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충과 효의 이야기가 전해 오는 천년고찰 구례 화엄사
작성일
2023-10-3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65

충과 효의 이야기가 전해 오는 천년고찰 구례 화엄사 명산에는 대찰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명산 중 하나인 지리산 자락에도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많은 사찰이 들어섰다. 지리산에 자리 잡은 숱한 절집 가운데 규모로 보나 역사로 보나 으뜸으로 꼽히는 곳은 구례 화엄사(사적)이다. 지리산 화엄사 일원은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고, 사사자삼층석탑 등 국보 5점, 동·서 오층석탑 등 보물 8점, 천연기념물 2점을 보유하고 있다. 01.지리산 3대 주봉 중 하나인 노고단(1,507m)의 남쪽 기슭에 자리한 화엄사 전경

정유재란 당시 화엄사가 소실된 까닭

구례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승려 연기존자가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백제 법왕(재위 599~600년) 때에는 무려 3,000여 명의 스님이 이곳에 머무르며 널리 화엄사상을 퍼뜨렸다고 전해진다. ‘화엄사’라는 절 이름도 화엄경에서 따왔다. 창건 이후 자장율사,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대각국사 등 고승들이 여러 차례 중창했고, 조선 세종 6년(1424)에는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됐다.


화엄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이기도 하다.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7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 사이에 구례 섬진강변의 석주관에서 조선군과 왜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는 화엄사의 주지인 설홍대사가 이끄는 승병 153명도 참가해서 왜군과 끝까지 싸우다 대부분 전사했다. 왜군은 그 보복으로 화엄사의 모든 전각을 불태워버렸다. 화엄사가 약 1,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고찰이지만,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전각이 하나도 없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예나 지금이나 화엄사를 대표하는 불전(佛殿)은 각황전(국보)이다. 조선 1702년(숙종 28)에 계파대사가 3년 간의 공사 끝에 중건했다. 규모가 매우 웅장하고 건축기법도 뛰어난 전통 목조건물로 평가된다. 외관은 2층 건물이나 내부는 층 구분 없이 하나의 공간으로 툭 터져 있다. 숙종은 ‘각황전’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했고, 계파선사는 각황전을 완공한 기념으로 홍매화 한 그루를 심었다. 해마다 춘삼월이면 수많은 탐방객과 사진가들의 발길을 화엄사로 불러 모으는 바로 그 홍매화이다.


지금의 각황전 자리에는 원래 3층 규모의 장육전(丈六殿)이 들어서 있었다.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이 거대한 불전은 정유재란 당시 왜군이 불태워 버렸다. 장육전의 네 벽면에 둘러쳐 있던 화엄석경(華嚴石經)도 화재로 변색되고 조각났다. 현재 8,980점의 화엄석경 조각은 1990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각황전 앞에는 높이 6.4m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이 서 있다. 의상대사가 장육전과 함께 세웠다는 이 ‘각황전 앞 석등’(국보)은 현재 보존처리를 위해 옮겨진 바람에 간주석, 하대석, 지대석 등 아랫 부분만 덩그러니 남았다.


02.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이형석탑으로 꼽히는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03.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이 위치한 효대에서 내려다본 각황전

네 마리의 사자가 떠받치는 2개의 탑

각황전 뒤쪽의 울창한 동백나무 숲 사이로 난 돌계단 위에는 효대(孝臺)가 있다. 몇 그루의 노송에 둘러싸인 이 언덕에 올라서면 화엄사 경내와 주변 암자, 지리산의 웅장한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천혜의 전망대에 사사자삼층석탑(국보)이 우뚝 세워져 있다. 이 석탑은 네모진 기단 위에 올라앉은 사자 네 마리가 3층 높이의 탑신을 떠받치는 형태이다. 저마다 다른 표정과 자세를 갖춘 사자들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네 마리의 사자 한가운데에는 합장하는 인물상이 의연히 서 있다. 기단과 탑신에도 주악천인상, 인왕상, 사천왕상, 보살상 등이 대단히 섬세하고 탁월한 솜씨로 새겨져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대체로 이형(異形) 석탑은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 사사자삼층석탑은 균형미와 안정감이 거의 완벽해 보인다. 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우리나라 이형 석탑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된다.


사사자삼층석탑 앞에 놓인 석등도 매우 독창적이다. 화사석을 지탱하는 세 개의 간석 안에 한쪽 무릎을 꿇고 차를 공양하는 인물상이 배치된 석등이다. 이 인물상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이며, 네 마리의 사자에 에워싸인 석탑 속 인물은 연기조사의 어머니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어머니에 대한 연기조사의 깊은 효심이 오롯이 느껴진다.


