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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미술의 과학 - 고려의 인쇄술·청자
작성일
2005-05-27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633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아시아 문명권의 주변에 위치하여 중국 문명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었으나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의 전통을 쌓아 올렸으며, 문화민족으로서 과학과 기술의 역사에 있어서 창조적 전통을 이룩했다. 우리의 과학사는 중국 과학사의 한 지류라고 할 수 있고 또 그 변형이기도 했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중국의 과학과 기술은 우리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는 중국의 선진적인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진취적이었으나, 반드시 우리에게 편리하고 이 땅의 자연기후와 풍토에 어울리는 과학기술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기술혁신을 통한 완벽한 인쇄술

고려의 과학기술은 신라 과학기술의 전통 위에 중국 송·원의 과학기술과 문화의 영향과 자극, 또 이슬람 과학기술문화의 영향도 직간접적으로 받으며 이루어졌다. 이러한 고려의 기술적 발전을 대표하는 것으로 목판인쇄의 발전, 청동활자인쇄기술의 발명, 고려청자의 개발 등을 들 수 있다. 고려의 목판인쇄는 송판본을 좋아했던 지배층의 취향을 충족시키려던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한편으로는, 불경(佛經)의 조판을 통해 불력(佛力)의 도움을 받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려던 종교적인 기원에서 시작되고 발전하였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며 훌륭한 목판으로 널리 알려진 팔만대장경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팔만대장경 판목은 인쇄용 목판기술이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까지 발전한 완벽한 제작 솜씨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3세기 초에 발명된 청동활자인쇄술은 목판인쇄의 발전과는 전혀 다른 요구에 의해서 생겨났다. 책의 수요가 중국에 비해서 훨씬 적었던 고려에서 여러 종류의 책을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양의 판목과 시간과 노동력을 모두 공급할 수 없었기에, 그 해결책으로 청동활자인쇄술을 개발해낸 것이다. 중국에서는 11세기에 필승(畢昇)이 도활자(陶活字)인쇄술을 발명했으나, 금속활자는 14세기에 이르러서도 주조의 어려움과 적당한 잉크와 종이를 쉽게 만들 수 없어서 실용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고려의 기술로는 그것들이 가능했다. 고려의 기술자들은 청동으로 활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래거푸집의 제조기술을 알고 있었고, 청동활자에 적합한 유성(油性) 먹과 질이 좋은 종이를 만들어내고 있었으므로, 목판이나 목활자에서 청동활자로 인쇄하는 새로운 기술개발을 시도한 것이다. 그것은 커다란 기술혁신이었다. 고려인이 발명한 금속활자인쇄술의 핵심은 청동활자를 주조하는 모래거푸집을 발명한 것으로, 그것은 인쇄술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헌이었다. 아마도 그 기술은 신라 공장(工匠)이 제작해온 수많은 청동제 그릇들과 대범종 주조기술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 생각된다. 이 기술혁신으로 고려는 문화와 학문의 체계적 전달체계에 커다란 변혁을 일으켰다.

독특한 감각과 기술이 돋보이는 청자



청자상감동채포도동자문주전자와 받침
<청자상감동채포도동자문주전자와 받침>
한편, 고려는 중국에 이어 자기(磁器)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것은 신라의 요업기술이 발전시킨 훌륭한 옹기그릇 제조기술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흔히 신라토기라고 하는 독특한 경질토기는 토기라기보다 도기와 자기의 중간단계까지 발전하고 있었다. 고려의 청자 제조기술은 이러한 기술의 바탕 위에 그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송자기(宋磁器)의 영향을 받아 발달한 것이다. 그러나 고려의 기술은 송자기의 제조기술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창조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고려는 금속공예품에만 쓰이던 기술인 상감기법을 자기에 응용한 수법을 개발하여 자기 제조기술에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이와 같이 청자의 기술은 송나라에서 도입되었지만 모방에 그치지 않았다. 고려 청자에는 한국인만의 요업기술 전통과, 중국인이 나타내지 못한 미적 감각이 표현되고 있다. 고려청자는 화려하거나 기교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선과 우아한 멋을 지니는데, 이것은 송·원의 청자와 구별된다. 그것은 청자 제조기술의 차원 높은 성숙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전상운 / 동아시아 과학사, 한국과학 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전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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