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봄바람 따라 영산강과 나주, 호남 최대의 포구를 걸으며 - 영산강
- 작성일
- 2018-03-30
- 작성자
- 문화재청
- 조회수
- 1520
수많은 이야기가 흐르는 영산강
남도는 역시 남도다. 꽃샘추위는 아직 남았겠지만 영산강 봄 공기는 솜사탕처럼 부드럽다. 깨끗하게 단장된 강변길엔 화사한 햇살이 부서지고 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영산강을 바라본다. 이 땅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사람들은 바로 저 강으로 사람과 물자와 문화를 실어 날랐을 것이다. 바다와 내륙을 연결하고 외부와 소통하며 문화를 전파했을 것이다.
원래 영산포는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도 17개 고을의 세곡 8만석을 모아 보관하는 영산창이 있었고 세곡 8백석을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배가 53척이 항상 대기 중이던 곳이다. 그것이 얼마나 장관이었던지 그 시대 사람들이 구경 와서 남긴 글이 남아있기도 하다.
잠시 여유롭게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어본다. 힘겹게 겨울을 이겨낸 파릇한 풀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더불어 풀어질 대로 풀어진 3월의 흙 내음이 비릿한 강바람과 함께 안겨든다. 걷다 보니 황포돛배 선착장이 보인다. 그 옆에 1915년 영산포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세웠던 자기수위표(등록문화재 제129호)가 있다. 해마다 범람하던 영산강 수위 관측과 더불어 등대 기능도 수행했다고 한다. 등대를 보고 있던 사이 황포돛배가 출발하는 것이 보인다. 면포에 황토물을 들인 깃발을 달고 영산강을 따라 50분간 전설과 역사를 들려준다. 세 명 이상이면 항시 운항하니 한 번쯤은 타볼 만하다.
한국의 로렐라이, 전설이 전해지는 앙암바위를 지나
영산강을 따라 포구 쪽으로 걸으면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하나 보인다. 나주사람들이 앙암바우라고도 부른다는 바위다. 이 바위에는 삼국시대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연인이었던 택촌의 어부 ‘아랑사’와 진부촌의 처녀 ‘아비사’가 서로 사랑하다가 진부촌 총각들의 훼방으로 죽게 되었는데 그 후 마을 청년들이 계속 죽어갔고 마을에 두 마리 구렁이가 나타났다. 그러자 마을 노인들이 합의하여 음력 8월 씻김굿을 하여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화를 면했다고 한다. 지금도 앙암바위에는 아랑사와 아비사가 서로 애절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있다는데 그리 잘 보이지는 않는다. 황포돛배를 타고 가까이 가면 또렷이 보이지 않을까? 두 연인의 모습을 잘 보는 사람들은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배를 타고 가는 연인들은 꼭 확인해보기 바란다.
마한시대의 유적지, 옹관고분도 보고
나주를 여행하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는데 고대 마한의 유적지다. 영산강을 무대로 탄생한 마한 유적지는 사적 제513호 반남 고분군과 사적 제404호 복암리 고분군 등이다. 3~7세기까지 나주는 마한의 최후 중심지로 삼국과 다른 독창적 문화를 꽃피웠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2m가 넘는 거대 옹관에 시신을 넣어 지상에 묻었고, 45m가 넘는 거대 고분군을 조성하였으며 내부에는 금동관, 금동신발, 큰 칼 등 위세품을 함께 묻었다. 반남 고분군에서 나지막한 산처럼 보이는 봉분을 본 후 그 옆에 자리한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대형 옹관을 본다. 옹관은 항아리 2개를 맞대어 안치한 합구식으로 맞댄 부분에는 회백색 진흙을 발라 밀폐시켰다. 고분과 옹관을 통해 이 땅에 살았던 고대인들의 흔적을 마주하고 있자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묘한 기분이 든다.
영산강 물빛을 닮은 천년 빛깔 쪽염색
다음 발길이 향한 곳은 한국천연염색박물관이다. 형형색색 고운 빛깔의 염색천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아래는 여러 가지 색의 누에가 놓여있다. 자연과 닮은 품위 있는 염색 빛깔이 눈길을 끈다. 영산 강가에 사는 사람들은 잦은 범람에도 살아남는 ‘쪽’으로 염색을 했다. 그렇게 이불에 한복에 곱게 들인 쪽염색은 나주에 오래 이어 내려오는 전통이 되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쪽염색의 명맥을 이어온 장인(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도 이 지역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다시면 정관채 보유자와 문평면 윤대중 전수교육 조교가 그들이다.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니 오늘도 어김없이 체험이 한창이다. 뒤에서 구경해보니 모두들 열심이다. 하얀 천을 접고 모양을 내어 주물럭거리는 사람들. 몇 분 후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쪽염색이 탄생할 것이다. 선조부터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쪽염색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뿌듯해진다. 푸른 물이 묻어날 것 같은 쪽염색을 뒤로하고 이번엔 붉은 절개가 뚝뚝 떨어지는 금사정 동백꽃을 보러 간다.
변치 않는 절개가 꽃피운 금사정 동백꽃
추운 겨우내 붉은 꽃이 강렬하게 피었다가 통째로 꽃을 떨구는 동백. 그래서인지 옛 사람들은 동백에서 절조와 절개, 애절한 슬픔을 보았다. 특히 나주 금사정의 동백은 꽃의 이런 성격을 잘 대변해준다. 때는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에 얽힌 조광조를 구명하던 태학관 유생 12명이 낙향하여 지었다는 금사정. 금강 11인계를 조직하여 정치의 비정함을 한탄하고 후일을 기약하며 변치 않는 절개를 상징하는 동백을 심었다. 그 나무가 지금껏 자랐으니 수령만 500여년이다. 금사정에서 만난 동백(천연기념물 제515호)은 선비의 기상, 그 자체다. 정자 앞을 반 넘게 차지할 만큼 크고 아름다운 동백. 붉은 동백이 피었다가 뚝뚝 떨어져 있는 마당을 거니노라면 그때를 맹세하던 선비들이 그리워진다. 볕이 좋은 날 동백나무 아래 앉아 영산강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지 구 나주역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로 잡은 곳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였던 구 나주역사(시도기념물 제183호)이다. 1929년 일본인 남학생이 조선 여학생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시작되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 작은 시비였지만 이것이 발단이 되어 평소에 쌓였던 민족감정이 폭발하게 되었고 한일 학생들간의 싸움이 번져 급기야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때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옛 모습을 간직한 역사는 사람들의 발길을 잊은 채 그 자리에 무심하게 서있다. 옆에 지어진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사건의 발단과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고 독립열사들에게 분향을 할 수도 있다.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니 당당히 독립된 나라에 살고 있는 현실에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강변을 따라 느린 발걸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갔다. 너른 나주평야와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어서일까? 굳었던 마음의 근육이 풀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고대 마한시절부터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슬러온 여정이었다. 강물을 따라 느리게, 그러나 알차게 시간 여행을 한 셈이다. 가까이 살아도 쉽게 걸어지지 않은 강변, 좀 더 자주 와보리라 마음을 다시 먹는다. 영산강변의 바람이 참으로 포근하게 느껴지는, 봄날이다.
글. 윤지향(나주시청 문화예술팀장) 사진. 김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