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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농악 농악으로 읽는 한국인의 사회성
작성일
2024-03-29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33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농악 농악으로 읽는 한국인의 사회성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10년이 흘렀다. 노동과 공동체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특유의 여유를 잃지 않고 풍년과 성공을 기원해 온 농악. 농악이 지닌 에너지는 여전히 저력으로 곳곳에서 향유되고 있다. 과연 농악의 매력은 무엇이며, 시간의 무게를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01.진주삼천포농악(국가무형유산)에서 등을 맞댄 쇠잽이와 주변을 둘러싼 벅구잽이의 모습. Ⓒ국립무형유산원

함께함으로 커지는 즐거움, 개인을 존중하는 집단주의

농악은 함께 연주하는 ‘합주(合奏)’이다. 여러 가지 타악기가 지닌 각자의 색깔로 연주되지만 함께 호흡을 맞춘다는 점에 매력이 있다. 농악의 악기 편성을 살펴보면 꽹과리, 징, 장구, 북으로 구성되며 특별한 장단(짝드름, 영산가락)을 제외하면 모든 악기가 늘 함께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음악의 구성적 측면에서 모든 악기 연주자가 평등하다. 꽹과리 연주자가 진두지휘하고 진을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역할이 강조될 수 있으나 모든 연주자가 장단을 함께 연주하므로 기본적으로 음악적 역할이 동등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악기 하나를 따로 떼어 놓고 연주한다고 하더라도 쉼 없이 계속 연주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양음악의 오케스트라와 비교해 보자. 주요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가 있는가 하면 아주 가끔만 연주하는 악기도 상당수다. 타악기 연주자는 하나의 악기가 아닌 여러 악기를 오가며 단발적으로 연주하기도 하고, 주요 선율이 아닌 화음만 받쳐줘야 하는 악기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음악적 비중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 악기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따로 떼어 놓고 해당 곡을 연주하게 하면 절대 완결된 곡이 될 수 없는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농악이나 전통음악의 악대는 기본적으로 모든 악기가 하나의 완결된 곡이나 장단을 연주한다. 그러한 개개의 악기가 모여 합주 형태를 이루어 가는 형국이다. 농악대에 꽹과리 연주자가 한 명일 수도 있고 두 명이나 세 명, 다섯 명이 될 수도 있다. 때로 마을의 농악대가 소규모로 편성될 때 장구가 없으면 없는 대로, 북이 많으면 많은 대로 모두 함께 연주할 수 있다. 하나로도 완결되어 있고 여럿이어도 완성형인 음악이 우리 음악이다. 개인을 존중하고 인정하면서도 집단으로 움직이는 음악인 것이다. 이러한 농악대의 일원은 마음이 편하고 안정적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집단 내에서 본인의 비중이나 역할이 적어 주눅들 필요도 없고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언제든지 함께할 수 있고, 배제되거나 내쳐질 일이 없다. 자신의 연주가 모든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므로 평등하게 함께할 수 있어 좋다. 농악대는 한국인의 사회성이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사회이다. 개개인이 모두 존중받고 인정받지만 함께 같은 것을 위해 자발적으로 힘을 합하여 더 큰 하나로 모일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아주 건강하다 할 것이다. 농악은 우리의 이상적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음악이다.


02.강릉농악(국가무형유산)의 삼동고리 모습. Ⓒ국립무형유산원 03.이리농악(국가무형유산) Ⓒ국립무형유산원

함께하기 위해 필요한 약속과 공통된 지향

여러 사람이 하나의 음악을 조화롭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약속이 필요하다. 가사도 없이 타악으로만 연주하는 농악에서는 특별히 신호와 질서가 매우 중요하다. 해마다 해당 절기가 되어야만 연주하는 농악이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다. 농악에는 모든 치배가 공유하고 있어 서로 소통 가능한 신호와 어법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 지역의 농악대는 해당 지역의 미감(美感)과 공동의 관심사를 담아낸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평야가 많아 인구가 밀집한 한반도의 서부 지역에서는 경제적 풍요를 기반으로 예술성을 높이기 위한 섬세한 가락과 난도 높은 춤, 연희가 발달하였다. 군대를 위한 둔전이 발달했던 지역에서는 군사 제식 훈련을 떠올리게 하는 절도와 힘이 강조된다.


또 같은 지역이라도 마을 신을 위한 의식에 사용될 때는 신성성을 강조하는 가락과 기원의 마음이 담기고, 마을 사람들의 잔치에는 신명을 끌어 올릴 만한 빠르고 덩실거리는 리듬이 강조된다.


평택농악에 서커스를 연상케 하는 무동놀이가 발달하고, 이리농악(국가무형유산)에는 설장구놀이 같은 섬세한 가락이 발달하였으며, 남원과 임실 필봉, 금릉 빗내에는 군악(軍樂)의 영향이 남아 있고, 구례 잔수에는 마을 제의성이 강조되며, 진주삼천포(국가무형유산)에는 춤이 강조되는 것은 지역의 역사와 전통, 문화가 결부된 선택의 결과이다. 또 타 지역에 비해 논의 면적이 적은 강원도 강릉농악(국가무형유산)에는 오히려 논농사의 절차를 모의하는 농사풀이가 주를 이루는 것은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열망과 간절함이 표출된 모습일 수 있다.


농악은 지역민이 함께 연주하는 음악이다. 이들이 함께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관심사와 지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촘촘한 약속체계가 있어야 한다. 농악대의 구성원이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목적성, 결국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공감대가 있고 그에 어울리는 지역민의 정서를 담아낸 것이 지역의 농악이다. 합주 음악이 조화롭게 어울리기 위해서는 잘 갖추어진 시스템과 호흡을 맞추기 위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과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이들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04.구례잔수농악(국가무형유산) 05.평택농악(국가무형문화재) Ⓒ국립무형유산원

힘든 노동 속에서 여유를 잃지 않고 작은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

농악대의 상쇠는 농악대를 이끄는 역할을 맡는다. 농악대에서의 상쇠는 어떤 권위로 농악대를 이끄는가? 상쇠는 본래 꽹과리 연주자이지만 진을 짜고, 가락을 바꾸고, 연주 내용과 방법을 결정해 신호해 주고, 악대의 행위를 일러주는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지휘자라 하는 것이다.


보통의 악대(樂隊)라면 가장 음악적 역할이 크거나 연주 기량이 뛰어난 이가 상쇠가 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농악대의 상쇠는 연주 기량은 기본이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차세대 상쇠를 키우기 위해 농부(농구)라는 역할을 두고 상쇠 뒤를 춤추면서 따라다니게 하여 상쇠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떻게 진을 짜는지를 체득하게 하기도 한다. 상쇠는 상쇠로서 키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연주는 기본이요, 춤과 진법, 농악대의 기능과 역할을 모두 정확히 알고 있어야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쇠는 농악대 구성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을 잘 해야 한다. 상쇠가 치배들의 마음을 잡지 못한다면, 그래서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만들지 못한다면 음악은 깨지고 만다. 그의 신호가 먹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쇠는 음악 연주 기술이 아닌 신뢰와 존경으로써 세워지는 것이다.


농악대에서 함께하는 기쁨은 악기 연주를 통해 서로 같은 미감과 지향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모두가 존중받는 한 사람으로서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공동체는 그러하다. 함께하는 힘은 어려운 일을 만감시키는 효율과 기쁜 일을 더 기쁘게 하는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이다. 힘든 노동 속에서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하나의 작은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완성되어 많은 사람이 만끽하는 농악이 되길 바라 본다.




글. 김혜정(경인교육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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