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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한도>를 지킨 서예가 손재형
작성일
2018-01-30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974

<세한도>를 지킨 서예가 손재형 - 1944년 여름, 경성(현재의 서울) 고미술 수집가들 사이에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歲寒圖)>(국보 제180호)가 한 해 전 일본으로 넘어 갔다는 소식이었다. <세한도>의 소재는 당시에도 세간의 관심사였다. 추사가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세한도>를 그려준 것이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1865년 이상적이 세상을 떠난 뒤 <세한도>는 그의 제자였던 김병선에게 넘어갔고 이어 그의 아들인 김준학이 물려받았다. 그 후 민영휘, 민규식 부자를 거쳤는데 그것이 일본인 추사연구가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 1879~1948년)의 손으로 넘어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손재형에게 전해진 놀라운 소식

후지쓰카는 1930년대부터 경성제국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추사 연구자이자 추사 작품 컬렉터였고 추사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가 <세한도>를 입수한 경위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민규식이 1930년대 이 작품을 후지쓰카에게 팔았다는 얘기도 있고, 후지쓰카가 베이징의 골동가게에서 수집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그런 후지쓰카가 박사논문(「이조에 있어서 청조 문화의 이입과 김완당」)을 완성하자 1943년 봄, 서울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때 <세한도>를 포함해 자신이 수집했던 추사의 서화와 관련 자료 수천 점을 갖고 갔다.

경성에 있던 컬렉터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 1903~1981)이 이 소식을 들었다. 전남 진도의 부잣집 출신인 소전 손재형은 서예가이자 고서화 컬렉터였다. 그는 독특한 형태의 서체인 소전체(素筌體)를 통해 광복 이후 국내 서예계를 풍미했다.

손재형은 젊은 시절부터 추사 김정희를 매우 숭모했다. 자신의 방을 ‘존추사실 추담재(尊秋史室 秋潭齋)’라고 이름 붙였을 정도다. 추사 작품도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손재형은 1920년대 초, 불과 10대의 나이에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추사의 글씨 <죽로지실(竹爐之室)>을 1,000원에 사들였다. 당시 경성에서 제일 좋은 집 한 채가 1,000~1,500원이었다. 그런 손재형에게 <세한도>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그렇게도 애타게 찾고 있던 <세한도>가 일본으로 넘어갔다니, 42세의 손재형은 곧바로 거금을 마련해 경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간 뒤 다시 기차를 타고 후지쓰카가 사는 도쿄에 도착했다.

 

<세한도>의 극적인 귀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도쿄는 밤낮없이 계속되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손재형은 물어물어 도쿄 우에노에 있는 후지쓰카의 집을 찾아내 근처 여관에 짐을 풀었다. 병석에 누워 있는 후지쓰카의 집을 매일같이 찾아가 “세한도는 조선 땅에 있어야 합니다. 저에게 작품을 넘겨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그렇게 한 달여, 드디어 후지쓰카의 마음이 움직였다. 후지쓰카는 아들을 불러 옆에 앉혀 놓곤 “내가 죽으면 세한도를 이 젊은이에게 돌려주라”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을 아들이 지킨다는 보장이 없었다. 손재형은 다음 날부터 또다시 찾아갔다. 그러기를 또 한 달. 후지쓰카는 결국 <세한도>를 내주었다. 일각에서는 후지쓰카가 돈을 받지 않고 <세한도>를 내주었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손재형은 거액을 지불하고 <세한도>, <부작란(不作蘭)> 등 추사의 그림 7점을 찾아왔다. 그때 손재형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세한도>는 한 줌 재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이듬해인 1945년 3월 서화 작품들을 보관하던후지쓰카의 연구실에 포탄이 떨어져 불이 났기 때문이다.

<세한도>를 되찾아온 손재형은 1949년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오세창,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 독립운동가이자 국학자인 정인보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찬문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세한도> 두루마리 뒤에 이어 붙였다. 정인보는 “국보 그림 동쪽으로 건너가니 뜻있는 선비들 처참한 생각 품고 있었네. 건강한 손 군이 한 손으로 교룡과 싸웠네. 반전되어 이미 삼켰던 것 빼앗으니 옛 물건 이로부터 온전하게 됐네. 그림 한 점 돌아온 것이 강산 돌아올 조짐임을 누가 알았겠는가.”라고 썼다.

<세한도>는 한국미술사에 길이 남을 조선시대 최고의 문인화로 꼽힌다. 하지만 열정적인 컬렉터 손재형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세한도>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세한도>를 그린 사람은 김정희였고, 동기를 부여한 사람은 이상적이었지만 이들만으로는 <세한도>가 완성될 수 없었다. 컬렉터 손재형, 그가 있었기에 비로소 온전한 <세한도>가 탄생한 것이다. 그 후 손재형이 정치에 투신해 큰 빚을 지게 되어 사채업자의 수중에 있던 <세한도>를 개성 출신의 미술품 수장가 손세기가 매입하였고, 현재는 손세기의 아들인 손창근이 소유하고 있다. 손창근은 2010년 <세한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했다. 법적인 소유권만 갖고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넘겨 박물관이 마음대로 연구, 조사, 전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글. 이광표(동아일보 논설위원) 일러스트. 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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