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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궁능의 잡상
작성일
2023-12-0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63

궁능의 잡상 궁궐 전각이나 문루의 지붕 양 끝 추녀마루 위에는 인형 같은 형상이 여러 개 놓여 있는데 이를 잡상(雜象)이라고 부른다. 잡상은 건물을 장식하는 기와의 일종으로, 조선시대 기와나 벽돌을 만들던 기관인 와서(瓦署)에서 제작했으며, 잡상을 만드는 장인을 잡상장(雜象匠)이라고 불렀다. 01.경복궁 경회루의 잡상 ©서헌강

삿된 기운을 막아주는 벽사의 상징

잡상이 무엇의 형상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중국 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과 삼장법사, 저팔계, 사오정 등 등장인물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조선 정조 대 구윤명이 편찬한 법률서 『전율통보』에도 잡상은 손행자(孫行者, 손오공)와 같은 귀물(鬼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잡상은 삿된 기운, 즉 악귀들을 쫓는 벽사의 상징으로 올려둔 것인데, 『서유기』에서 삼장법사와 그의 제자들이 잡귀를 물리치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이에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고대 건축에서도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당 태종이 밤마다 귀신이 기와를 던지는 악몽을 꾸어 전각 위에 문관과 무관의 형상을 만들어 올렸는데 여기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다.


02.구리 동구릉 건원릉 정자각 ©서헌강 03.남양주 홍릉 침전 ©서헌강

궁궐의 잡상

현재 궁궐의 잡상은 여러 곳에 남아 있으나 수량은 각각 다르다. 보통 홀수로 배치하여 5개부터 7개가 올려져 있는데, 경복궁 경회루는 11개로 가장 수가 많다. 배치 수량의 기준은 알 수 없으나 수량은 시기에 따라 변하기도 하였다. 《동궐도》를 보면 조선 후기 창덕궁 돈화문의 잡상은 5개였다. 1926년 순종 사후 순종의 재궁(梓宮, 왕이나 왕세자의 시신을 담은 관)을 창덕궁에 들이는 사진을 보면 그때도 돈화문의 잡상은 5개다.1) 그런데 1938년의 사진을 보면 돈화문의 잡상은 7개로 수량이 늘어나있다.2)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에 수량이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궁궐 전각에 화려하게 청기와를 올렸을 때 잡상 또한 청기와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광해군일기』 광해군 10년(1618) 11월 4일 기사에는 인경궁(仁慶宮)에 있었던 홍정전(弘政殿)과 광정전(光政殿)의 청기와와 잡상이 청색에서 적색으로 변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04.창덕궁 돈화문 ©서헌강

왕릉의 잡상

왕릉에서도 잡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능 앞에 위치한 정자각이다. 정자각은 제향을 올리는 왕릉의 중심 건물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에는 왕릉 정자각의 잡상에 관한 기사가 여러 건 나온다. 주로 비바람으로 파손된 잡상을 보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궁궐과 다른 점은 잡상의 수량이 3개씩이라는 점이다. 황제릉으로 조성된 남양주의 홍릉과 유릉의 경우 정자각 대신 침전이 있고 잡상이 5개씩 놓여 있다.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의 묘인 소경원에도 잡상이 있었다. 현재 소경원에는 정자각 터만 남아 있으나, 순조 대 여름 장마로 소현세자의 묘가 훼손되면서 정자각의 잡상이 파손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일성록』 순조 15년(1815) 7월 5일) 잡상의 존재에 관하여 명확히 규명할 수는 없어도 일반 민가나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는 엄숙한 건축에 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 「조선일보」 1926.4.29. <돈화문 옛대궐압해 망곡하는 민중을 실컷 울게 하라> 참고
2) 「조선일보」 1938.4.9. <兩殿下擧動을 밧드러 歡喜에 넘친 昌德宮! 오래 무켯든 敦化門에도 새 丹靑 闕內秘苑도 손질하기에 大奔忙> 참고




글. 강정인(궁능유적본부 궁능서비스기획과 전시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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