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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집 네 집 없이 나누고 즐기고 빌다. 지신밟기
작성일
2015-01-09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9431

내 집 네 집 없이 나누고 즐기고 빌다. 지신밟기. 일반적으로 지신밟기는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집터를 지켜준다는 지신地神을 비롯한 많은 가정신에게 고사告祀를 올리고 땅을 밟고 풍물을 울리며 축복을 비는 세시풍속이다. 의미에 따라 걸립·걸궁·고사반·고사풀이·마당밟기·주살맥이·매구·매귀 등 다양한 명칭을 지니며, 각각의 집을 돌아 다닌다하여‘집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킴이신들과 소통하는 놀이

지신밟기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집안에서 집을 지켜주는 지킴이 신들을 섬기며, 그 노고를 치하하며, 더 잘 지켜줄 것을 부탁하는 의례이다. 드나드는 사람과 신들의 무사를 기원하고 복을 가지고 들어 가기를 기원하는 문굿에서부터 시작해, 부엌에서 조왕신을 모시는 조왕굿, 집안의 기품과 음식을 책임지는 장독대의 철륭굿, 식수와 생 활용수를 공급해주는 우물에서의 용왕굿, 집안 터에 좋은 기운만 잡 아두는 터주신을 위한 터주굿, 집안의 지킴이 신들 중 가장 웃어른인 성주신을 모시는 성주굿 등 다양한 지킴이신들과 소통한다. 이 지신밟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는다. 집안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는 일을 ‘언제부터다’ 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가족단위를 기본으로 한 마을의 형성이 언제부터인지도 정확히 예측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헌상에 나타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민간에서 행하였다는 기록이 성현成俔의『용재총화 齋叢話』2권에 있고 1930년대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오청吳晴의『조선의 연중행사』에도 지신밟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타나기도 한다.

 

함께 먹고 마시며 노는 축제판

지신밟기가 의례이면서도 놀이적인 성격이 강한 이유는 풍물굿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농기를 앞세우고 상쇠, 징, 장구, 북, 소고, 잡색등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꾸려진다. 이들은 목적에 따라 걸립 패, 걸궁패, 지신밟기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하는 일은 매한가지다. 집안 구석구석을 악기소리가 실린 발로 꾸욱꾸욱 밟아준다. 풍물소리를 울리고, 여러 가지 기원이 담긴 사설을 하고, 고사덕 담을 한 후 절을 한다. 특히 고사덕담을 구성지게 하는 구성원이 있다면 성주굿을 하면서 그 집안을 위한 고사덕담을 풀어 놓는다. 풍물 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쌓여있던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악기를 제외한 뒷치배에 속하는 잡색들은 온몸으로 이 의례를 놀이로 즐긴다. 뒷치배는 앞치배를 따라다니며 함께 하는데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앞치배 인원의 몇 배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악기를 치는 앞치배와 함께 흥겨워하고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춘다. 방문하는 집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집안 구석구석을 밟아주니 많은 수의 방문을 오히려 반갑게 맞이한다. 이쯤 되면 마을의 지신밟기는 마을의 축제가 된다. 마을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한데모여 일상과는 다른 시공간을 만들어 내고, 평상시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 먹고 마시고 즐기며 논다. 이 지신밟기판이 곧 공동체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축제판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장구 일러스트

엄숙함과 자유분방함의 조화

지신밟기의 원류를 알기 위해서는 거행되는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지신밟기는 산업화 이전까지 정월보름을 전후로 2~3일간 개최된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마을 상황에 따라 달랐다. 지신밟기를 하는 때와 기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마을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짧게는 1~2일에서 길게는 5~6일까지도 집돌이를 했다. 도서지역의 경우에는 배를 타고 다니며 인근섬을 돌기도 했다고 한다. 지신밟기의 시기도 마을에 따라 달랐는데 동비추렴을 위한 걸립이 동제 전에 있기도 했다. 거북놀이를 하는 곳에서는 추석에 거북이를 앞세워 지신밟기를 했다.

산업화 이전의 지신밟기는 대개 동제를 지낸 후 각각의 집을 돌며 문 굿-가신 섬김굿-마당굿 순으로 진행되었다. 기본적인 전제는 마을 전체를 위하는 동제를 지낸 후, 마을 구성원의 주거공간을 방문해 집 안 곳곳을 누비며 밟아주는 지신밟기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 라도 마을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동제가 엄숙했다면 지신밟기는 자유분방하다. 동제를 지내기까지 억눌러 왔던 기운을 발산시키고 풍물과 함께 즐긴다. 자유롭게 이웃의 복을 빌어주고 먹을 것을 나누고 뒤엉켜 신명을 다해 논다. 마을 공 동체 전체가 지신밟기를 통해 정화되고 힐링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지신밟기의 온전한 모습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마을단위의 지신밟기가 허락되지 않는다. 풍물연희자의 부족, 인식의 변화, 종교적인 문제 등으로 지신밟기의 온 전한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상품화 된 지신밟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각 마을에서 주민들을 위해 연행되고, 주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주민들만의 힘으로 전승되는 그런 지신밟기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글 홍사열((사)놀이하는사람들 충남지부장, (사)예술창작소 이음) 일러스트 최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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