정도전. 삼봉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고려왕조가 몰락하는 격동의 시기에 새로운 조선왕조를 설계한 인물이었다. 그는 사상적, 현실적으로 흔들리는 고려 말의 난국을 맞아, 첫째 고려사회의 지도이념이던 불교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통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보편적 가치를 제시하였으며, 둘째 성리학적민본사상에 바탕을두고『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경제문감經濟文鑑』등의저술을 통해 정치·경제·사회의 제반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현실에 맞는 해결책들을 제시하였다. 정도전의 이 두 가지 혁혁한 업적은 조선왕조가 망할 때까지 그 영향력이 감소하지 않았다.

백성이 가장 귀하다

정도전은 젊어서 백성을 이롭게 하는 정치를 하리라는 큰 꿈을 안고 정치에 입문했으나, 권문세가인 이인임의 친원정책에 항거하다 현재 전남 나주에 속하는 회진현으로 유배당한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목격하면서 ‘백성이 진정한 이 땅의 주인이다’ 라는 민본民本의식을 키워가게 된다.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고, 백성의 삶과 괴리된 기득권의 이기적 행태에 신물이 난 그는,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세계를 직접 만들어보리라는 큰 뜻을 품게 된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맹자孟子』를 탐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맹자』는 동양의 정치이론이 집대성된 책으로, 서양의 ‘사회계약론’ 등의 민권사상보다 앞서 백성이 모든 정치의 주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 영토와 곡식)이 다음이며, 임금이 가장 가볍다. 이 때문에 백성에게 임명된 사람은 천자가 되고, 천자에게 임명된 사람은 제후가 되고, 제후에게 임명된 사람은 대부가 되는 것이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바꾸어 임명한다.”

01. 평택 삼봉기념관에 전시된 삼봉 정도전의 영정. ⓒ연합콘텐츠 02. 조선 왕조의 수도였던 한성부를 그린 보물 제1560호 <도성도>.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중심 한양을 세우는 데도 앞장섰다. ⓒ문화재청 03. 정도전 탄생에 관련한 설화가 담겨 있는 도담 삼봉. 정도전은 자신을 삼봉이라 자호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고 전한다. ⓒ문화재청

이는 ‘백성의 마음(民心)이 하늘의 마음(天心)이다’ 라는 동양의 오랜 가르침에 잘 담겨 있다. 천자天子는 말 그대로 하늘의 대리인이며, 천자 자리에 오르는 것은 천명天命, 즉 하늘의 명령이다. 그리고하늘의 명령은 그대로 백성의 명령이니, 백성이 지지하는 이가 천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동양의 오랜 정치이론에서는 궁극적으로 백성이 천자를 뽑고 바꾸는 주체인 것이다.

 

참된 리더의 길

그래서 맹자는 가장 존귀한 백성을 해치는 자는 천자로 보지 않고 ‘천하의 외톨이’ 라고 보았다. 백성을 사랑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리더는 이미 리더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나라 선왕이 질문하길 “탕湯왕이 걸桀을 내쫓고, 무武왕이 주紂를 쳤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라고 하였다. 그러자 맹자가 대답하길 “경전에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왕이 다시 “신하가 그 임 금을 시해하는 것이 옳습니까?” 라고 묻자, 맹자가 대답하길 “사랑을 해치는 자를 ‘해치는 자’ 라고 하고, 정의를 해치는 자를 ‘상하게 하는 자’ 라고 합니다. 해치고 상하게 하는 사람을 일러 ‘홀로된 사내’ 라고 합니다. 홀로된 사내인 주紂를 주살하였다는 것은 들어봤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천자의 최고의 임무는 자신을 뽑아준 백성을 하늘로 보고, 백성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백성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비결이 담긴『대학大學』에서 이르길,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며,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를 싫어하는 것’ 이야말로 참으로 백성의 부모가 되는 방법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리더의 길이니 정의로운 경영의 기본이다. 정의는 사랑에 기반을 둔다. 동양 고전에서 사랑이란 ‘남을 나 와 동등하게 배려하는 것’ 이다. 그리고 정의는 ‘내가 당해서 싫은것을 남에게 가하지 않는 것’ 이다. 이를 어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불의不義이다. 정의는 사랑에 기반을 둘 때만 진정으로 성립할 수 있다. 사랑이 빠진 정의는 성립할 수 없다. 그래서『논어』에서는 사랑을 구현하는 실천방법으로 ‘서恕’ 즉 정의의 실천을 제시한다.

