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 배움, 가치, 의미가 담긴 YOLO와 풍류문화
- 작성일
- 2018-03-06
- 작성자
- 문화재청
- 조회수
- 2616
욜로 열풍은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저항의 표출
사실 서구의 젊은이들이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고 개성적인 삶을 살기 위한 철학으로 욜로를 수용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욜로는 암울한 사회경제적 분위기에 떠밀려 타의적으로 선택된 경향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욜로 열풍은 미래가 불확실한 현실에 대한 대응일 뿐만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를 수용하려는 적극적 태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래보다 현재를 더 소중히 생각하는 욜로족을 충동구매나 하고 젊어서 놀자는 소비적인 존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보다 ‘여행, 학습’ 같이 경험에 초점을 둔 비물질적인 소비를 지향한다. 충동 소비가 아닌‘버킷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를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 같은 목적성이 뚜렷한 소비를 하려 한다.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이상을 위해 소비한다.
이런 측면에서 욜로는 내일만 바라보고 달려온 기성세대 혹은 현대인들에게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새롭게 보게 만들고 있다. 인간 본연의 존엄성과 개인의 가치를 자각하고 중시하는 포스트모던한 분위기 덕분에 욜로족의 활성화가 가능해진 것이리라.
놀이와 휴식은 창의력의 원천
나아가 이 욜로라는 단어에는 한 번뿐인 삶을 후회 없이 즐기고 사랑하고 배우라는 철학이 담겨 있다. 이 새로운 삶의 철학은 과거 공동체주의와 가족주의가 갖고 있는 미래 지향적이고 성공 지향적인 가치관 대신, 현재 지향적이고 행복 지향적인 가치관을 내세운다. 집단적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거나 그 집단이 내세우는 미래의 성공을 위해 개인이 현재 누릴 행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에서 전통적 해석과 달리 개미가 아니라 오히려 베짱이의 삶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취미와 여가는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고 생활의 활력을 주며, 놀이와 휴식은 창의력의 원천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욜로 라이프가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려는 현재 지향적 삶의 방식이라면, 그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을 연구하는 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진정한 행복감을 ‘일상이 만족스러운지’와 ‘얼마나 많이, 자주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는지’를 통해 파악하고 있다. 딱 ‘이것이 행복한 상태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살면서 만족을 느끼는 일이 자주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 행복한 욜로족이 되려면
이렇게 본다면 욜로족이 추구하는 행복 가운데 하나는, 지금 이곳에서 나만의 개성을 살린 취미와 여가를 통해 문화적 만족을 발굴하고 누리는 것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를 획득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세상 사람 대다수가 선망하는 부귀영화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거나,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것은 어느 정도 목표를 세우고, 현재의 삶 또는 자신의 개성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느 정도 ‘자발적 가난’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야 정신적 여유로움이 생겨날 수 있다. 둘째, 타인의 시선 혹은 기존의 가치관을 의식하지 않고, 아울러 나를/나의 삶을 다른 사람과 단순히 피상적으로 비교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은 다른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독특한 존재라는 뚜렷한 자각 없이는 내 개성을 창조적으로 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신이 즐겨 하는 것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행위(글쓰기, 콘텐츠 창작/개발 등)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수 있다면 그만큼 행복감은 더 증폭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전제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내면에서 자신만의 ‘어떤 즐거움’이 샘솟듯 끊임없이 차올라야 한다. 이런 내면의 즐거움만이 ‘자발적 가난’이나 타인과 다른 나만의 자존감을 유지/지속/강화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즐거움’은 각 개인이 배움/경험을 통해 스스로 발굴/체득해야 한다. 어떻게? 진부한 표현일 수 있지만,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은 고전(古典)을 섭취하는 것이다. 고전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만의 개성과 즐거움 속에서 발효시킨 고농도 영양제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자유로움은 욜로와 풍류의 공통점
만약 욜로와 유사한 개념을 우리 전통사회에서 찾는다면, 풍류(風流)가 가장 근사할 것이다. 왜냐하면 풍류란 탈속적(脫俗的) 정신으로 자연을 벗하며 예술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태도, 운치 있고 자유분방(自由奔放)한 멋 등을 내포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탈속적 정신이란 앞서 말한 첫째 조건에 해당한다. 즉 세상의 절대가치인 부귀영화에 연연해하지 않을 수 있는 영혼의 자유로움을 말한다. 이는 풍류의 본질이자 성립요건이다. 이로써 자연을 벗하며 예술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태도와 여유가 가능하게 되고, 이로부터 운치 있고 자유분방한 멋이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옛 선비들에게 이 운치 있고 자유분방한 멋은 시(時)나 금(琴), 춤 등으로 형상화되었다. 특히 시는 미디어(대중매체)가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 각자의 개성적인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생성하고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SNS와 유사한 기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현대의 욜로족이 탈속적 정신으로 지금 이 순간의 문화적 만족이나 사회적 관계에서 행복감을 느꼈다면, 전통사회의 풍류인들 역시 본질적으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글. 한지훈(인문학자, 시낭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