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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의 평민 드라마
작성일
2024-03-29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39

조선의 평민 드라마 남편, 아내, 아들, 딸, 손자 오손도손 마루에 앉아 텔레비전 연속극에 푹 빠져있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며 남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자신의 평범한 삶에 안심하기도 하며 겪지 않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이해하기도 한다. 이는 옛 사람들이 풍속화를 감상하면서 얻었던 이익과 다르지 않다. 01.대장장이의 쇠매질(김득신, 야장단련) Ⓒ간송미술관

깊은 궁궐에서도 백성들의 삶과 노동을 알 수 있도록 그려진 그림들

옛 풍속화에서 선비들은 산수에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주로 담고 농부, 공인, 상인들은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을 담았다. 특히 농공상인의 모습은 백성들의 생활을 익히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 이렇듯 실용성이 강했던 풍속화가 순수 감상의 수단으로까지 뛰어오른 때가 영조와 정조 때이다. 이때 농공상인의 모습이 중국풍에서 벗어나 조선 사람의 모습으로 바뀐다. 이를 진경(眞景)풍속화라 부른다.


진경풍속화의 대가는 역시 단원(檀園)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다. 누구나 한 번만 보면 손뼉 치며 좋아한 그림을 그린 김홍도는 백성들의 건실한 삶을 군더더기 없는 선과 구성으로 화폭에 옮겼다. 이는 김홍도의 9년 후배인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 역시 마찬가지이다. 김득신은 핵심되는 순간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데 달인이었다. 그래서 앞뒤로 영상이 흐르다 중요한 순간에 딱 멈춘다는 느낌을 받는다. 김득신은 드라마의 명연출가임에 틀림없다.


김득신의 풍속화는 임금님이 보라고 그렸을 것이다. 깊은 궁궐에서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임금이 속속들이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도화서 화원들이 백성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알기 쉽게 그려 바친다면 임금은 궁 안에 앉아서도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훤히 볼 수 있다.


에피소드 1: 대장장이의 쇠메질

모두 같은 모자를 쓴 대장장이 넷이 쇠 단련에 한마음으로 움직인다. 쇠는 달궈졌을 때 얼른 때려야 해서 두 명이 번갈아 때리고 한 명은 긴 집게로 쇠를 잡았는데 얼굴을 돌린 건 불꽃이 얼굴로 튈까 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집게 잡은 사내는 그림 감상자와 눈을 맞추었으니 ‘끙’하고 힘주어 잡는 표정이 또렷하다.


가슴을 풀어헤친 사내만 수염이 그득한 걸로 봐서 아버지인 듯하고 나머지 셋은 삼형제 같다. 무엇보다 힘든 쇠 때리는 일을 나이 든 아버지가 하는 걸 보니 역시 망치질은 숙달된 솜씨가 필요하다. 첫째 아들은 웃통을 벗었고 몸통은 땀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큰 형의 웃통, 달구어진 쇠, 화로, 아버지 모자가 모두 붉은빛이어서 그림 전체의 먹선과 어울리는데 주변 바닥에도 붉은 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화가는 사방으로 튄 불꽃마저 드러나지 않게 그려 대장간 장면을 살아 있게 만들었다.


앳된 막내아들은 둘째 형 어깨너머로 아버지와 큰형이 망치질하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본다. 이것이 바로 ‘어깨너머로 일을 배운다’는 말이다. 막내도 하루하루 일을 배워 아버지와 형 뒤를 이어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네 사람의 밝고 환한 얼굴에서 일이 주는 즐거움을 보고 성실한 노동이 보람된 일임을 깨닫는다.


이 땅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에게 농기구는 제일 중요한 도구였고 농기구는 모두 철로 만들었으니 대장장이는 농사일에 없어서는 안 되는 공인이었다. 그래서 진경풍속화에서 농사짓는 모습과 대장간 장면은 나란히 큰 자리를 맡았다.


