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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상학의 선구 ‘풍기대(風旗臺)’
작성일
2019-04-30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312

기상학의 선구 ‘풍기대(風旗臺)’ 선조들은 편서풍이 불면 날씨가 좋고, 동풍이 불면 궂은 날씨가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러한 것을 좀 더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를 측정하기 위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러 풍기대를 만들었다. 01. 보물 제847호 경복궁 풍기대. 화강암을 다듬어 아래에 상을 조각한 대를 놓고, 그 위에 구름무늬를 새긴 팔각기둥을 세운 모습이다. ⓒ문화재청

풍기대의 명칭

풍기대(風旗臺, 보물 제846호, 제847호)는 바람의 세기와 함께 바람이 부는 방향을 관측하기 위해 깃발(상풍기, 풍기죽)을 꽂아두었던 받침돌로, 오늘날의 풍향계와 같은 원리의 기구이다.

풍기대의 명칭과 문헌으로는 먼저 ‘상풍간(相風竿)’ 명칭은 『정조실록(正祖實錄)』과 『서운관지(書雲觀志)』에서 보이고, ‘풍기(風旗)’ 명칭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 보이며, ‘풍기대(風旗臺)’ 명칭은 일제강점기에 간행(1917년)된 『조선고대관측기록조사보고(朝鮮古代觀測記錄調査報告)』에서 사용되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상풍간(相風竿)’, ‘풍기(風旗)’라는 명칭으로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이하 문화재청에서 사용하고 있는 풍기대 명칭을 사용).

또한 풍기대와 분리되어 깃발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상풍기(相風旗)’는 『정조실록』에, ‘풍기죽(風旗竹)’은 『증보문헌비고』에 보인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보면 ‘상풍간’과 ‘풍기’는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상풍기’와 ‘풍기죽’은 바람의 방향을 관측하는 깃발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풍기대는 ‘상풍기’와 ‘풍기죽’을 꽂는 팔각형의 받침돌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문헌 속 풍기대

풍기대에 관한 기록으로는 『증보문헌비고』에 ‘대궐 가운데에는 풍기가 있는데 이는 곧 예전부터 바람을 점치려는 뜻으로서, 창덕궁의 통제문 안과 경희궁의 서화문 안에 돌을 설치하고, 거기에 풍기죽을 꽂아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궁궐 안과 관상감 등에 각기 풍기대를 세워 오랫동안 바람을 관측해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옛날에는 바람의 관측을 위해서는 나무에 풍기를 매어 사용하였으나, 영조 당시에는 이것을 개량시켜 돌로 세우고 그 위에 바람을 관측하기 위한 깃대를 꽂아 바람을 관측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운관지』에 ‘영조 경인년(1770)에 명나라의 옛 제도에 따라 돌난간 옆에 상풍간을 설치하여 아침저녁으로 바람을 점찰하는 일을 밝게 했다.’는 기록과 『정조실록』에 ‘경연의 신하에게 이르기를 상풍간은 진나라 때의 고사인데, 우리 조정에서 이를 사용하여 창덕궁과 경희궁의 정전과 정침의 곁에 모두 이 간(竿)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에서 풍기대를 상풍간으로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국보 제249호 〈동궐도(東闕圖)〉에 화강석 풍기대 그림이 있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동궐도의 제작 연대를 1828년부터 1830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돌을 재질로 한 풍기대의 제작이 1830년 이전에는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시대 바람 관측

조선시대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한 자료로는 『기우제등록(祈雨祭謄錄)』과 『풍운기(風雲記)』를 들 수 있다. 『기우제등록』은 기상학적 자료로 매우 중요한데, 현재 1636년부터 1889년 사이 254년간의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기우제등록』에는 기우제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장마 때의 기청제(祈晴祭)에 관한 기록, 수표(水標) 및 측우기로 관측한 기록, 기상학에 관한 기록 등도 실려 있다.

『풍운기』는 관상감에서 비와 바람에 대한 관측 기록을 사실대로 적은 측후(測候) 기록서로 아쉽게도 현재 1740년 10월 16일자 관측기록 한 장만이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하룻밤을 5경으로 나누고 매 경마다 관측한 풍향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8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한 기사들이 기록되어 있다. 관측된 바람을 8방향으로 구분하여 수록했다는 점은 정밀한 방위 체계를 갖추어 비교적 정확하게 관측했음을 의미한다.

현재 남아 있는 2개의 풍기대에서 눈에 띄는 점은 모두 팔각기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돌기둥이 정확히 8각으로 구분되어진 점에서 당시 8방향의 방위 체계를 쉽게 구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상단 중앙에 꽂힌 풍기죽의 깃발이 날리는 방향을 보고 바람의 방향을 정확하게 관측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보이는 ‘오량팔량’이라는 기록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풍기에 대하여 ‘원판 위에 설치한 동 혹은 나무로 만든 까마귀가 바람이 불면 머리가 바람의 방향을 향하고 입에 문 꽃잎이 돌아가는데 이것은 민간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바람개비와 유사하다.’고 하였다. 이 풍기에 설치된 까마귀의 머리 방향을 보고 바람의 방향을 알고 꽃잎의 회전 속도에 의하여 바람의 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풍기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풍신기(風信器)와 풍력계를 겸한 바람 관측 기구였던 것이다.

02. 꼭대기 중앙에 있는 구멍에 풍기죽을 꽂고, 풍향을 측정했던 풍기대(보물 제846호 창경궁 풍기대) ⓒ문화재청 03. 화강석 풍기대 그림이 있는 국보 제249호 <동궐도(東闕圖)> ⓒ문화재청

풍기대 재질과 구조

풍기대는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들었는데, 아래의 받침돌은 네모꼴로 그곳에 모양이 마치 소반(小盤)과 같은 상(床)을 조각하였으며, 그 위로 구름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긴 팔각기둥을 세운 모습이다. 팔각기둥 맨위의 중앙에는 깃대를 꽂는 구멍이 있고, 이 기둥 옆 33cm 아래에는 빗물이 고이지 않도록 배수시키는 구멍이 뚫려 있다. 현재는 창경궁(昌慶宮) 풍기대와 경복궁(景福宮, 224.3㎝) 풍기대가 남아 있다.

풍기대는 꼭대기 중앙에 있는 구멍에 풍기죽[상풍기]을 꽂고, 풍향을 측정하였다. 동궐도(東闕圖) 속의 창경궁 중희당 앞마당에 그려져 있는 풍기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풍기대의 구멍에 가늘고 긴 장대인 깃대를 꽂았는데, 그 깃대 꼭대기에는 가늘고 매우 긴 깃발을 달았음을 알 수 있다. 깃발이 날리는 방향으로 풍향을 재고, 나부끼는 정도로 바람의 세기를 재었던 것이다.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시기에는 홍수와 가뭄 못지않게 풍향과 풍속의 측정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풍기대는 조선시대 바람을 측정했다는 실증적 자료로서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기상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글. 윤용현(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전시운영파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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