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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분단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집단의 정서적 표출
작성일
2017-12-0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345

분단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집단의 정서적 표출 -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1983년 여름, 이산가족을 찾겠다는 인파가 5개월가량 여의도 광장과 KBS 방송국 주변을 가득 메웠다. TV라는 매체를 통해 동족상잔의 아픔과 상봉의 감동을 10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가 함께 공유했는데, 그 역사적인 순간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방송 내용 테이프 463개와 담당 프로듀서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직접 작성한 신청서, 큐시트, 기념 음반, 사진 등 20,522건의 기록을 총칭한다. 인간이 걸어온 자취에는 갈등과 화합의 기록이 남기 마련이며, 이는 희망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는 값진 사료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정체성을 다져 왔으며, 살아있는 문화재를 만들어 왔다.

문화재, 직접 경험한 사건에 대한 정서 반영

에어프랑스의 항공기 내 안전수칙을 안내하는 영상은 참 예쁘다. 다른 항공사처럼 정복 차림의 승무원이 안전벨트를 매고,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종의 네 사람이 예쁜 평상복을 입고 웃는 얼굴로 안내한다. 동작을 보면 더 재미있다. 춤을 곁들여가며 비상시 해야 할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말 프랑스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면서 젊은 시절 타이베이에서 본 버스가 생각났다. 버스 앞뒤에는 모두 문이 있는데, 평소 열지 않는 뒷문에 태평문(太平門)이라고 쓰여있었다. 우리가 뒷문을 비상구라 부를 때여서 의아해 친구에게 물어보니 사고 없이 태평스럽게 있으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중국인의 기질을 새삼스레 느꼈다. 우연히 발견되는 감성적 상징은 그 나라의 이미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어프랑스 영상으로 프랑스의 상상력을 확인하고, 타이베이의 태평문으로 중국인의 사고방식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소개할 때 실물로 남아 있는 문화재를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첨성대와 훈민정음의 과학적 창의성을 자랑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꼼꼼한 기록을 내세운다. 반면에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서를 소개하는 데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다. 오랜 전통을 지닌 단오절 행사와 종묘제례를 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시켰지만 우리가 직접 경험한 사건의 가치는 크게 느끼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2015년에 영상물과 관련한 문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신선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주변의 정서를 정신적인 문화재로 승격시킨 사례이다. 이 기록물이 등재될 때 “그런 것도 세계기록유산이 되나?”라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제법 있었다. 그들은 세계기록유산이라면 과거의 화려한 기록이 중심이 되고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문건이라야 하는데, 방송 프로그램이 그런 반열에 올랐 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비판은 문화재에 대한 약간은 경직된 사고에서 비롯됐다고 생각된다.

01~04 여의도와 KBS 방송국 앞은 이산가족을 찾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방송을 통해 이 모습이 생중계 됐다.

타인의 눈을 빌어 다시금 발견한 문화적 가치

20세기 후반,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한 분단국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산가족의 고통도 우리만의 특수한 경험은 아니었다. 이산가족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표현은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는 분단국가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고통과 슬픔을 공개적이고도 집단적으로 표출한 유일한 사례였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이산의 슬픔을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기록물을 심사할때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내게 개인적으로 보낸 이메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집단이 공유하는 슬픔을 보편화하고 솔직한 카타르시스를 통해 치료하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의 표출”

심사위원들은 이 기록물이 세계사적 중요성을 지닌 냉전시대의 유산인 동시에 그것을 헤쳐 나가는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를 표현했다는 점, 그리고 동시에 대중적인 방송매체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요건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세계기록유산 심사 과정에서 타인의 눈을 빌려 발견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슬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세계인에게 한국과 한국인의 독특한 이미지를 각인시킬 기록물로 변화하는 과정은,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이 새로운 문화재로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국내에서는 자각하지 못한 문화적 가치를 타인의 눈을 통해, 특히 세계적인 중요성이라는 기준을 통해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다. 물론 이 사업이 역사의 재해석을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어제에 머물지 않고, 지금을 살아가는 문화재

우리는 기록물과 비슷한 사례를 여럿 가지고 있다. 2002년에 출현한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이나 1998년의 금모으기 운동도 비슷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금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1920년대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물도 같은 맥락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물론 논쟁의 여지도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경험은 모두 집단적 경향을 띠고 있는데, 그런 면이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치의 침략과 유태인 학살, 캄보디아의 학살과 같은 비극이 집단적 광기에서 비롯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으며, 우리 사회에도 그런 위험성이 없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몇 가지 경험을 통해 한국인은 집단으로 행동하면서도 위험을 피하는 슬기를 보였다. 집단적 경향이 많은 사람을 통합하면서 한때의 소용돌이를 거쳐 상식으로 회귀하는 경험을 여러 차례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정체성을 다져 왔으며, 살아있는 문화재를 만들어 왔다. 이런 경험이 모두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세계인의 인정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것을 통해 한국의 모습을 후세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는 계기로 삼으면 충분할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동시에 미래의 가치를 만드는 일이란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문화재의 형성에 참여하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글‧서경호(서울대 명예교수‧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위원) 사진‧KBS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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