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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상화된 실경: 일재 김윤보가 그린 <평양성도> 엿보기
작성일
2024-01-3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63

이상화된 실경: 일재 김윤보가 그린 <평양성도> 엿보기 01.도 01. 김윤보, 《평양성도 10폭 병풍》, 1890년 이후, 견본담채, 98.3×30.73cm(전체 210.2×325.5cm), 클리블랜드미술관

산과 물의 공간: 인간의 이상향

산수화의 주 소재인 ‘산’과 ‘물’은 동양사상의 중심이 되는 ‘도’와 ‘덕’의 속성을 지녔으며 ‘산수’는 그것이 구현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은 그런 곳에 머물거나 혹은 ‘산수화’를 보며 마음을 수양하는 도구로 삼았다. 그 때문에 사실적인 서양의 풍경화에 비해 산수화는 경물의 형태나 크기, 위치, 시점 등이 자유롭고 실경보다는 관념성에 기반해 작가의 정신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산수화에 인물이나 동물, 건물 등이 삽입되지만 산수화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인물화나 기록화 등에 부분적으로 등장하는 산수는 이상적 공간인 ‘산수’의 본질을 희석하지 않고 도리어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그런 특징을 반영한 작품이 근대기 평양에서 활동한 동양화가인 일재 김윤보가 그린 <평양성도>이다.


평양과 <평양성도>, 역사와 문화의 상징적 공간

평양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국가인 고조선을 비롯해 고구려와 북한의 수도이자 고려의 제2수도로 역사·문화적 상징성을 지닌 곳이었다. 즉, 평양성도는 평양이 기자(箕子)의 고토라는 역사적 위상과 상업과 무역의 성행이 가져온 풍부한 재화를 바탕으로 한 ‘풍류가 넘치는 유락(遊樂)도시’를 이미지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왕화(王化)1)가 변방에까지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국토 방어를 위한 ‘군사적 요충지’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이미지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평양속지>를 비롯해 이러한 정치성을 띤 지도식 평양성도는 평양 감영에 소속된 화원들이 제작했을 것이다. 그 중심에 평양의 화가 일재 김윤보가 있다.


02.도 02.김윤보, 클리블랜드 용악산 부분 03.도 03.작자 미상, 카톨릭대본 용악산 부분

일재 김윤보의 <평양성도>

일재 김윤보는 일제강점기 산수화와 풍속화를 잘 그린 화가로 당시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인물이다. 특히 소년 시절 오원 장승업의 화법을 배우고 평양감영 화원을 스승으로 두었지만 사실 그는 스승을 능가하는 솜씨를 보였다.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김윤보 작품 <평양성도 10폭 병풍>은 현존하는 평양성도 중 유일하게 작품의 제목과 화가의 이름이 기록된 중요한 작품이다. 그리고 현전하는 평양성도에 당시 정치·사회의 변화에 따라 국가 주도로 건물이 건립되고 훼철되는 등 새로운 내용이 그림 속에 반영되어 병풍 제작 당시의 시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도 01]은 비단 바탕에 수묵 담채로 그렸는데 구성과 내용, 화풍이 대구 카톨릭대학교 역사박물관 소장의 <평양성도 10폭 병풍>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 작품 역시 장엄하고 웅혼한 기상이 어린 이상적인 산수풍광을 중심으로 명산인 ‘용악산’을 과장해서 표현해 평양도성이 잊혀진 공간이 아닌 유서 깊은 역사문화의 터전으로 풍요와 번창을 이루었던 공간을 회상하듯 당대 암울한 시대에 희망어린 노스텔지어를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도 02], [도 03] 즉, 역사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성을 바탕으로 했지만 조선의 선비들이 추구했던 인격화된 이상적 산수경을 삽입하여 평양성도의 소장자와 감상자의 ‘니즈(Needs)’에 맞추었던 것이다.


클리블랜드본과 거의 유사한 화풍을 보여주는 카톨릭대본도 김윤보의 필치가 반영된 작품으로 생각된다. 평양은 임진왜란 때 평양성전투의 무대로서 일본인에게 주요 유적지로 인식되어 그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유지, 보수와 공원을 통한 관광지화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04.도 04. 김윤보, <평양실경도 8폭 병풍> 부분, 20세기 초, 지본담채, 각 85.0×38.0cm(전체 146.5×310.0cm), 고려대학교박물관(필자 촬영)

일제강점기 기성팔경 또는 평양팔경은 ‘을밀대의 상춘’, ‘부벽루의 명월’, ‘보통문普通門의 송객送客’, ‘모란봉의 설경’ 등으로 보았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김윤보의 <평양실경도 8폭 병풍>(도 04)은 클리블랜드본처럼 평양도성을 부감시로 조망하듯 구성하지 않고 투시도법을 사용해 근대적 수법을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평양도성이 일본인의 관광지로 인식되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때 제작된 작품으로 보인다(도 04).


상단의 산봉우리는 마치 용악산처럼 보이는데 보통강에서 볼 수 없는 경관으로 관념화된 산수경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앞의 클리블랜드본이나 카톨릭대본처럼 ‘평양성’이라는 주제만 유사할 뿐 병풍의 구성, 내용, 시점, 화법 등에서 차이가 크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문화통치 시기 평양의 명승과 문화 유적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한 방안으로 명승고적, 명승사진첩 등이 제작되었다. 그 당시 일본인의 평양 명승과 역사 문화에 대한 모종의 향수와 사회적 분위기가 이 작품과 같은 평양실경도 제작의 동인이 되었을 것이다2).


1)왕화(王化): 임금의 덕행으로 감화(좋은 영향을 받아 생각이나 감정이 바람직하게 변화)함.
2)이 글은 필자 (강영주, 「일재 김윤보 의 산수화 연구 (1865~1938)- 사계산수도와 평양성도를 중심으로-」, 『열린 정신 인문학연구』 24집 3호, 2024. 1, pp. 89~126.) 논문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글·사진. 강영주(인천국제공항 T2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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