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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궁궐지킴이가 보는 덕수궁
작성일
2004-11-15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129

수궁의 가을은 아름답다. 나이든 느티나무, 은행나무 잎들이 가을비 온 뒤 노란 꽃비가 되어 함녕전 행각담을 감싸고 흩어진다. 잎사귀를 다 떨구고 나면 겨울이 올 것이고 눈 쌓인 중화전의 고요한 조정마당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해가 바뀌면 즉조당 뒤뜰의 산수유 노란 꽃을 시작으로 석어당 마당가의 살구나무에 하얀 꽃이 피고, 함녕전 뒤뜰의 자주·하양·분홍 모란은 그윽한 향을 피우며 벌과 나비를 불러올 것이며, 녹음 우거진 여름이면 석조전 앞 배롱나무에 온갖 새들과 매미가 모여들어 더위에 지친 이들을 위로할 것이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이러한 풍광이 펼쳐지는 덕수궁에 드나든 지도 벌써 5년이 되어간다. 그저 역사지식 한 가지 더 쌓아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궁궐지킴이 활동이 이제는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기와지붕만 봐도 반갑고 숱한 궁중용어들이 낯설지 않아, 전생에 출입번 궁녀였던 양 부지런히 입궐을 한다.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우리궁궐지킴이 활동은 ‘배워서 남주자’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되었는데, 200여 명 가까운 봉사자들이 종묘를 비롯한 각 궁궐에서 매주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이미 체험하고 있는 분들이기에, 여러 가지 열악한 조건 아래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지킴이들은 한 가지라도 더 우리 것을 알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안타까운 일들이 궁궐에서 행해지고 있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은 이제 많이 규제가 된 듯하여 다행이지만, 음악회라든지 그림잔치 등을 펼치는 것은 지양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소리에 건물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잔디나 수목이 입는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며, 그림잔치 등을 하고 나면 곳곳에 묻어 있는 물감이나 흩어진 쓰레기 등으로 행락객이 지나간 공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요즘은 시청 앞 광장에 널찍하고 시원한 잔디가 깔려 있어 많은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덕수궁에서 진행되었던 행사들은 이제 시청 앞으로 옮겨 가고, 궁궐에서는 격식에 맞도록 정확한 고증을 거친 궁중관련 행사를 진행해서 내국인들은 물론이고 해외여행사와 호텔 등에 부지런히 홍보하여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안고 갈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마침, 경회루도 제한적으로 개방해서 온기를 불어넣는 궁궐을 만든다고 하니, 덕수궁 내의 유일한 2층 생활공간인 석어당도 제한적으로 개방하는 것은 어떨까.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멀어지는 것처럼, 궁궐도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고 느끼고 생각하다 보면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오늘이 되어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박복희 / 서울시 양천구 agnus-dei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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