02.한 여름의 짚신 삼기(김득신, 성하직리) Ⓒ간송미술관

에피소드 2:한여름의 짚신 삼기

뜨거운 여름 오후에 바자울타리가 만들어 내는 시원한 그늘에 삿자리 깔고 3대가 앉았다. 머리털이 거의 빠져서 흰 수염만 남았고 팔다리도 뼈만 있는 할아버지는 곰방대를 입에 물고 중년 아들이 짚신 짜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 등짝에는 어린 손주가 착 달라붙어서 아버지가 짚신 삼는 걸 눈만 빼꼼히 내어 본다. 아마도 아버지 짚신 삼는 일에 방해되지 않으려고 할아버지를 방패 삼아 뒤로 물러난 듯하다. 아버지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 건 아버지가 짚신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짚신 삼기를 눈으로라도 배워서 훗날 자신도 직접 해 볼 때를 대비하려는 생각인 듯하다.


아버지는 팔다리도 튼실하고 혈색도 불그스름하고 머리털도 충분해서 상투가 잘 매어져 있는데 얼굴에 약간 언짢은 기색이 있는 건 왜일까. 아마도 아버지의 훈수가 늙은이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늦여름 더위에 지쳐서일 수도 있겠다. 아버지 앞에 짚신 한 짝을 놓은 것은 나머지 한 짝은 지금 만들고 있다는 중요한 연출법이다.


울타리에 큼직한 박이 두 개나 열렸고 반쯤 열린 사립문 안에는 커다란 물독이 보이고 집 앞에는 논이 펼쳐졌으니 이것이 바로 문전옥답(門前沃畓)이다. 오후 더위가 얼마나 찌는지 강아지도 배를 땅에 붙이고 숨을 헐떡인다. 화가는 세부 연출에서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짚신 삼던 아버지는 담뱃대를 문 할아버지가 될 것이고 할아버지 등짝에 붙은 저 아이 또한 아버지가 되어 옛날에 아버지가 그랬듯 짚신을 삼을 것이다. 이렇게 농촌의 풍경은 무한 되풀이된다.


03.배 안의 좋은 안주(김득신, 주중가효) Ⓒ간송미술관

에피소드 3:배 안의 좋은 안주

아버지와 아들이 작은 배에 타고 고기잡이 나왔다. 때는 바야흐로 점심시간. 어부들에게 배 위의 점심거리는 지금 막 잡은 물고기. 아들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 날이 선 칼을 물고기 지느러미에 쓱싹 대는 순간 능숙한 요리솜씨가 발휘된다. 제 팔뚝보다 더 큰 생선 한 마리만으로도 배 위의 점심은 언제나 진수성찬(珍羞盛饌)이다.


뱃머리에서 삿대 들고 선 아버지는 흐뭇한 눈매로 아들을 내려다본다. ‘언제 아들이 이렇게 커서 아버지 대신 점심을 차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생생히 읽힌다. 아들의 얼굴엔 ‘아버지 걱정마시고 저에게 맡겨 주세요’라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밤에는 글공부하고 낮에는 배 타고 아버지를 도와 어머니와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장남 역할을 의젓하게 해내는 맏아들은 철이 들었다. 아버지를 이어 어부로 쑥쑥 크는 아들과 아버지가 배 위에서 나누는 점심 정경을 이보다 더 따뜻하게 그릴 수는 없다.


더운 날이어서 아버지는 바지를 바짝 끌어올린 다음 허리 춤에서 꺾어 내려 무릎 밑이 그대로 드러났다. 앙상한 종아리가 평생 배를 타며 보낸 세월을 짐작게 한다. 저고리 가슴은 풀어헤치고 팔뚝을 걷어 올려 편하면서도 시원한 차림이다. 삿대를 쥔 걸로 봐서 이곳은 바다가 아니라 강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은 배 안에서 장작에 불 지펴 솥 걸고 음식을 해 먹는다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여기서 시원한 청주 한잔 들이켜야 오후 고기잡이도 수월할 터이니 댓잎으로 주둥이 막은 질그릇 술병 하나가 준비되어 있다. 배 옆구리에는 이미 잡힌 물고기가 대줄기에 꿰여 물살을 가른다. 만선(滿船)의 기쁨은 아직 이르지만 신선한 물고기를 집에까지 가져가는 즐거움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김득신은 풍속화첩 안에 백성들의 다양한 삶을 담았다. 스님들 장기두기, 아전들 투전하기, 농부들 천렵하기 등 농어촌뿐만 아니라 늦은 밤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익살스럽게 때론 풍자와 예리한 관찰력으로 정확하게 사생하였다. 이들 풍속화첩을 감상하고 있으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들 그림이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는다.




글. 탁현규(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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