자공이 “한 마디 말로써 종신토록 행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그것은 ‘서恕’ 이니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가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그러니 정도전이 유배지에서 깨달은 바는, 백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베풀어 줄 정의로운 정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부야 말로 사랑의 정부일 수 있는 것이다. 말 뿐인 사랑이 아니라 진정으 로 남을 배려하고 남을 이롭게 해주는 사랑말이다. 그러한 정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이루리라 다짐한 정도전은, 위화도회군 이후 정계의 실세로 부상한 이성계와 손을 잡고 그러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게 된다.

04.조선개국의 으뜸공신인 정도전의 시문과 글을 모은『삼봉집(三峰集)』. ⓒ문화재청 05. 동양의 정치이론이 집대성된『맹자(孟子)』. 정도전이 유배지에서 탐독했던 이 책에는‘민심이 천심’이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

정도전은 조선왕조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얼개를 담은『조선경국전』에서 보위(寶位, 인군의 자리)를 잘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함을 설파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얻기 위한 구체적 방법도 제시한다.

인군의 자리는 존귀하며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백성은 지극히 많다. 한 번 그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만한 것이 있게 된다. 아래 백성은 지극히 약하나 힘으로 위협할 수 없으며, 지극히 어리석으나 잔꾀로 속일 수 없다. 그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고, 그 마음을 얻지 못하면 떠나버린다. 떠나고 따르는 사이는 털끝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미세하다. 그러나 이른바 그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심으로 구차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도를 어기고 명예를 해치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랑이라 고 말할 따름이다.

백성은 지극히 약해보여도 힘으로 위협할 수 없다. 백성 개개인이 약해보인다고 하더라도 권력이 그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백성이 아무리 어리석어 보여도 잔꾀나 꼼수로 속일 수 없다. 진실이 아닌 것은 끝내 들통나게 되어있다. 그러니 애초에 무시하지도 속이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야 백성이 진심으로 지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백성의 영원한 지지를 얻고 싶다면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는 사랑하는 대상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늘 자신이 상대방이라면 원했을 것으로 상대방을 대하며, 자신이 상대방이라면 원하지 않았을 것 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않는 법이다. 이것이 정의이고, 이것이 사랑이다. 그 다음 구절을 더 들어보자.

06. 정도전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문헌사(文憲祠). ⓒ연합콘텐츠

인군이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을 ‘마음’ 으로 삼아서, 남의 고통을 참을 수 없는 정책(不忍人之政)을 시행하여, 천하의 사방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기뻐하여 부모처럼 우러러 보게 할 수 있다면, 장구하게 안락하고 부유하며 존귀하고 영화로움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며, 위태롭고 망하고 뒤집히고 추락하는 근심은 없을 것이다. 사랑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는가?

인군이 백성에게 남의 고통을 참을 수 없는 마음(양심)을 바탕에 둔 정책을 시행하여, 자신이 백성이라면 원했을 것을 베풀고, 원하지 않았을 것을 가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최고의 정치이다. 그러면 백성이 모두 인군을 참된 부모로 우러러 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군의 자리를 보존하는 최고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고려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인 군의 자리를 잘 지켜가라고 경고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꿈꿨던 정의로운 정부, 사랑의 정부의 구체적 모습이었다.

 

글 윤홍식 (홍익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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