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인류의 평화를 위해 싸우는 모든 이에게 안네 프랑크가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
작성일
2019-07-30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346

인류의 평화를 위해 싸우는 모든 이에게 안네 프랑크가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 안네 프랑크의 일기 올해로 90세 생일을 맞은 안네 프랑크. 세계 각지에서 안네 프랑크가 남긴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정의와 평화의 메시지를 되새기고 있다. 01. 1929년 6월 12일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 ⓒ위키백과 02. 안내 프랑크의 일기 1946년 초판 ⓒ위키백과

안네 프랑크의 집

1942년 7월 5일 열여섯 살인 언니 마고가 독일정부의 소환장을 받게 되자, 다음 날 안네의 가족은 오토 프랑크의 회사(Opekta) 뒤쪽 건물*에 이미 마련해둔 은신처로 피신을 하게 된다. 암스테르담 프린슨흐라흐트(Prinsengracht) 263번지. 이렇게 안네의 가족과 이들의 지인인 판 펠스(Van Pels) 부부, 그들의 아들 피터(Peter), 그리고 치과의사인 프리츠 페퍼(Fritz Pheffer)를 포함한 8명의 유대인들이 1942년 이 은신처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 누구도 이곳에서 2년이 넘는 길고도 힘겨운 생활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1944년 3월 7일 안네는 1942년 자유롭던 삶을 회상하면서도 행복과 자유에 대한 믿음을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1942년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 그때는 이 같은 답답한 공간에 갇혀서 자라나는 안네와는 달리 자유롭게 뛰어놀던 안네였어. 천국같은 생활이었지. [...] 나는 꿈에도 이렇게 자유를 구속당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어. [...] 그럴 때 나는 불행이란 것은 생각하지 않아. 아직 남아 있는 아름다움만을 생각하지. [...] 자연이나 햇빛이나 자유나 인간 자신 속에는 항상 아름다움이 간직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믿는다면 인간은 자신과 신을 깨닫게 되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행복한 사람은 누구든 다른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법이거든. 용기와 신념을 지닌 사람은 결코 불행 속에서 죽지 않아.” 안네는 이와 같이 고통받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정신이 결국 희망의 빛을 발하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1944년 8월 4일 아침 10시경, 나치 친위대 제복을 입은 질버르바우어르와 네덜란드 비밀경찰 두세 명이 이들의 은신처에 들이닥쳤다. 누군가 이들을 제보한 것이었다. 은신처에 있던 8명과 이들에게 오랜 기간 도움의 손길을 주었던 회사 직원들이 체포되었다. 안네를 포함한 8명의 유대인들은 베스터보르크 유대인 수용소로 보내졌고, 1944년 9월 3일 이들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행 기차를 탔다. 이 기차에는 498명의 남자와 442명의 여자 그리고 79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총 1019명의 유대인들이 타고 있었다. 언니 마고와 안네는 1944년 10월 다시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송되었는데, 그해 겨울 열악한 위생상태와 유행병으로 돌았던 티푸스로 인해 이곳에서 수천 명의 포로들이 죽 어갔고, 1945년 3월 초 언니 마고가 죽은 지 며칠 후 안네 프랑크도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한 달 남짓 후인 1945년 4월 15일 이 수용소는 영국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 안네의 일기 원 제목은 Het Achterhuis이며, 이는 ‘뒷집’이라는 뜻이다.


04. 베를린의 안네 프랑크 센터(Anne Frank Zentrum)에 전시된 안네 프랑크의 일기 ⓒ위키백과




안네의 일기

은신하기 얼마 전인 1942년 6월 12일 안네는 열세 살 생일 선물로 부모님께 빨간색 체크무늬의 일기장을 선물 받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안네의 일기는 1942년 6월 14일부터 1944년 8월 1일까지 은신처에서의 삶과 공포, 2차 세계대전의 끔찍함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역사적 사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안네의 일기는 감옥과도 같은 공포와 단절의 공간에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생활해야 했던 열정적이고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 소녀의 감정과 생각들을 진솔하게 그려내는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가상의 친구 키티에게 안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많은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나치에 끌려가 비참한 운명에 처해 있대. 매일 저녁 유대인들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독일 쪽으로 가고 있어. 독일군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유대인들을 색출해내지. [...] 옛날의 노예사냥이 꼭 이랬을 거야. 농담같이 들리겠지만 너무나 비극적인 우리의 현실이야. [...] 내 친구들이 이 추운 밤 어디에선가 독일군에게 얻어맞아 쓰러지고 운하가에서 뒹굴고 있는동안 나만이 따뜻한 침대에서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죄스럽기까지 해. 이제 내 친한 친구들까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짐승들의 손아귀로 넘어갔구나!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1942년 11월 19일)


