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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장,‘ 돈’이‘신’이 된 근대 자본주의 세상의 중심에 서다
작성일
2011-12-1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5059



전통시장에서 파란만장한 근대시장으로
왼쪽 발문은 자본주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들던 1899년, 돈의 부조리한 위력과 ‘돈’이 ‘신’이 된 세상을 비판하는 황성신문의 논설이다. 이 시기 돈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물결은 조선의 시장과 경제를 강타하고, 의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관을 뿌리 째 흔들고 있었다.

우리 근대사의 문을 연 1876년 개항은 조선의 전통 시장이 세계 자본주의 시장체제로 재편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세계 각국의 공장제 상품들이 조선 시장에 쏟아져 들어와 전통 상권을 위협했다. 이에 조선의 수많은 시장과 상인들이 몰락의 위기에 처했으며, 대부분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더러는 새로운 기회를 발판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개항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한국의 근대 시장은 외세의 시장 침탈에 맞서 싸우는 선봉장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최일선에 서 있었다. 또한 외국인 거류지와 개항장 및 철도를 따라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서 전통적 시장 공간이 자본주의적 체제로 재편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신식’ 상품들이 대거 등장하여 일상생활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선도했지만, 자본 유출과 외세의 상권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근대 시장의 발자취, 외세의 침탈과 상권의 대변동
개항 후 조선의 시장은 굳게 닫힌 빗장을 열고 세계 각국에 문을 열었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 열강의 상인과 상품이 밀려들기 시작했으며, 서울과 전국의 시장 상권이 자국의 힘을 등에 업은 청상인과 일본상인에게 밀려 점차 그 주도권을 상실해 갔다.

조선초기부터 서울의 대표 시장이었던 종로 시전은 봉건적 특권을 상실하고 쇠락의 길목에서 근대적 상가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었고, 칠패시장은 선혜청 안으로 이전하여 남대문시장으로 재편되었으며, 이현(배오개)시장은 동대문시장으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면 청상인과 일본상인은 명동•진고개(현 충무로) 일대에 진을 치고 조선인 시장을 잠식하면서 상권을 확대해 나갔다. 이 때 형성된 명동•충무로 상권은 일제 때 남촌의 핵심 상권으로 떠올랐으며, 오늘날까지도 주요 상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간적으로 우리의 전통시장인 남대문•동대문시장과 외세가 주물렀던 명동•충무로 상권이 바로 이 시기에 자본주의 시장체제로 재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 후 조선의 시장은 일제에 의해 숫자로 표시된 시장으로 재편되었다. 제1~4호 시장이 바로 그것인데, 남대문•동대문시장 등 조선의 전통시장은 1호 시장, 일제가 설립한 이른바 ‘신식시장’은 2~4호 시장으로 편제되었다.

또한 ‘자본주의 꽃’이라 불리는 백화점이 등장하여 최첨단 상권으로 떠올랐다. 화신, 미쯔코시三越, 죠지야丁字屋백화점 등이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상계를 풍미’하고 있었다. 특히 미쯔코시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은 화려한 쇼윈도, 최첨단 유행상품, 세련된 상품 진열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엘리베이터•미술관•옥상정원 등의 시설을 갖춘 조선 제일의 백화점으로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호화로운 신식 백화점은 사람들의 선망이 되었으며,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관광코스의 하나로 자리 잡을 정도였다. 이상의 소설 『날개』의 마지막 무대 또한 미쯔코시백화점 옥상이다.

일본식 발음으로 ‘쇼프걸(shop girl)’이라 불리던 백화점의 여점원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직업여성으로서, “나비 같이 경쾌하게 서비스하는” “제복의 처녀”로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젊은 남성들에게 ‘색싯감’으로서도 인기가 있었다.

이 시기 시장은 조선과 일본의 상권이 이원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은 청계천을 경계로 북촌과 남촌으로 구분되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휑뎅그렁하게 비인 듯하며 어둠침침한” 조선인의 북촌 상권은 위축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휘황찬란하고 으리으리한” 일본인의 남촌 상권은 대자본을 토대로 상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당시 조선의 시장은 인구증가와 근대화의 진행으로 일정한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그 열매는 대부분 일본인의 몫으로 돌아갔다.



