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기고
- 제목
- 마곡사와 풍마동다보탑
- 작성자
- 조상순
- 게재일
- 2019-03-21
- 주관부서
- 안전방재연구실
- 조회수
- 3425
미세먼지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어디 좀 숨 쉴 만한 곳이 없을까? 문득 떠오른 곳이 하나 있었다.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에 위치한 천년고찰 마곡사다. 내게는 눈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그리고 지적(知的) 호기심도 채울 수 있는 곳이다.
삼국시대에 지어진 마곡사는 조선시대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와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 등에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열 곳인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겹겹이 산이 둘러쳐져 있으며, 물이 맑고 수량이 많아, 왜적은 물론 미세먼지도 지나갈 것만 같다.
마곡사는 다른 절과 다른 점이 많다. 먼저, 절 자체가 계곡을 경계로 하여 둘로 나뉘어져 있다. 때문에 무심코 해탈문을 지나 천왕문을 통해 석탑이 있는 북원(北院)으로 향하게 되고, 되돌아 나오다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남원(南院)을 살펴보게 된다. 영산전이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17세기 건축물이라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부처님을 모신 건물이 두 개다. 하나는 대광보전, 다른 하나는 대웅보전으로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대광보전은 단층 건물인 반면, 그 뒤편 언덕위에 위치한 대웅보전은 2층으로 지어졌다. 같은 사찰 내에서 중심 건물을 두 개 둔 것도 특이하지만, 그 규모가 다를 뿐만 아니라, 내부의 불상 또한 바라보는 향을 각각 달리하여 대광보전의 부처님은 동편을, 대웅보전의 부처님은 남쪽을 보고 있다.
세 번째는 탑이다. 여기서 잠시 탑의 역사를 살펴보자. 한국과 중국, 일본, 이 세 나라축의 전통 목조건축은 닮은 점이 참 많다. 하지만 재료가 돌로 바뀌면 사뭇 다르다. 돌로 탑을 만드는 사례는 일본이나 중국 모두 흔치 않다. 불교가 전래되던 시기에 가장 중요한 신앙의 대상은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탑이었다. 인도에서 시작된 탑은 거대한 반구형의 봉분이었으나, 중국을 거치면서 목조 누각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목탑이 지어졌다. 그런데 목탑은 화재에도 취약할뿐더러 세월이 지나면 기울어지거나 퇴락하여 무너지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중국에서는 양질의 흙을 이용하여 벽돌을 구워 탑을 만들었고, 우리나라는 좋은 돌과 솜씨 좋은 석공 덕에 석탑이 번성하게 된 듯하다. 2019년 3월 현재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석조문화재는 모두 567개이고, 그 가운데 석탑은 183개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티베트의 흔적을 담은 탑이 있으니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일명 풍마동다보탑(風磨銅多寶塔)이다. 탑은 다른 탑에 비하여 세로로 긴 편이며, 탑의 맨 위쪽에는 원나라의 라마식 보탑의 영향을 받은 듯한 청동제 장식이 있다. 이러한 형식은 다른 탑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으로, 이 때문에 탑의 조성 시기를 원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고려 후기로 추정하고 있다.
마곡사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곡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비롯하여 모두 17개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더불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가 일제의 눈을 피하여 승려로 살았던 곳이 마곡사다. 문화재 하나하나 그 의미를 알아가고, 김구가 남긴 흔적을 찾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참으로 다양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찰이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역사를 지닌 마곡사는 지난 해 7월, 다른 6개 사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처음 마곡사를 갔을 때가 가을이었다. 연못에 비친 단풍과 탑 주변에 놓인 가을꽃에 행복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이제는 문화재의 안전을 살피는 것이 주된 업무인지라 일단 가면 이곳저곳 살피느라 시간을 보내지만, 산과 계곡에서 울긋불긋한 꽃들이 피어나는 지금, 마곡사의 풍광이 매우 풍성해진다는 것은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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