04.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 05.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 1층 몸돌에 도드라지게 조각된 사천왕상 06.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과 동 오층석탑 07.일주문을 지나 화엄사 경내로 들어가는 아버지와 딸

화엄사에는 사자 네 마리를 기둥으로 삼은 사자탑이 또 있다. 원통전과 각황전 사이에 자리 잡은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이다. 2개의 기단 중 위층 기단에 올라앉은 사자 네 마리 역시 희로애락을 나타낸다. 불교에서 사자는 ‘부처의 위엄’을 상징하고, 부처의 설법은 ‘사자후(獅子吼)’라 일컫는다. 이 사자탑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될 뿐,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다. 여느 석탑과 마찬가지로, 불사리를 모신 탑이라고도 하고 공양대(供養臺)로 사용됐을 것이라고도 한다.


보제루 마루에 앉아서 화엄사를 즐기다

화엄사의 본전(本殿)인 대웅전 앞 계단 아래에는 동오층석탑(보물)과 서오층석탑(보물)이 마주 보고 서 있다. 통일신라 말기인 헌강왕(재위 875~886년) 때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했다고 전해지는 쌍탑이다. 웅대한 백두대간과 태극 형상으로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사이에 자리한 화엄사가 출렁거리는 배와 같은 형국이라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쌍탑을 세워서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화엄사 동·서오층석탑의 형태와 양식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동탑의 기단은 1단, 서탑은 2단이다. 조각과 장식도 뚜렷이 구별된다. 아무런 장식 없이 단정한 동탑은 ‘증명탑’으로 불린다. 반면에 조각과 장식이 화려한 석탑은 기단과 몸돌에 12지신, 팔부신중, 사천왕 등 수호신들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어 ‘옹호탑’이라고도 한다.


화엄사 대웅전 뒤편의 조붓한 오솔길을 300m쯤 걸어가면 구층암에 당도한다. 작고 소박한 이 암자에는 두 가지 명물이 있다. 하나는 모과나무 고목으로 세운 요사채 기둥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되는 삼층석탑이다. 높이 4m가량의 이 삼층석탑의 1층 탑신에는 아주 빼어난 솜씨로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부처라기보다는 순진무구한 아이나 용맹정진하는 수도승처럼 보이는 여래좌상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08.화엄사석경박물관 내부에 전시돼 있는 화엄석경의 파편

구층암을 뒤로하고 다시 화엄사로 내려와 보제루 마루에 앉았다. 동·서오층석탑을 사이에 두고 대웅전과 마주보는 자리에 보제루가 있다. 이곳의 좁고도 긴 마루에 앉으면 각황전, 나한전, 원통전, 영전, 대웅전, 명부전, 적묵당 등 화엄사 중심 영역의 전각과 지리산 노고단 일대의 산자락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서로 맞닿은 전각의 지붕들은 꽃잎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낸다. 그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연꽃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아늑해서 발길을 되돌리기 어렵다.


가볼 만한 곳 1.구례 석주관성(사적):호남지방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관문으로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섬진강변의 산비탈에 위치한다. 정유재란 당시 구례 출신의 일곱 의사(義士)와 의병 1,000명, 화엄사 승병150여 명이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왜군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가 숨진 요충지였다. 석성인 석주관성 외에도 석주관 칠의사묘(사적)와 칠의사 사당이 서로 가까이에 위치한다. -칠의사 사당과 석주관성- 2.구례 운조루 고택(국가민속문화재):조선의 3대 명당이라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금환락지에 자리 잡은 55칸 규모의 고택이다.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양반집으로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영조 52년(1776)에 낙안군수 유이주(1726~1797)가 지었다. 누구나 쌀을 퍼갈 수 있었다는 ‘他人能解’(타인능해)’ 뒤주가 인상적이다. -운조루와 오미마을- 3.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명승):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섬진강변에 우뚝한 오산 정상(541m)의 바로 아래쪽 암벽에 사성암이 위치한다. 구례읍내와 섬진강, 지리산 노고단 일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빼어난 암자이다. 백제 성왕 22년(544)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이래의상, 원효, 도선, 진각 등 4명의 고승이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오산 사성암- 국가유산 방문하고, 선물 받으세요! 가장 한국다움이 넘치는, 신비로운 우리 국가유산을 함께 만드는 길에 동참하세요. <문화재사랑> 11월호 ‘둘러보기’ 코너에 구례 화엄사에 방문해 11월 15일까지 인증 사진을 보내주세요. 두 분을 선정해 선물을 드립니다. QR코드를 찍으면 이벤트 참여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인증사진을 첨부해 보내주세요. ※ 국가유산에 따라 출입이 제한된 곳도 있습니다. 소중한 국가유산의 보호를 위해 출입이 제한된 곳은 절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글, 사진. 양영훈(여행작가, 여행사진가)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