‘물 건너온’ 자본제 상품들, 생활의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키다
개항 통상으로 조선 시장에는 세계 각국의 산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시장에는 안남미와 맥주•커피•양복•구두•성냥•석유•자명종•재봉틀•자전거•양잿물•양약洋藥 등 이제까지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자본재 상품이 대거 등장하여 판매되었다.

베트남산 안남미는 흉년에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수입 판매했는데, 품질이 좋지 않다는 평이 분분했다. 맥주는 ‘개화한 국민’의 술로 광고했고, 안약은 ‘어둡던 눈도 다시 밝아지고, 눈이 늙지 않는’ 약으로 선전했다. 커피는 고종과 순종이 매우 즐겨했던 차였으며, 커피에 독약을 넣어 고종을 살해하려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성냥은 불씨를 보관했다가 불을 붙여야 했던 불편함을 한방에 날려버린 혁명적 상품이었으며, 불씨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던 여인들을 불씨로부터 해방시킨 상품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생활양식이 다른 일본인이 대거 들어오면서 시장의 상품도 더욱 다양해졌다. 일본인이 즐겨먹는 오뎅•초밥•소바•왜간장 등의 식료품이 등장했고, ‘간스매’로 불린 통조림, 카스텔라•슈크림 등의 빵과 초콜릿•눈깔사탕•캐러멜•비스킷•건빵 등이 출현하여 아이들이 즐기는 간식거리가 되었다.

인공조미료인 ‘아지노모도味の素’가 그 감칠맛으로 인하여 선풍적 인기를 모았으며, 해방 후 ‘미원味元’이 등장할 때까지 우리 식탁의 입맛을 지배했다. 속옷에도 변화가 나타나 메리야스와 내복이 판매되었고, 질기고 물이 새지 않는 고무신은 실용적이고 값도 비싸지 않아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신발의 혁명을 불러온 상품이다. 연탄의 등장 또한 연료의 혁명을 몰고 온 상품이라 하겠다. 그 외에 만년필•치약•전축•라디오 등 수많은 상품이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이처럼 시장의 거래 상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소비자의 상품 선택권 또한 그만큼 확대되었다. 또한 편리하고 새로운 상품들은 생활문화의 대변혁을 추동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의 삶을 근대적 생활양식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외래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수록 자본유출이 심화되어 갔으며, 한편으로는 일제의 소비문화가 유입되었다.



이방인의 침략과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교차하는 시장 풍경
예나 지금이나 시장은 수많은 물건들이 펼쳐져 고객을 유혹하고, 값을 깎고 흥정하는 소리가 시끌벅적하고, 상품을 운반하는 짐꾼과 구경꾼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왁자지껄한 모습이 연출된다. 우리의 근대 시장은 ‘물 건너 온’ 자본재상품과 외국상인이 뒤섞여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일제강점기에 따른 민족의 아픔이 교차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우편판매와 경품제공 등 새로운 상거래방식이 등장하는 한편, 전통적인 에누리 풍속과 외상 거래가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광고가 전면 등장하였으며, 특정 브랜드(상표)를 내세워 다른 상품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거나 과대광고가 범람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시장 물가에 대한 총독부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각종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에 경찰의 눈을 피해 ‘암거래’가 성행하였으며, 암거래를 의미하는 일본어 ‘야미’라는 말이 해방 후까지 유행할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에누리와 덤•외상 등의 전통적 상거래 방식을 ‘유치한 시대’의 ‘비문화적 악습’으로 간주하여 타파 대상으로 하였다.

상품의 진열과 광고•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나타났다. 오늘날 ‘천냥하우스’,‘천원샵’에 해당하는 ‘10전균일점’이 새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전단지를 돌리고 “북치고 나팔 불며 풍각쟁이를 시중에 순행케”하여 선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또한 시장에는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는 독립선언서와 격문이 나붙고 3•1만세운동의 무대가 되었으며, 상인들은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철시 등을 통해 독립운동에 동참하고 일제강점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이 시기 시장 풍경화 속에는 약탈적 자본주의 물결을 최일선에서 감내하면서 고통스런 근대의 터널을 지나는 조선인의 삶과 애환이 스며있다.

글·박은숙 고려대학교 강사 사진·『시장의 역사』2010, 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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