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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정권을 얻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
작성일
2019-04-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7421

참정권을 얻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 뉴질랜드 ‘1893년 여성의 참정권 탄원서’오늘날 여성이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참정권을 누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을 제외하고 어느 국가에서도 여성들의 강력한 행동 없이 여성 참정권이 실현된 곳은 없었다. 이 기본적인 권리를 얻기 위해 긴 세월 여성들은 힘겹게 투쟁했고,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 1893년 9월 19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세계 최초로 여성들이 참정권을 획득한 곳은 놀랍게도 시민혁명이 일어났던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영국의 식민지 뉴질랜드였다. 식민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에는 1853년부터 선거로 선출한 하원이 있었고,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가진 유럽인 남성들은 투표권을 가졌다. 1879년 모든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됐고, 1893년에는 여성들도 투표의 권리를 행사하게 된 것이다. 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뉴질랜드 여성들은 오랫동안 싸워나갔다. 이들의 투쟁을 입증하는 문서가 바로 ‘1893년 여성의 참정권 탄원서(The 1893 Women’s Suffrage Petition)’이다. 01. ‘1893년 여성의 참정권 탄원서’는 여성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고, 투표권은 남성만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네스코 02. 여성 투표권 획득에 앞장선 대표적 여성 단체인 ‘기독교여성금주동맹’을 이끌었던 케이트 셰퍼드(Kate Sheppard) ⓒ위키백과 03. 1896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열린 전국여성회의 창립총회 ⓒ위키백과 04. 여성 참정권 박탈에 대한 시위 장면 ⓒnara

케이트 셰퍼드의 여성 투표권 확보 투쟁

여성 투표권 획득에 앞장선 대표적인 여성 단체는 케이트 셰퍼드(Kate Sheppard)가 이끄는 ‘기독교여성금주동맹(Women’s Christian Temperance Movement)’이었다. 원래 술 판매 금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단체는 셰퍼드의 주도로 수차례에 걸쳐 여성 투표권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영국 리버풀 출신의 셰퍼드는 스무 살에 대서양을 지나 태평양을 건너는 긴 항해 끝에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여성 단체를 통해 음주, 성적 억압과 착취 등 사회문제를 여성적 관점에서 풀어나가던 셰퍼드는 여성의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투표권 확보 투쟁에 나섰다. 1888년 처음으로 여성 투표권 도입을 의회에 정식으로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1891년 9천 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제출했으나 역시 의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892년 2만여 명의 서명을 받은 청원이 제출됐을 때 하원은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으나 상원은 거부했다. 1893년 뉴질랜드 거주 유럽인 성인 여성 인구의 4분의 1에 가까운 3만 2천여 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을 제출했고,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하는 법안이 9월 8일 의회에서 찬성 20, 반대 18로 가까스로 통과됐다. 마침내 9월 19일 당시 글래스고(Glasgow) 총독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뉴질랜드 여성들은 승리를 거두게 됐다. 세계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성들에게 선거권이 보장된 것일 뿐 뉴질랜드에서 여성에게 피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30년 가까이 지난 1919년에 이르러서였으며, 그나마 여성 의원이 탄생한 것은 1933년이 되어서였다. 첫 여성 의원이 의회에 등원한 이듬해 셰퍼드는 눈을 감았다. 현재 뉴질랜드의 10달러짜리 지폐에는 셰퍼드의 얼굴이 담겨 있다.

이 청원서는 ‘여성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고, 투표권은 남성만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기까지

‘1893년 여성의 참정권 탄원서’로 불리는 이 청원서는 당시 뉴질랜드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청원서로, ‘여성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고, 투표권은 남성만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고, 현재 수도 웰링턴의 뉴질랜드 고문서보관소에 원본이 보관돼 있다. 자료실에서 탄원서의 마이크로 필름을 볼 수 있으며, 탄원서에 서명한 사람들의 명단도 찾아볼 수 있다. 이 탄원서는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 여성들이 투표권을 갖게 됐다. 뉴질랜드에 이어 1902년 호주, 1906년 핀란드, 1913년 노르웨이, 1915년 덴마크가 각각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1917년 소비에트 연방, 1918년 캐나다, 1919년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도 여성 참정권이 도입됐다. 미국에서는 1869년 와이오밍주, 1890년 워싱턴주, 캘리포니아주, 애리조나주, 캔자스주, 오리건주, 1893년 콜로라도주, 1896년 아이다호주, 유타주 등이 차례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 연방정부의 헌법 수정안이 상하 양원을 통과, 1920년 21세 이상의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획득하게 됐다. 1870년 흑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주었던 미국은 이때야 여성 참정권을 받아들인 것이다.

뉴질랜드의 종주국이었던 영국에서는 1903년 에멀리 팽크허스트의 주도로 ‘여성사회정치연합(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이 창설돼 집회와 선전활동, 낙선운동 등을 전개하여 1918년 국민대표법 통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체포와 구금이 잇따랐고, 투옥된 여성운동가들은 정치범 대우를 요구하며 옥중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팽크허스트는 1908년 처음 수감된 이후 1913년 한 해에만 12차례 체포와 석방을 되풀이했다. 국민대표법은 21세 이상 모든 남성과 일정 자격을 갖춘 30세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내용이었다. 1928년에서야 영국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부여됐다.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해부터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호응을 얻지 못했다. 1793년 당시 입법기관이었던 국민공회는 여성들의 집회를 전면 금지했고, 여성 단체는 모두 해체됐다. 프랑스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19세기 말 영국과 미국 여성운동의 영향을 받아 다시 활발해졌고, 1946년에야 법적으로 여성 참정권이 보장됐다.

1920년대 미얀마(1922), 에콰도르(1929), 193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1930), 태국과 우루과이(1932), 터키와 쿠바(1934), 필리핀(1937)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서 독립과 민주주의의 도입과정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게 됐다. 1945년 패전국 일본, 1946년 중국과 북한, 1949년 인도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행사하게 됐다. 한국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 남녀의 평등한 참정권이 보장됐다. 서방 국가 중에서는 스위스 여성들이 1971년에야 참정권을 획득했다.

이후 카타르(1999), 오만(2003), 쿠웨이트(2005), 아랍에미리트(2006), 부탄(2008) 등에서 여성 참정권이 도입됐고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비로소 여성 참정권이 보장됐다.

참정권을 소중하게 행사하는 것이 이를 위해 일생을 바쳐 노력한 수많은 여성들을 기리는 길이 될 것이다.

스스로 얻어냈기에 더 소중한 권리

현재 전 세계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국가는 특수 사례로 바티칸 시국 단 한 곳뿐이다.

여성의 참정권 보장이 이루어지기까지, 오랜 기간 여성은 법적, 사회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았던 것은 여성은 남성보다 능력이 떨어지고, 여성의 본분은 가정을 지키는 것이며, 여성의 권익은 남성이 알아서 대변한다는 남성들의 편견 때문이었다.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기까지에는 험난한 과정이 있었다. 이러한 권리를 소중하게 행사하는 것이 이를 위해 일생을 바쳐 노력한 수많은 여성들을 기리는 길이 될 것이다.

05.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 앞 여성 참정권론자의 체포 모습 ⓒnara 06.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전 총리 의원이었던 줄리어스 보겔(Julius Vogel) 경은 1887년 여성참정권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위키백과 07. 케이트 셰퍼드 외 5명의 청동 조각상 ⓒ위키백과

글. 김은주(연합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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