더불어 안네는 사춘기 소녀로서 겪게 되는 엄마와의 갈등, 피터 판 펠스에 대한 솔직한 감정, 2차 성징을 경험하는 한 소녀의 육체에 대한 관찰과 성에 대한 관심을 거리낌없이 진솔하게 적고 있다. 더불어 독자들은 상상 속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안네의 편지글과 단편 소설들을 통해, 13살 말괄량이 소녀가 2년의 기간동안 어떻게 작가로서의 감수성을 키워가게 되는지를 목격하는 것도 흥미롭다. 역사가인 얀 로메인(Jan Romein)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안네 프랑크가 만약 생존했더라면 분명히 재능 있는 작가가 되었을 것이란 사실이다” *라고 말한다. 1944년 5월 11일 일기에서 안네는 전쟁이 끝나면 자신의 일기를 출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너도 알다시피 나의 최대 희망은 저널리스트가 되고 그 후에 유명한 작가가 되는거야. [...] 어쨌든 나는 전쟁이 끝나면 ‘Het Achterhuis’(은신처 또는 안네의 일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할 테야.”


이들이 끌려간 뒤 은신처 바닥에 놓여 있던 안네의 일기장들을 발견한 사람은 지난 2년간 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던 오토 프랑크의 동료미프 히스(Miep Gies)였다. 그녀는 전쟁이 끝나고 안네가 돌아오면 일기장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책상 서랍에 보관해두었다. 은신해 있던 8명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1945년 6월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을 때도 미프 히스는 안네의 일기장을 오토에게 전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안네가 생존해 있을 거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네의 죽음이 밝혀진 뒤에야 비로소 안네의 일기장은 아버지 오토에게 전달되었고, 1947년 드디어 안네의 바람처럼 ‘Het Achterhuis(안네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오늘날 이 책은 70개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인들에게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고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10대 도서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05. 안네 프랑크 뮤지엄 ⓒ위키백과 06. 은신처 비밀문의 복원 뒤 모습 ⓒ위키백과




안네가 전하는 희망과 평화의 목소리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는 1960년 5월 3일 이후 오늘날까지 ‘안네 프랑크 박물관’ 또는 ‘안네의 집’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그리고 안네가 다락방에서 볼 수 있었던 바깥세상이자 희망의 아이콘인 밤나무는 안네 프랑크의 나무(Anne Frankboom)라는 이름을 달고 네덜란드 각지와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렇듯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안네 프랑크를 찾고 기억하는 데는 많은 이유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중 분명한 이유는 안네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희망과 평화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찬란한 햇빛과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존재하고, 우리가 살아서 이것을 바라볼 수 있는 한 우리는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했어” (1944년 2월 23일)


안네의 일기는 그녀의 경험이 단순히 안네 자신만의 경험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모두의 역사임을 말해주고 있다.


더불어 안네의 일기는 그녀의 경험이 단순히 안네 자신만의 경험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모두의 역사임을 말해주고 있다. 얼마 전 미국에 뿌리를 내린 안네의 나무 기념식수 행사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 작은 묘목이 ‘남녀노소 모든 인류가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상징임’을 강조했다. 안네의 이야기는 600백만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목소리이자 피부색 때문에, 종교 때문에, 국가나 민족이 달라서, 아니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받고 고통받는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노래이며, 정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의 기념비이다.


* 얀 로메인(Jan Romein), “아이들의 목소리”, 네덜란드 일간지 ‘파롤(Het Parool)’. 1946년 4월 3



글. 문지희 (한국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어과 교수)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